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정경화(正經化) 과정(4)

조회 수 4239 추천 수 297 2008.10.31 21:27:54
성경의 정경화(正經化) 과정(4)



4. 역사적 정경화 과정


성경을 저작함에 하나님은 먼저 역사에 직접 개입하셔서 사건과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인류 구속의 뜻과 계획을 계시했다. 그리고 선택된 저자들에게 그 계시를 바로 깨닫도록 성령으로 영감을 주고 또 영감 받은 내용을 정확히 조명케 하여 인간의 글로 기록하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 시대, 여러 저자로 저작된 당신의 말씀들을 보존 수집하여 정경(正經)으로 형성시켰다.

아타나시우스가 367년에 처음으로 사용한 정경(Canon)이란 단어는 막대기 자를 뜻하는 헬라어에 유래한다. 용량, 무게, 길이 등을 측정(measure)하는 것보다는 똑 바른지 굽었는지 갖다 대보는 기준(rule) 혹은 표준(standard)의 의미를 지닌다. 즉 정경으로 확정된 성경만 하나님 말씀이라는 뜻이다.

성령의 계시, 영감, 조명까지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과 인간 저자의 내면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반면에 정경화는 이제 외적으로 완연히 드러나기에 인간이 주도권을 잡고 행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말한 대로 하나님이 인간더러 인지할 수 있도록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드러내었다면 잘못 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당연히 당신께서 정경으로 만드셔야 한다. 또 실제로 정경화는 전적으로 성령이 주관했다. 단지 인간이 선택 확정 지었다는 역사적 이유만으로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고는 결코 반발하지 못한다. 그럼 정말 그러한지  정경화의 역사적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4.1. 구약성경의 정경화

구약 성경의 내용은 시대적으로 창조부터 바벨론 포로귀환후기까지 망라하고 있다. 바꿔 말해 성경의 기록뿐 아니라 정경화도 사실은 어떤 특정 시점이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졌다는 뜻이다. 물론 현재처럼 39권으로 확정된 것은 주후 90년의 얌니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그런 최종적 확정 작업 이전에 이미 유대 공동체는 하나님 말씀으로 인정하고 읽고 묵상하며 따르고 있었다.

역사적 기록으로는 우선 주전 132 년의 외경 ‘집회서’에 저자의 손자는 “율법과 선지서 그리고 그 뒤에 오는 다른 책들”에 대해 서문에서 언급했다. 비록 “다른 책”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없지만 당시에 이미 확정된 구약성경을 세 부분으로 구분까지 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여기서 선지서는 여호수아에서 에스더까지 이르는 역사서를 포함한다. 그래서 역사서는 전선지서로,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의 예언서는 후선지서로 분류한다.)

또 주후 1세기 중엽에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항상 받아들여졌던 기록과 금방 받아들여졌던 기록을 포함해서 나머지 네 권의 책들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인간의 삶에 대한 원리를 담고 있다”라고 진술했다. 성경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받아들여진 것에서부터 최근에 받아들여진 것도 있다는 말이다. 그가 열거한 책 리스트는, 소선지서 12권을 한 권으로 묶는 것 같이 분류방식이 다르지만, 현재 기독교에서 인정하는 39권 그대로였다. 요세푸스보다 앞선 유대 저자 필로도 구약의 세 분류를 인정했고, 또 주전 168년에서 주후 68년까지 존속한 것으로 보이는 쿰란 공동체에선 구약 39권 중에 에스더서를 제외하고 다 발견되었다.  

흔히 모세오경으로 불리는 율법(Law;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은 대강 다윗의 때 까지는 현재의 형태로, 또 나머지 선지서(Prophets; 역사서와 예언서)들은 포로 후기에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사건 발생보다 훨씬 후대에 기록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작은 각 사건이 있을 때마다 동시대적으로 이뤄지고 또 읽혀졌지만 하나님 말씀으로 수집 분류되어 경전으로 확정된 시점이 그렇다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수시로 전 민족적인 종교개혁을 했었고 특별히 남북 왕국이 멸망되어 이교도들에게 포로로 잡혀간 것에 충격을 받자 이미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음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성경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유다왕 요시야 때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국민들 앞에 낭독하여 회개하고 전국의 우상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이 때 발견된 책은 모세오경 중에서도 신명기로 추정하고 있다.)  

“왕이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자기에게로 모으고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왕하 23:1-3)

지혜서로도 불리는 성문서(聖文書 Writings)의 저작 배경은 욥기의 경우는 족장시대, 시편과 잠언은 모세부터 통일왕국시대에까지 이른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수집 된 것은 포로 시대나 그 이후로 본다. 어쨌든 구약성경이 최소 주전 150년까지는 지금의 39권으로 구성된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주후 90년에 얌니아 종교회의를 정경화의 확정시점으로 보는 이유는 구약성경 중에 몇몇이 정경에 포함시켜야 되는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스더서는 여호와에 대한 언급이 없고, 전도서는 회의주의가 팽배하고 쾌락주의를 암시하는 구절이 일부 있으며, 아가서는 남녀 간의 사랑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며, 잠언은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내용이 있고, 에스겔서는 모세 오경과 상충된다는 의구심과 반발이 있었다.

그러나 논의 된 모든 문제점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충분히 드러내지만 단지 표현이 오해를 살만하거나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정경에 그대로 포함시키기로 했다. 말하자면 그 종교회의는 새롭게 정경을 선발 추가시킨 것이 아니라 기존에 정경으로 널리 유포 사용되고 있던 것을 재확인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신자까지 포함해, 성경 정경화의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오해하는 사항이 하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구약의 경우에는 유대교 랍비들이 특정 시간과 장소에 한 번에 모여서 이미 수집된 수십 수백 권의 책을 함께 검토해서 그 중에서 내용이 가장 심오해 정경이 될 만한 것들을 (투표 같은 방식을 통해) 골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이미 유대인들의 신앙공동체에서 정경으로 인정받아 읽혀지고 있던 것을 랍비들은 단지 차후에 확정한 것이다.

이미 말한 대로 이스라엘에 때때로 경건한 왕들이 나와 종교개혁을 했고 또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 자기 민족의 종교를 더욱 순전하게 지킬 필요성이 있어서 경전을 재확정지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때도 새롭게 저작하여 추가시킨 것이 아니라 그 때까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선지자들이 이미 기록해 놓은 책들의 가치를 새삼 인정하여 공동체 전부가 다시 회개 헌신하기로 한 것일 뿐이다.

말하자면 성경의 필사, 유포, 수집, 편집, 정경화 이전에 인간 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아 기록했다. 또 그 기록한 내용을 유대 공동체에서 선포 내지 낭독했고 사람들은 찔림을 받아 말씀 앞에 진심으로 엎드렸다. 단적인 예로 모세는 십계명의 돌 판을 두 번 받았고, 예레미야도 예언을 두 번이나 기록했어야 했다. 또 모세의 고별 설교는 기록으로 남겨졌고 여호수아도 율법을 전 국민 앞에서 낭독한 후에 여호와를 따를지 다른 신을 따를지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바꿔 말해 구약성경은 유대민족 전체가, 그것도 오랜 세월 동안에 걸쳐서 반복해서 읽고 그 말씀대로 따라 살기로 노력한 결과적 산물이다. 천재적 랍비나, 독재적 왕이나, 소수의 제사장들에 의해, 그것도 일시적인 편집 작업을 통해서 확정된 것이 아니었다. 요컨대 백성들이 그 말씀에 영적 감동을 받았느냐 여부만이 정경화의 기준이었다.

그럼 수백만이 넘는 백성들이 그것도 근 이천 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동일한 영적 찔림을 받고 동일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려면, 최소한 정경으로 인정하자고 무언의 합의를 하자면 그 배경에 성령의 간섭이 작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 자꾸 인간이 저작하고 인간이 수집 선택했다는 외부로 드러난 모습에만 국한하는 단세포적 관점으로는 성경이 절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흔히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이고 기독교는 유대인들의 민족종교에 뿌리를 둔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 내지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고 반발한다. 그에 대한 반론은 얼마든지 많지만, 성경의 정경화라는 관점에서만 따져 보아도 반드시 한 민족이 동일한 영적 체험을 했어야만 했다. 만약 구약성경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오랜 역사적 산물이 아니었다면, 다른 말로 개인 혹은 몇몇 영적천재의 창작물이었다면 그야말로 인간의 사상으로 전락하지 않는가 말이다.    

무엇보다도 구약은 역사이기에 오히려 더 하나님 말씀이다. 역사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며 생생한 체험이다. 또 역사이기에 하나님이 인간사에 직접 개입한 은혜의 기록이 된다. 어떤 민족 전체가 타국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열 가지 재앙과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으로 구원 받았다면 어느 누가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것이며 또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반발하겠는가? 또 그것을 두고 몇몇 사람이 모여, 아무리 제사장이나 왕이라 할지라도, 정경으로 선택하자 누락시키자 말할 수 있는 권리란 없다. 아니 감히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 아닌가?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문자를 가진 민족 중의 하나였다. 그 민족에게 하나님은 정말로 기록하지 않고는 안 될 은혜들로 간섭하고 말씀으로 계시하셨다. 특별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4-9)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직접 계시한 말씀들을 기록하여 모든 후손들이 암송하며 그대로 따라 살게 하라는 것이다. 바꿔 말해 정경화 작업을 하나님이 시작하고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단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다 같이 납득, 동의, 감동, 결단, 헌신, 순종하는 한에 말이다.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만사에 개입하시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는 유일한 민족이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그 민족을 택하여(신7:7) 그런 진리를 알 수 있도록 계시해 주셨다. 또 자기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 족속들에게 흘러나가도록 하는 제사장 나라의 소명을 받았다. 나아가 그 소명을 잘 수행하도록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했다. 따라서 유대 민족은 실존적으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바로 이 언약의 바탕에 비추어 정확하게 기록된 책만을 정경으로 인정했던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나 혼합주의에 빠져들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만은 유지하려 노력했다. 때때로 종교개혁을 했고 민족적 절기에는 꼭 성경을 낭독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한 기록으로는 따질 수 없지만 모세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서, 또 여호수아가 임종 직전 세겜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언약을 갱신한 전통을 따랐다. 아가서는 유월절에, 룻기는 오순절에, 애가는 아브월 9월 기원전 586년 유다가 멸망하던 날에, 전도서는 초막절에, 에스더서는 부림절에 낭독되었다. 한 마디로 구약은 랍비가 아닌 이스라엘 민족이, 또 그 민족보다는 성령이 정경화 한 것이다.

마지막이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에서, 그렇게 확정된 정경을 우리 주님이 확인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눅24:44) 구약을 율법과 선지서와 성문서 셋으로 구분하는 것이 당시에 이미 통용되고 있었고 또 예수님도 그대로 다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한 후에 사단의 시험을 받을 때에 (이미 정경화 된) 구약성경 말씀으로 물리쳤다. 가공할 영적 존재인 사단을 인간이 인간의 능력으로, 나아가 인간의 말 몇 마디로는 더더욱 절대 물리칠 수 없다. 하나님 본체이신 예수님이 하나님 당신의 말씀으로 대적하니까 사단은 꼼짝 없이 물러간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약이 예수님 당시에 이미 정경화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확실히 해주는 증거가 따로 있겠는가? 바꿔 말해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확신하여 그대로 순종하겠다는 마음으로 읽고 묵상하고 적용하면 오늘 날도 귀신을 쫓고 병이 낫고 죄인이 변화되는 동일한 권능과 표적들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지 확신할 수 있는 여부는 정경화의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는 것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누가 따로 강요하거나 편집 회의 하지 않고도 자연히 구약성경 앞에 엎드리고 자손 대대로 가르쳤지 않는가? 우리 또한 말씀 앞에 진정으로 엎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자기 존재와 삶과 인생을 비롯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얼마든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날마다 체험할 수 있다.  

10/31/2008

김순희

2010.12.21 12: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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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찰도 하기 전에 침통부터 흔들어 대는 돌팔이 한의원처럼 우리의 말씀에 대한 이해는 그저 문제 해결을 위해 적절한 말씀을 찾아내어서 액땜하 듯 외워대는 신앙, 마치 드라큐라 앞에 십자가 들이밀 듯 말씀을 가지고 문제만 해결하려는 오래된 습성들이 최고의 문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씀 앞에 진정으로 엎드림, 그 엎드림을 우리 모두 배우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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