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출석중단이유 (9)-너무 화가 많고 잔인한 하나님 같습니다.

 

(의심 9) 잠깐 불평한다고 다 때려죽이는데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약한 인간이라는 걸 하나님은 아실 텐데도, 힘들다는 걸 이해하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말이나 격려는 전혀 없이 너무 힘들어서 잠깐 불평한다고 분노를 힘껏 구겨 넣은 재앙으로 다 때려죽이는 민수기 11장 1절의 하나님이 정말 우리가 아는 그 좋으신 하나님 입니까? 우리는 사람을 야구방망이로 피터지게 두드려 패서 골절상 입힌 후 병원에 입원 시켜버리는걸 보고 사람을 훈련시키고 훈계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화난다고 사람들을 불태워 죽이는 걸 하나님이 훈계/훈련시키는 것이라며 대충 넘길 수 있는 겁니까? 이집트와는 달리 사막에서는 넉넉하게 먹지 못해서 눈물 흘리고 힘들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거나 "힘을 내라,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격려의 말은 한마디도 없이 '크게 분노'만 하는 민수기 11장 10절의 하나님이 정말 우리가 아는 그 좋으신 하나님이 맞는 겁니까? 11장 33절에서조차 고기,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선지자 엘리사를 놀린다는 이유로 경고도 없이 즉시 곰 2마리에게 42명의 아이들이 학살당한 열왕기하 2장 23-24 사건도, 엘리사의 저주를 하나님께서 최종 승인해서 아이들을 죽인 사건이지 않습니까? 아이들을 훈계 차원에서 잠깐 벌을 주는 것도 아니라 곰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걸 허락하신 하나님이 정말 우리가 아는 좋으신 하나님이 맞는 겁니까?

 

(변증 9) 하나님은 분풀이로 형벌을 가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이며 그에 비해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완악했는지에 관해선 앞선 9번 변증에서 간단하게 설명해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냉혹 잔인하게 보이는 구체적인 몇 가지 성경의 사례들을 들었는데 각기 과연 그러한지 살펴보겠습니다.

 

1. 민수기 11: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민11:1)

 

성경 해석에서 가장 금해야 할 사항은 한 구절만 따로 떼어내어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원문은 장절의 구분 없이 죽 이어져 저작되었습니다. 반드시 앞뒤 문맥은 물론 그 책 전체의 주제와 내용과 연결시켜서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세 오경(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다섯 권)은 하나의 대하소설처럼 스토리가 이어지므로 다른 책의 내용도 함께 참조해야 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경과를 간단히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으로 사백 년간 노예 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었고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해주었습니다. 앞선 답변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최선의 길로 광야로 이끌었어도 반석의 생수와 하늘로부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었고 구름과 불기둥으로 보호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내 산에 도착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세우는 언약을 체결하고 율법을 수여했습니다. 이스라엘도 율법대로 행하면서 열방 앞에 그 소명을 다하기로 서약하고 피의 맹세를 했습니다. 제사장과 성막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받아서 규약대로 언약궤와 성막을 제작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출애굽기가 말하는 바입니다.

 

레위기에서 제사제도 및 기타 율법을 상세히 가르친 후에 민수기에 들어오면서 가나안 전쟁을 치르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합니다. 군대로 동원될 인구조사를 시행했고 전쟁을 수행할 조직을 완비하고 행군순서도 정한 후에 제사장을 임명해 시내 광야에서 율법대로 첫 유월절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시내광야를 떠나서 가나안으로 진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가 민수기 1-10장의 내용입니다. 이제 곧 가나안 전쟁을 하나님이 승리케 해주실 것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이스라엘로선 입법 행정 사법 체계와 군대 조직까지 완비한 후에 거주할 땅만 차지하면 신정국가로 세워질 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분의 권능으로 달성되기 직전에 백성 중 일부가 여호와에 대해서 악한 말로 원망한 것입니다. 지금 꼭 가나안으로 진군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서 노예로 노동만 하면 먹고 마실 것을 다 책임져주고 편하게 지낼 수 있지 않느냐고 불평한 것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한국이 일본 강점기에서 해방되어서 헌법을 만들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선출되고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기념식을 앞두고 일부 백성이 불평한 꼴입니다. 우리가 아직은 가진 것 없는 최고로 작고 가난한 나라로 국제정세에도 무지하니까 차라리 강대국 일본의 지배를 계속 받는 것이 더 좋다고 불평하는 셈입니다. 어떻게 그런 자들을 벌을 주지 않고 그대로 버려둘 수 있습니까? 하나님 이전에 백성들이 나서서 심판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벌은 사람은 죽이지 않고 장막 끝만 사르게 했고 그것도 모세가 기도하자 바로 불을 꺼주었습니다. 하나님으로선 사백 년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고 우리 민족만의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에 차있는 다른 백성들의 사기를 죽일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찌 이런 하나님이 잔인한 분입니까? 그 반대로 너무나 선하신 분이지 않습니까?

 

[참고로 일부 번역본은 진영 끝의 사람들을 태워죽였다고 말합니다. 원어 상으로는 진영의 가장자리 부분이라는 뜻만 있고 사람을 직접 목적어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번역은(영어판도 포함) 진의 끝(일부 영어판은 some이라고 불분명하게 번역)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진영 끝의 일부 사람이 타죽었다고 (킹제임스흠정역-한글판, 영어 KJV판 정도) 번역해도 상기 변증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가나안 진군을 하는 맨 가장자리(적군과 가장 먼저 전투를 벌어야 하는 대열)의 일부 사람들을 심판해서 가나안을 향한 이 행군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막중한 의미를 지니는지 똑똑히 보여주었고 모세가 기도하자 곧바로 심판을 거둔 것입니다.]

 

2. 민수기 11: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민11:33)

 

마찬가지로 앞뒤 문맥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이미 민11:1에서 백성들의 너무나 잘못된 원망을 듣고도 장막 끝만 태우고 사람은 죽이지 않고 용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11:4에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라고 불평했습니다. 출애굽 때에 이슬라엘 백성 외에 다른 종족들도 많이 따라 나왔는데(출12:38) 그들이 만나만 먹으니까 너무 싫다고 불평하면서 이스라엘 사람까지 부추기며 선동했습니다.

 

모세가 계속되는 원망에 지쳐서 하나님께 기도하자 한 달 동안 고기를 질리도록 먹게 해줄 것이라는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민11:23)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70인 장로를 세웠는데 또 다시 그 중에 모세에게 불만을 품고 제대로 순종하지 않은 두 장로가 나왔는데도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용서해주었습니다.(민11:26-30)

 

그리고 메추라기를 내린 후에 상기의 벌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민11:34절을 보십시오.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벌을 내린 것이 결코 아닙니다. 탐욕을 품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동하여 이 사태를 유발시킨 다른 종족들 그 중에서도 주도자들만 처벌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 받아 마땅한 자들만 그것도 당신의 인내의 한계가 찬 후에 심판을 하십니다.

 

3. 열왕기하 2:23,24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왕하2:23,24)

 

우선 우리말로 작은 아이들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어린이가 아니라 20대 청년인데 열왕기상 3:7에 솔로몬이 왕이 될 때에도 같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이성적으로 성인이 되었고 영적으로도 스스로 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대적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서 엘리야를 대신해서 이제 막 하나님의 선지자 사역을 시작한 엘리사를 처음부터 대놓고 무시하고 조롱한 것입니다.

 

대머리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엘리사의 외모가 그랬을 수 있는데 우선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 것부터 큰 잘못입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히 남자의 머리는 하나님의 권위를 입었음을 상징하기에 비록 엘리사가 대머리라고 해도 그것을 직접 놀려선 안 됩니다. 말하자면 당시의 그런 사정과 하나님의 뜻도 충분히 알고 있는 자들이 일부러 엘리사는 영적인 권능을 입지 못해서 주의 종이 될 자격이 없는 자라고 깔아뭉개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두 번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올라가라는 말은 엘리야가 사역을 완수하고 죽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사건(왕하2;1-11)에 빗댄 것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자기 후계자로 세우면서 마지막으로 자기에 부탁할 소원이 있는지 묻자 스승보다 갑절의 영감을 얻게 해달라고 답했습니다.(왕하2:9) 그 소원이 이뤄진 증표로 엘리사는 스승이 불 수레로 승천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또 그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소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맞은편 여리고에 있던 선지자의 생도들이 나와서 엘리사를 존경하며 엎드렸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행방을 계속 궁금해 하는 그들에게 그는 이미 승천했으니 찾지 말라고 말했고 엘리사의 말대로 사흘 내내 오십 명이 탐색해도 아예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성의 우물물을 깨끗하게 고쳐줌으로써 선지자로서 권능을 엘리야로부터 받았다는 증거를 드러냈습니다.(왕하2:13-22)

 

그 후에 상기 사건이 이어집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에게서 영감을 받았기에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가 되었고 실제로 그 권능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선지자 생도는 물론 일반 백성들도 다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젊은 무리만 엘리사를 아주 깔보고 선지자로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상기의 조롱을 쉽게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대머리(여호와의 권능도 받지 못한 자)가 선지자 행세를 하고 있는데 정말 선지자라면 엘리야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이적을 보여 봐라.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선지자 행세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 엘리사는 자기를 저주하는 것은 바로 스승 엘리야는 물론 여호와를 저주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했더니 숲에서 곰이 나와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습니다.

 

하나님이 곰을 통해 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회개하는 자에게는 무한한 긍휼을 베푸는 대신에 당신께 끝까지 교만하고 완악하게 대적하며 특별히 당신의 사역을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벌을 주십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이 벌을 받았으니 엘리사를 조롱한 자는 훨씬 더 많았으나 그 중에서 꼭 벌을 받아야만 할 자만 죽었다는 뜻입니다.

 

민수기에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진군을 하려고 할 때에 원망한 것 때문에 또 그들 속에 같이 살던 이방 족속이 그 진군을 방해하여서 벌을 받았습니다. 그와 동일한 성격의 형벌입니다. 엘리야 대신에 엘리사가 하나님이 세운 선지자로서 막 사역을 시작하려는 순간에 그 일을 훼방하려고 막아선 사탄의 세력입니다. 하나님으로선 마땅히 엄하게 벌을 내려서 모든 사람에게 경고를 주어야만 했습니다.

 

예를 든 세 경우를 다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면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정하심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잔인하고 비정한 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십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습니다.”(출34:6,7)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은 단순히 한 구절만 떼서 그것도 문자적으로 해석해선 절대 안 됩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0,21) 성경을 정말로 깊이 공부하면 하나님의 너무나 큰 사랑과 완전한 공의 앞에 순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에 인간은 신자까지 포함해서 얼마나 교만 완악 치사 추악한지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9/2/2021)


master

2021.09.02 15:42:28
*.16.128.27

Yeon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제가 다른 일로 바쁜데다 형제님도 제 답변 글들을  하나씩 읽고서 천천히 생각해보시라는 뜻에서 하나씩 올리다보니 처음 질문 주신 때에서 시일이 꽤 지났습니다. 이제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관련된 마지막 의문 하나만 남은 것 같습니다. 가능한 빨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열 가지 변증을 다 읽으신 후에 제 글에서나 혹은 성경에서 추가로 의문 사항이 생기면 언제든 다시 질문을 올려주십시오. 샬롬!

yeon

2021.09.03 19:53:34
*.39.201.23

민수기 11:1절 설명중에 "사람은 죽이지 않고 장막 끝만 사르게 했다" 라는 말씀은 뭔가 이상합니다.

 

한국어 성경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인 것으로 기록되어있는데

번역이 잘못된 것인가 해서 NIV, KJV, NASB 성경을 참고해봐도

모두 하나님께서 분노로 진영 끝에 있는 사람들을 불태워 죽인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인명 피해없이 장막(텐트) 끝부분만 태웠다는 의미는 없는데 이런 해석이 나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낭여

2021.09.03 20:23:59
*.164.183.32

(개역개정) 1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새번역) 1   주님께서 들으시는 앞에서 백성들이 심하게 불평을 하였다. 주님께서 듣고 진노하시어, 그들 가운데 불을 놓아 진 언저리를 살라 버리셨다

(공동번역) 1   백성들이 괴로와하며 불평하는 소리가 야훼의 귀에 다다랐다. 그 소리를 들으시고 야훼께서는 몹시 화가 나시어 불을 떨어뜨려 진지의 변두리를 살라 버리셨다.

 

(개역한글)은 (개역개정)과 유사, (표준새번역)은 (새번역)과 거의 일치.

 

한국어 성경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말씀이 잘 이해가 안가네요.

yeon

2021.09.04 03:43:32
*.39.190.214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개역개정), 그들 가운데 불을 놓아(새번역), 몹시 화가나시어 불을 떨어뜨려 (장막, 텐트가 아닌) 진지의 변두리를 살라버리셨다(공동번역)"

3가지 모두 사람에게 불을 보내어 해를 줬다는 문장이지 않습니까.

영어성경으로 해석해보아도 민수기 11:1절은

왕의 분노에 불이 붙었다(kindle)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분노하는 감정에 불이 붙을 수는 없으니까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야영지 양끝에 있는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구절입니다.

어떻게 읽어도 뜻이 분명한 이 구절을 사람이 아니라

텐트 끝부분을 태운거라는 해석이 뭔가 이상했기에 말씀드린 것입니다.

 

 

민수기 11:1절은 하나님의 분노에 불이 붙어서 그 불이 야영지 양끝에 있는 사람들을 다 태워버렸다(집어삼켰다)는 비유적인 표현인데,

하나님이 분노에 사로잡혀 불평한 사람들을 본보기로 몇 명 죽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힘들어서 잠깐 불평했다고

어떻게 이런 식으로 분노를 힘껏 구겨넣은 화염으로 화풀이하듯 잔인하게 불태워 죽여버리시냐는 겁니다.

 

아무리 가나한 진군이 중요한 일이었더라도

"힘내라, 조금만 더 가면 된다, 할수 있다" 며 희망을 주거나 위로의 말씀은 한마디도 없이

"입 다물어라!"는 식으로 몽둥이로 패듯이 일부 사람들을 불태워죽인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수 있는건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낭여

2021.09.04 22:29:04
*.164.183.32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그들 가운데 불을 놓아', '불을 떨어뜨려'라는 부분을 보면 불로 사람들을 태웠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하셨는데,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그들 가운데 불을 놓아 진 언저리를 살라버리셨다', '불을 떨어뜨려 진지의 변두리를 살라버리셨다'라는 바로 이어지는 뒷부분을 함께 전체 문장으로 볼 때, 충분히 사람이 아니라 진영 끝만 태웠다고 해석할 수 있고 문자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그런 해석이 더 자연스럽다고 여겨집니다.

 

 이렇게 볼 때 '불을 떨어뜨려'는 말할 것도 없고,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그들 가운데 불을 놓아'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불을 붙여 태웠다기 보다는 불을 '그들 중에(가운데)', 곧 사람들이 있는 곳에 붙여서 진 가장자리를 태웠다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죠. 적어도 사람을 태웠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구절로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을 태웠다는 식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음도 부정할 수는 없겠죠. 또한 제가 해석한 것처럼 해석하더라도 사람을 태우지 않았음을 단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단지 사람을 태웠음을 직접적으로 뜻하는 구절이 아니라는 해석법이지)

 

 하지만 사람도 태웠다 하더라도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설명이 되는 부분입니다. 어느정도 설명이 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거룩하신 분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뭘해도 허허 웃으며 받아주기만 하는 사람 좋은 할아버지 같은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그분의 선하고 공의로우신 기준으로 죄를 심판하시고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우리의 기준에 들어맞아야 한다거나 또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셔야 합니다. 즉, '이 경우에 이렇게 심판하신 건 부당해, 격려와 위로를 하셨어야지'라면서 하나님을 판단(심판)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는 분이시지, 우리가 하나님을 심판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지혜와 선하심과 거룩하심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어느 때에 어떻게 하셨어야 한다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자들에겐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식으로 위로와 격려를 주십니다. 엘리야가 완전히 낙심했을 때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지시고 먹이시고 회복시키신 것이나, 시편에서 괴로워 하나님께 부르짖는 시편을 볼 때, 위로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물론 부르짖기만 하다 끝나는 시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불평한다고 볼 수도 있는 부르짖는 류의 시편을 볼 때 왜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판 받았고 왜 시편 기자는 위로를 받았는지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평하는(/부르짖는) 그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데 있느냐, 하나님을 거스르고 거역하는 데 있느냐 차이인 것 같습니다.

master

2021.09.03 20:42:32
*.16.128.27

원어 상으로는 진영의 가장자리 부분이라는 뜻만 있고 사람을 직접 목적어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번역은(영어판도 포함) 진의 끝(일부 영어판은 some이라고 불분명하게 번역)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진영 끝의 일부 사람이 타죽었다고 (킹제임스흠정역-한글판, 영어 KJV판 정도) 번역해도 상기 변증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가나안 진군을 하는 맨 가장자리(적군과 가장 먼저 전투를 벌어야 하는 대열)의 일부 사람들을 심판해서 가나안을 향한 이 행군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막중한 의미를 지니는지 똑똑히 보여주었고 모세가 기도하자 곧바로 심판을 거둔 것입니다. 

 

**************

 

Yeon님 같은 의문을 가진 분도  꽤 있을 것이므로 상기 본문에 이 설명을 첨부했습니다. 

yeon

2021.09.04 03:53:24
*.39.190.214

지금까지 긴글 올려주신 말씀들 감사합니다, 잘 읽어보았습니다.

 

찜찜한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읽었습니다만,

이 부분은 도무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석해봐도 민수기 11:1절은 야영지 끝에 있는 사람들을 태워버렸다(집어삼켰다)는 비유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제가 해석을 잘 못하는건가 해서 인터넷 커뮤니티의 다른 곳에가서 해석을 의뢰해봐도 텐트가 아니라 불평한 사람들을 본보기로 몇 명 죽였다는 뜻으로 해석하더군요.

 

아무리 가나안 진군이 중요한 일이었어도

사랑의 하나님께서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힘들어서 잠깐 불평했다고

어떻게 이런 식으로 분노를 힘껏 구겨넣은 화염으로 화풀이하듯 잔인하게 불태워 죽여버리실수 있는건가요,

 

만약 하나님이 불태워죽인 그 진영 속에

제 가족, 제 친구,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제 소중한 사람들을 극도의 고통속에서 잔인하게 태워죽여버린 하나님이 정말 싫어질 것 같습니다.

 

힘들어하는 백성들에게 "힘내라, 조금만 더 가면 된다, 할수 있다" 며

희망을 주거나 위로의 말씀은 한마디도 없이

"입 다물어라!"는 식으로 몽둥이로 패듯이 일부 사람들을 불태워죽인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수 있는건지 여전히 납득하기가 어렵네요,

 

master

2021.09.04 06:15:50
*.16.128.27

"불평한 사람들을 본보기로 몇 명 죽였다는 뜻으로 해석하더군요."  -  원어에 분명한 구분이 없어서 문맥상 의미로 그렇게 해석해도 됩니다. 저도 미처 모르고 지나쳤다가 지적해주셔서 뒤늣게서야 그런 뜻도 있다고 보완했습니다. 

 

"힘들어하는 백성들에게 "힘내라, 조금만 더 가면 된다, 할수 있다" 며 희망을 주거나 위로의 말씀은 한마디도 없이 "입 다물어라!"는 식으로 몽둥이로 패듯이 일부 사람들을 불태워죽인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수 있는건지 여전히 납득하기가 어렵네요,"

 

형제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제가 계속 강조한 대로 출애굽부터 시작해서 민수기 그 구절에 이르도록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백성에게 베풀 수 있는 은혜는 다 베풀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만 해도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고센 땅에는 미라카락 하나 다치지 않게 구별해서 애굽에만 벌을 내렸습니다. 애굽의 금은보화를 챙기게 해준 것도 사백 년간 무임금으로 봉사한 삯인 셈입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면서 도적 떼로부터 지키고 사막의 그 뜨거운 낮의 해와 밤의 급격한 기온 저하에서 보호해주었습니다.(시121:6) 물과 먹을 것 하나 없는 곳에서 생수 만나 메추라기로 사십 년간 발도 부르트지 않게 일종의 휴식까지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애굽의 황소 신을 만들어서 그 앞에서 우상신전의 제사처럼 술마시고 춤추며 여호와가 아니리 그 황소 신이 그곳까지 인도해주었다고 큰소리치는 정말로 배은망덕한 죄악을 자행했습니다.(출32:4) 그것도 여호와의 절일에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격노해서 심판을 내리려 했으나 모세가 그럼 출애굽 시킨 것 자체가 완전히 허사가 된다고 차라리 자기를 심판하더라도 백성들은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또 다시 용서하시고 당신의 사자를 먼저 보내어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어 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율법을 주시는 기본 뜻도 당신의 말씀에 순종만 하면 모든 것을 책임져 주겠다는 약속이었고 백성들도 그렇게 하겠다고 피의 맹세를 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거역했는데 하나님은 계속 용서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희망을 주는 약속을 수도 없이 많이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이 당신이 홍해를 가르며 출애굽시킨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는 다짐입니다. 이 때도 진영의 일부만 혹은 사람도 극히 소수만 죽이고 심판을 거두시는 하나님입니다. 가나안으로 막 진격하는 시점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한국이 다시 일본의 속국이 되면 좋겠다는 사람을 어찌 심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심판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면 오히려 믿을 만한 의미와 가치가 없는 것 아닙니까? 

 

본보기라고 해서 그들이 죄가 없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기독교의 절대적 전제는 하나님이 지금 당장이라도 이 땅의 모든 사람을 다 죽여도 어느 누구도 단 한마디 변명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이 말하는 바도 바로 그것입니다. 거기다 아무리 인간이 온갖 죄를 저질러도 징계와 형벌은 주시되 계속해서 용서하며 참아주고 또 참아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절대적 전제를 놓치면 성경도 하나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지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살후2:7)고 적그리스도의 대환난과 인류의 종말을 성령님께서 미뤄주고 있습니다. 

 

성경이나 기독교를 논할 필요도 사실은 없습니다. 제가 마지막 결론으로 삼았듯이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주신 그 은혜 너무 놀라워라"(Amazing Grace)는 진정한 고백이 나와야만 비로소 믿음이 시작되고 성경의 하나님의 사랑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땅을 살아가다 보면 이해도 안 되고 너무나 냉정하고 독선적인 하나님처럼 여겨질 일들이 생깁니다. 성경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욥입니다. 욥만큼 말도 안 되는 고난을 당한 자는 전무후무합니다. 그런데 영계에서 하나님이 사탄과 그의 믿음을 걸고 내기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미리 정말 너무나 황당한(?) 이유를 밝혀놓았습니다. 욥은 너무나 괴로워서 지루하게 그 이유을 알고자 친구들과 쟁론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서 물질계의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 욥더러 그 원인과 과정을 설명해보라고 수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욥은 단 한 마디도 답변을 못하는 대신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깨달은 진리 하나를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42:2-6)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지금 이 땅에 사는 인간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불의라고는 하나도 없으며 모든 것이 선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더러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하게 하려고(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믿음을 갖게 하려고) 그 큰 고난을 허락한 것으로, 자식들도 언제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한 자였다는 진리도 포함해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모르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도 성도들에게만은 죽어서 천국에 가면 소상히 알게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

 

형제님 제 결론대로 다시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성령님을 통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대면하여서 일대일 개인적인 관계부터 맺으셔서 그분의 너무나 놀라운 사랑에 순복하시고 날마다 그 사랑으로 어떤 인생의 고난도 넉넉히 승리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억울하게 고통당하고 죽는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이 폭군이라고 여겨질수록 더더욱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정확히 깨달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그런 환난 중에 있는 자들에게도 그 사랑을 형제님이 먼저 찾아가서 알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샬롬! 

 

GodisGood

2021.09.04 11:04:28
*.172.110.74

yeon님이 교회를 출석하시는 분이신지 모르겠으나 10여년전에 교회 아니 하나님을 증오하는 미국 회사 동료와의 첫만남을 상기 시킵니다.

 

그 친구는 내가 회사 식당에서 다른 동료들에게 예수증거를 하고 있을 때 내가 "하나님은 사랑 이시며 유일한 아들인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죽음으로 치르신 것이 하나님의 참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이고 그것을 믿으면 천국가고 이 삶 속에서도 천국을 누리는 평화를 갖는다" 했을 때에 뒤에서 그냥 묵묵히 듣고 있던 그가 갑자기 내 앞에 와서 그렇게 사랑인 하나님이 어떻게 죄없는 아기를 죽이게 하시고 yeon님이 언급한 성경 구절들을 대면서 나에게 그런 하나님은 절대로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고 fxxxing xxx라고 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을 통해서 그가 오래전에 자신의 아이를 의문의 병으로 보내고 그 후에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불행을 겪은 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동료를 위해 계속 기도하면서 주님께 어떻게 그 동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말씀의 능력을 주십시요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 동료가 매우 논리적인 사람이므로 논리적으로 접근하도록 나를 이끄셨고 그 후로 성경의 말씀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조금씩 그의 마음을 열게 하였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말씀을 설명할 때는 죄를 치명적인 살인 바이러스에 비유해서 설명했는데 마침 그 때에 레지던트 이블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고 어느정도 아담의 죄로 그 모든 후손이 죄를 짊어지고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수긍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와 성경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또한 계속해서 그의 아내의 태가 열리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수년동안 매일같이 대화나누면서 어느날 주님께서 그에게 성경을 주라는 음성을 듣고 자연스럽게 딸아이에게 선물했던 만화책 성경을 그에게 전해 주었는데 그가 기쁘게 받고 그 책을 읽는다고 했을때 너무도 기뻤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맞고 서로 자택 근무를 시작한 몇개월 후에 그에게서 아내가 임심했다는 소식을 듣고 뛸듯이 기뻐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10여년을 기도했다. 하나님은 기도응답을 주님의 때에 하신다. 할렐루야."했을때 그도 매우 고맙다고 응답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의 아내는 40대 초반 그는 40대 후반. 그런데 그 동료가 나에게 그의 아들이 위독하다고 메세지를 보내서 나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나를 아는 가까운 모든 사람들에게 기도를 부탁했고 다시 하나님께 눈믈로 호소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응답으로 그 아이는 무사히 Urgent Care에서 나와 그 동료의 집으로 갔고 지금 8개월이 지난 현재 미국 전체 아이들 중 최고 3%에 드는 건강한 골격과 체중을 유지한 아이로 크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yeon님의 글을 읽는데 주님께서 나의 간증을 하라는 강한 마음을 주셔서입니다. 이 사이트를 2007년 부터 보고 있지만 이렇게 나의 간증을 쓴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주님이 yeon님을 많이 사랑하시나 봅니다. 성경을 읽으시면서 주님의 참사랑을 깨닫게 되길 주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의뜻대로살고픈청년

2021.09.04 06:01:03
*.70.55.111

하나님께서 기다리시기를 얼마나 하셨는지를 이렇게 길게 적었는데도 계속 패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는것에 안타깝다고 하는 것이 저는 굉장히 인본주의적인 기준으로 보입니다.

 

최근 동성애를 비롯해서 소위 '진보'를 지향한다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분들 중에서 '인권'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인 '천권' 보다도 그 권위를 위에 두는 인본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인간에 대한 마음은 참으로 따뜻하나 하나님에 대한 마음은 너무나 메말러있음을 봅니다.

결국 어떤 일이 있어도 그들이 하나님께 용납받아야한다는 것을 계속 주장하는걸로 보이시는데 

 

판단의 기준을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두시고 말씀을 다시 묵상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어떤 패악한 죄를 저질러도 용납되어야한다는 말씀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이 부분도  진보 측에서 소위 주장하는 '인권 만능주의'쪽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시며 옳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성경을 읽어도 이해가 됩니다. 왜 그러셨지 하는 것을 알아가는 부분에서도  그 부분에 대한 기본 전제가 빠지게 된다면

 

인간인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신의 기준을 깎아내리는 꼴이 됩니다.

 

또한 그들이 그렇게 불평하는 것이 단순히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면서도 일시적인 불평에 그친다기보다는 그들의 마음의 근원에는 하나님이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이는 곧 자기 자신들의 배를 섬기며, 하나님에 대한 소극적인 불평 수준을 넘어 적극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중심에 '자신자신의 안위' 곧, 자기 스스로를 우상으로 섬기며 자기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것에 해당합니다. 이는 십계명 1계명을 어기는 아주 중대한 죄로 여겨집니다. 금송아지 사건과 보여지는 모습은 다르지만 그 본질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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