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출석중단이유(6)-현실을 바꿔주지 않는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나?

 

(의심 6) 교회 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청년들이 떠난다.

 

현실은 여전히 힘듬의 연속인데 삶의 문제는 제가 고민하고, 계획하고, 추진해서 해결해나가는 것일 뿐,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는 교회의 가르침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청년들이 점점 줄어드는 게 이해가 갑니다, 신앙은 현실의 그 어떤 것도 바꿔주거나 해결해주거나 개선해주지 않았습니다.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신앙에, 한번 지나면 돌아오지 않는 내 소중한 시간들을 투자해봤자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데 신앙이 다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습니다.

 

(변증 6) 예수님은 현실 삶의 개선을 절대 약속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형제님이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신앙에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이고 지금껏 그래봤지만 현실이 전혀 바뀌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바로 그러니까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작금 많은 교회들이 가르치는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회들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더 끌어 모으려고 잘 믿으면 현실도 형통한다고 전도가 아니라 선전(?)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이는 거짓 광고 내지 과장 광고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결코 아닙니다. 이 주제에 적합한 예수님 말씀을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교회마다 전도 집회할 때에 내거는 표어입니다. 주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28절 한 절 말씀만 큰 포스터로 제작해 걸어놓습니다. 바로 뒤에 따라오는 구체적인 설명은 대체로 생략해 버리며 왜 이런 말씀을 하게 되었는지 밝히는 앞의 25-27절은 아예 언급조차 않습니다.

 

먼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단순히 현실의 고난과 문제를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서의 전체 맥락과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게 된 배경을 따지면 종교적 멍에에 묶인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많이 베푼 고을도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마11:20) 말하자면 예수님이 현실의 고난을 없애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독생자 하나님이심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에 젖어 있어서 구원은 이미 얻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율법만 잘 지키면 응당 현실적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에 유대교 지도자들이 제정한 종교적 계명들을 열심히 지키기 바빴습니다. 잘못 어기면 유대사회에서 출교 내지 추방당했기에 형식적 외식적이라도 유대사회의 전통과 관습까지 어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선민의식과 종교적 부담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했는데, 그 믿음의 내용 자체가 틀렸기에 하나님께 복도 받지 못해서 현실적으로도 여전히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27절)고 먼저 밝힌 후에 상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뜻은 너희 생각과 전혀 다르고 예수님 당신의 가르침을 받고 구세주로 영접해야만 너희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은 자가 받을 복이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현실 형통이 아니라 “마음의 쉼”입니다. 그러려면 유대교의 율법 준행 의무의 멍에를 벗고서 다시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를 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는 당신께서 이 땅에서 살았던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산상수훈 등을 비롯해 계속 가르쳐왔습니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따르면서 거룩하게 사는 것이 주님의 멍에입니다.

 

멍에라는 단어가 뜻하듯이 신자 스스로 수고롭게 노력해야할 짐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기에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은 세상 형통과는 자연히 거리가 멀어지고 도리어 온갖 모멸과 핍박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왜 당신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고 말했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인생관 자체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돈만 주인으로 삼아서 자기만 높이고 치장하려는 세상의 음란하고 타락한 세태가 너무 싫어졌고 그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절감했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자기는 죽더라도 다른 이를 살려내는 길이 너무 좋고 생명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새로운 길이 좁고 따르는 자가 적어도 쉽고 가볍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선 절대 얻지 못한 마음의 쉼도 얻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나아짐은 예수 믿는다고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만나를 항상 먹게 해줄 왕으로 삼으려 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지난주에 끝난 오병이어 기적 시리즈 제 설교의 주제였습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온갖 수탈을 당하는 이스라엘을 해방시켜달라는 동족의 열화 같은 요청도 거절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현실 삶이 안락하고 풍요해진다고 인간 공동체는 물론 개인이 갖는 문제와 고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예수님은 사탄의 농간에 넘어가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각 개인의 영혼을 새롭게 거듭나게 해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게끔 해주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가 회복되어야만 각 개인의 자아도 창조 당시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회복됩니다. 자기 자신과도 진정한 화해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참 자아를 회복한 신자들이 주변의 사람과도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어 나갈 때에 비로소 인간 사회의 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됨으로써 외부 여건이 어떻게 되든 참 자유와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신앙만이 진짜로 현실의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고 또 개인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바꿔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빌4:11-14)

 

먼저 궁핍해서 말하는 권면이 아니라고 합니다. 신자는 항상 궁핍해야만 하고 또 궁핍이 선이라고 종교적 위선을 떠는 것도 아니라고 전제했습니다. 풍부에 처할 적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풍부든 궁핍이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므로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고 그런 것으로 자신의 삶과 마음에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고 해서 기도해서 현실 형통의 복을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배부름과 배고픔에 자족하면서 대처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에 배운 대로 다 행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돈과 현실상황 때문에 전혀 방해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빌립보 교인더러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한 것 즉, 가난한 가운데도 자신에게 선교 헌금을 해준 것이 하나님 안에서 아주 잘한 일이라고 칭찬해준 것입니다.

 

어쨌든 형제님 말씀은 정확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현실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시간만 손해입니다. 현실 상황을 바꾸려고 교회에 나오면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오는 목적이 예수님 말씀대로 주님을 따라가면서 마음에 쉼을 얻으려는 것이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죽어서 구원 얻는 문제는 다음 의문에서 다루겠습니다.) 믿음의 역할은 고난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고난이 닥쳐도 하나님의 자녀답게 대처하고 오히려 고난을 통해서 더욱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도 둘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아무리 믿어도 현실이 바뀌지 않으니까 떠납니다. 그런 자는 현실 형통을 목적으로 신앙을 가지려 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소수이긴 하지만 영적 자유를 얻으려고 교회를 찾아왔는데 현실 형통만 가르치고 있기에 구태여 교회를 갈 필요가 없다고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현실 형통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실력부터 쌓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만 추구하고 가능한 전문가 권력자와 인맥을 넓히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결코 애매모호하지 않고 아주 명확합니다. 현실의 형통을 얻으려면 당신을 따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정말로 인간으로서 참 자아를 회복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당신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다시 교회에 출석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꼭 이렇게 가르치는 교회를 찾아가십시오. 잘 믿은 만큼 현실도 형통한다는 교회를 찾아가면 그야말로 시간낭비입니다.

 

(8/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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