정말로 하나님의 동역자인가?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7-9)
모든 사역자들이 다 하나님의 동역자(同役者)는 아니며, 참과 거짓의 두 종류로 나뉩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비유처럼 돈을 받기 위해 의무적 형식적으로 일하는 삯군목자와 양 떼를 위해 자기 목숨까지 버리는 선한목자로 나누려는 뜻은 아닙니다. 분명히 순수한 의도를 갖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사역자임에도 정작 하나님의 동역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회사의 사장과 평사원은 엄밀히 말해 동역자가 아닙니다. 계급, 보수, 직무 등에 차등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분명히 같은 직장 안에서 회사의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 각자 맡은 자리에서 서로 힘을 보탭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관계는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한다는 성경적 의미의 동역자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일을 사장과 평사원의 관계에 대입해 보면 왜 그 비유가 틀렸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정적인 큰일만 판단 계획하고, 신자는 그 일의 성취를 위해 허드레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말하자면 자질구레한 일에는 하나님이 신자와 함께 하지 않고 또 큰일도 결정만 하지 시행은 신자에게만 완전히 도맡기는 분이 되지 않습니까?
반면에 그 사원이 소속한 과의 동료, 대리, 과장과는 동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과업(task)를 가지고 매일 머리를 맞대어 회의하며 실제로 함께 현장을 누비며 업무를 수행합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그 즉시 함께 의논, 토론, 결정하여 시행합니다. 하는 일이 같을 뿐 아니라 시공간적으로도 항상 같이 있습니다.
영어성경이 이해하기 더 쉽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는 “Worker for God”이 아니라, "Fellow Worker with God"입니다. 말단사원은 사장이나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자(Worker for President or Company)인 반면에, 같은 과 직원들끼리는 동료(Fellow Worker)인 것입니다. 사역자란 바로 하나님과 동료직원처럼 일하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동료라고 부른다고 해서 불경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성경 본문이 그렇게 칭하고 있지 않습니까? 앞에서 말한 대로 같은 과업을 달성하려고 같은 시공간에서 항상 함께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사역자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하나님이 이 땅을 구속, 통치하고 계신 바로 그 일을 가시적 영역에서 드러나게끔 대행하는 자입니다.
작금 교회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사역자와 또 그런 일은 굉장히 많습니다. 예배당을 크게 근사하게 짖습니다. 예배도 거창하고 장엄하게 드립니다. 교회 안에 수많은 사역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철마다 화려하고 경건하고 엄숙한 행사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 모든 일들을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높이는 일이라고, 또 그런 일을 잘 기획하여 관리 수행하여 가시적 결과를 드러내는 자를 하나님의 큰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토록 아무런 변함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당신을 일부러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으시며 그럴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인간의 어떤 거룩한 행위로도 그 영광을 가감(加減)할 수 없습니다. 사역자가 거창하고 신령한 종교적 업적을 쌓았다고 그분의 영광이 올라가고, 신자가 고의로 엄청난 죄악을 지었다고 해서 그 영광이 줄지 않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이 당신을 높일 필요가 없는 까닭은 당신께선 항상 당신답기 때문입니다.
사역자도 스스로 자기를 높이면 이미 하나님의 사역자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사역자를 구태여 높여줄 이유나 필요가 없습니다. 사역자란 단지 그분의 일을 대행하는 자일뿐입니다. 거기다 그분 일을 대행하는 그 자체로 이미 인간으로선 너무나 큰 영광이며 더 이상 높아질 수 없는 곳에 이른 것입니다. 사역자도 사역자답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동역자끼리는 어떤 문제가 생기든 즉시 함께 의논, 판단, 결정, 시행할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령한 계시를 직통으로 받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역자는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고, 또 그 인도가 올바른지 판단할 기준인 성경을 이미 소유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겸비해져 범사에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며 모든 것을 내어맡기면 바로 그것이 동역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입니다. 아니 그러면 문제가 생길 리도 없고 혹시라도 사역자가 잘못을 범해도 하나님이 합력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일을 성실히 하고 있으면 그분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각 사역자가 자기에게 맡긴 일만 하면 됩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회중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너희”가 밭이요, 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그 동역자들이 항상 함께하면서 같은 일을 하는 곳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어서 열매 맺게 할 대상이 교회라는 조직체나 건물이 아니라 바로 회중 즉,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회중에게 가 있습니다. 그분의 사역의 초점은 당신이 택한 죄인을 십자가 보혈로 거듭나게 해서 예수를 닮아 자라게 하며 나아가 그 변화된 자로 다시 복음의 씨를 뿌리게 하여서 또 다른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밭과 하나님의 집인 회중들 안에서 씨 뿌리고 물 주는 일을 하고 있으면 바로 그분의 동역자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분을 위해 하는 일이란 바로 회중을 위하는 일입니다. 더 이상 쟁취해야할 영광이 따로 없는 하나님을 높이거나, 하나님이 세워준 사역자가 스스로를 높이거나, 교회 자체를 높일 이유는 하등 없는 것입니다. 회중 안에 단 한 명이라도 십자가 복음의 열매가 맺히면 바로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며, 또 그 열매가 맺히게끔 하는 일에 어떤 형태로든 기여한 자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동역자인 것입니다.
나아가 십자가 복음이 들어가지 않았거나, 약하고 부족하게 증거되는 곳이면 그 어디든지, 정확하게 말해선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밭과 집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흑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면 골고다 십자가의 광채를 온전히 비춰지게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기독교적으로 큰 업적을 쌓아서 교회와 자신의 이름이 신자들 사이에 칭송 받아도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금 십자가는 빠진 채 하나님을 위해서 큰일을 하려는 자들은 너무 많습니다. 반면에 십자가를 실제로 지고 가는 하나님의 참 동역자는 아주 드뭅니다. 십자가를 진다고 해서 항상 죽을 고생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이의 심령 안에 주님의 십자가 광채를 제대로 비춰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이미 인생의 목표이자 삶의 기쁨이 되었기에 그에 따라오는 어떤 궁핍, 문제, 고난, 핍박으로도 더 이상 고달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인을 살려내고 또 더 풍성하게 살리는 일이 아니면 한눈도 팔지 말아야 합니다.
바꿔 말해 사역자란 주님이 먼저 가서 일하고 계신 곳을 찾아가 동행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사역자가 그 일을 자기가 계획하여 하고 있다고 여겨도, 이미 주님이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계시고 또 사역자에겐 그런 열정을 심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습니까?
주님의 일을 내가 하려고 덤비면 자칫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자가 됩니다. 주님을 높이려 들면서 실은 자기가 높아지려는 속내일 수 있습니다. 회중을 높여야만 그분의 동역자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일하신 그대로 일하고 있는 자라야 그분의 동역자가 됨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지금 주님을 위해 일합니까? 그분의 동료입니까?
3/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