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4:1-11)) 사탄에게 이브 대신 복수하신 예수님

죄인 구원 담화 (9)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4:1-11)

 

완전한 인간으로 받은 시험

 

많은 신자가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십자가 죽음이 전부라고 여기고 자기가 받을 죗값을 대신 받으신 예수님의 공로에만 감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속 죽음의 은혜가 얼마나 고귀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지 제대로 깊이 인식하지 못합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없었으면 구원도 절대 없는 너무나 큰 은혜이지만 단순히 일회성 영웅적인 선행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오르기 전에 실제로 완전한 인간으로서 모든 죄를 완전히 이겨내셨습니다. 또 죄가 없으시려면 인간으로선 불가능하므로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한마디로 그분은 인간의 죄를 씻음에 하나님에게 바칠 수 있는 완전한 제물이었기에 완전한 구원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또 완전한 구원이었기에 그 구원의 취소도 당연히 없으며 구원 안에 든 신자를 완전히 넘어뜨릴 존재도 세상에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아서 죄를 이기신 본문의 과정을 잘 살펴보면 왜 그러한지 알 수 있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서 시험받았고 또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죄가 없으시다는 두 측면 중에 오늘은 첫째 주제만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죄로 시험받았다고 해서 사기, 간음, 강도, 살인 등의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싶다는 유혹을 받았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주님은 삼십 살까지 장남으로 목수 아버지 요셉의 일을 도왔고 십자가에 달릴 때까지 열두 제자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많은 이들을 상담 치유하고 천국 복음을 가르치느라 너무 바빠서 그럴 겨를도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인간으로서 인생살이의 희로애락은 우리와 동일하게 겪었으며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은 충분히 동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시험받았다는 것은 본문의 광야 사건을 의미합니다. 

 

마태는 “그때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4:1)라고 서두를 시작합니다. 먼저 주님이 시험을 받은 시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직후입니다. 요한은 그 전에 주님에 대해서 죄인을 회개케 하려고 오셔서 성령과 불로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공표했습니다. 

 

그가 주님께 세례를 주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임했으며 하늘로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마3:13-17) 성자로서 2위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공사역을 시작하자 3위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재하여 함께 동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전에 주님에게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께서 성부이신 1위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고 모든 이로 알게 해준 일종의 취임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메시아로서 첫 사역을 죄인이 많은 예루살렘 성이 아니라 사람 한 명 없는 광야로 가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광야를 사탄이 거주하는 곳으로 여겼습니다. 대속죄일의 제사에서 양 두 마리를 택하여 한 마리는 죽여서 그 피를 지성소 속죄소에 뿌려서 백성들의 죄는 용서받습니다. 나머지 한 마리는 산채로 대제사장이 머리에 안수하여서 백성의 모든 죄를 전가한 후에 광야 먼 곳으로 보내버립니다. 죄를 그 궁극적인 기원인 사탄에게 돌려준다는 뜻입니다.(레16장) 예수님은 백성들의 죄 문제부터 사탄과 담판 지은 후에 메시아로서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을 때 그랬던 것처럼 사십일을 금식하며 십자가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이 육신적 정신적으로 최고로 연약해져서 생명마저 거의 한계에 이르러 시험에 넘어가기 가장 쉬운 때에 사탄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곁에서 계속 주님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제는 넘어뜨릴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로 나올 때부터 사탄은 주님의 정체성을 알아보고 언제 자기를 멸망시키려나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구약성경을 읽으며 묵상하고 금식하면서 기도만 하지 자기를 상대할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까 서서히 얕잡아 봤을 것입니다. 

 

사탄의 세 가지 시험

 

영악한 사탄인지라 가장 먼저 허기진 주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3절)고 시험했습니다. 사람은 돌을 떡으로 만들지 못하니까 이미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사십 일이나 자기를 멸하려 하지 않으니까 정말 그런 권능을 가졌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떡을 만들지 못하겠다면 자기가 줄 수 있다는 뜻도 암시한 것입니다. 

 

주님은 사탄이 지칭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이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전제했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너 혼자 능력으로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않으냐고 인간적인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분리시키려는 사탄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그 시험을 물리칩니다. 

 

주님은 자신을 사람이라고 칭했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서, 그것도 사십일이나 굶어서 완전히 쇠약해진 모습이라도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지 절대로 사탄 네 말은 듣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만들어 주는 떡이라면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받아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떡으로만”이라고 했으니 떡도 중요하다고 주님은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정말로 인간답게 살려면 가장 먼저 또 중점적으로 하나님과 영적으로 친밀한 교제를 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닮게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이며 반드시 그래야만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심히 좋아하셨던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둘째로 거룩한 성에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또다시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6절) 부추겼습니다. 첫째 시험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대답했으니까 곧바로 성경 말씀을 인용해서 뛰어내려도 된다는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그 말씀은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시 91:11,12)였습니다. 이는 문맥상 전능하신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하라는 뜻을 강조한 말씀이고 특별히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는 하나님의 율법에서 벗어나서 죄로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비유하는 관용어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이미 말씀으로 허락하셨으니 뛰어내려도 된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문자적 의미로만 적용해서 호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다고 신명기 6:16의 말씀으로 그 시험을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면 말씀대로 예하고 순종만 하면 되지 그 말씀이 혹시 이뤄질까 거짓은 아닐까 의심하며 실험해선 안 된다고 단호히 선언한 것입니다. 그럴 리도 없지만 만약 하나님이 떨어져 죽도록 버려두어도 사탄 네 도움은 절대 받지 않겠다는 뜻도 드러낸 것입니다. 

 

두 번 다 실패한 사탄은 최후의 카드로 노골적으로 달콤한 사탕을 주님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습니다.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모든 것을 주님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허풍이 아닙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세상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섭리 하에서 사탄의 수중에 들어가게 하나님은 묵인했습니다. 특별한 여자의 후손이 와서 그 머리를 상하게 할 때까지는 모든 이가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미혹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구약 시대 내내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과 여러 언약을 맺고 실현함으로써 당신의 구원 계획을 조금씩 더 구체화시켜 왔습니다. 이제 그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이 오셨기에 사탄에게 승리할 일만 남았습니다. 

 

사탄은 주님에게 당신에게 절만 하면 그 모든 권세를 주겠다고 합니다. 예수님더러 자기 부하가 되라는 뜻이므로 아예 대꾸할 가치도 없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야단치면서 오직 나의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섬기겠다고 신명기 6:13 말씀을 인용해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지금껏 사탄인 줄 알고도 일일이 상대해주었지만 이제부터 아예 상종도 않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자리에서 얼마든지 사탄을 멸할 수 있었지만 원시 복음대로 사탄이 예수님의 발꿈치를 물고 주님은 그 머리를 상하게 해야 합니다.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그의 모략을 완전히 무산시켜서 그 거짓됨을 사람들로 속속들이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지금도 사탄의 모략은 완전히 무산되었으나 백성은 없고 사탄과 예수님 둘만 있었고 사탄이 주님의 발꿈치를 문 일도 없습니다. 그 일은 나중에 십자가에서 달성될 것입니다. 

 

이브와 동일한 유혹

 

간단히 살펴봤지만 이 세 시험을 연결해보면 구원에 관한 아주 중요한 영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받았던 시험이 바로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뱀에게 유혹받았던 과정은 물론 그 내용과도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이브를 어떻게 유혹했습니까?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5,6)

 

우선 사탄은 하나님이 너희가 당신처럼 되는 것을 싫어해서 선악과를 먹지 못 하게 했다고 거짓말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미움 내지 의심을 심어주어서 그분과 떨어지게 만들려는 뜻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은 하나님 명령처럼 절대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은 선악과가 동산 과일 중에서 최고 좋은 과일이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비췬 것입니다. 마치 엄청난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하나님이 너희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고 이브의 귀에 대고 속삭인 것입니다. 

 

이브는 당장 그 말에 솔깃해져서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과일을 다시 천천히 뜯어보니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와 갑자기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너무 보잘것없이 여겨진 데다 더 아름답고 풍성한 과일들을 양껏 먹을 수 있었기에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동안 어떤 과일을 먹어도 아무 탈도 없었고 에너지만 샘솟았는데 하나님은 왜 이 맛있어 보이는 과일을 먹으면 죽는다고까지 엄하게 경고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런 의심이 깊어질수록 더더욱 탐스럽게만 여겨지니까 따 먹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의 세 질문도 이브에게 그랬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끊으라는 것이 숨겨진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세 시험이 이브가 시험에 빠졌던 것과 똑같이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만드는 것들을 예수님에게 주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인간적 취약점을 파고들어서 흔들어보려 한 것입니다. 

 

가장 먼저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는 것은 주님이 사십일 금식을 하여서 매우 굶주린지라 실제로 돌마저 먹음직해 보이게 된 상태를 노린 것입니다. 사탄의 말대로 떡으로 만들어버리면 이 죽을 만큼 괴로운 허기를 당장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기면 세상에서 먹음직해 보이는 것들에 가장 먼저 관심이 쏠린다는 것입니다. 그럼 또 이브가 그랬듯이 사탄이 주는 미끼를 덥석 받아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차라리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음식 외에는 먹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먹을 것 마실 것 하나 없는 이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반드시 자신을 보호해주신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둘째로 사탄은 주님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했습니다. 이브처럼 보암직한 생각을 갖도록 부추긴 것입니다.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도 전혀 다치지 않는다면 성전에 모인 모든 이에게 너무나 보암직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아무리 모든 이의 눈에 좋아 보이는 일이라도 단순히 자기의 이름을 높이려고 사람들과 하나님에게 보여줄 수는 절대로 없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사탄은 주님이 자기에게 경배만 하면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양도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브도 자기가 하나님처럼 세상에서 최고 지혜로운 존재가 되고 싶었고 그러면 선악과를 먹는 것은 아주 지혜로운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주님도 자존심을 잠시 접어두고 사탄에게 한 번만 고개 숙이면 천하만국의 영광이 당신의 것이 됩니다. 절 한 번 하지 않고 천하 영광을 잃는 것보다 절 한 번 하고 그것을 얻는 것이 더 지혜롭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당신의 지혜로 다스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이에게도 절대 경배할 수 없다고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닮게 만들어서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축복을 주었습니다. 천사도 그런 인간을 섬기라고 만들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다 마련해 주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품 안에 있으면 따로 얻을 영광은 없습니다. 인간은 그래서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존재에게도 경배해선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이브는 하나님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면서 자기 딴에는 지혜롭게 행한다고 선악과를 먹었으나 결과적으로 사탄에게 경배한 셈입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지혜롭다고 행한 일이 하나님 안에선 가장 어리석은 실패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절대적이고 완전한 지혜의 원천이므로 인간에겐 그분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 됩니다. 나아가 그분의 청지기로서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려면 당연히 그분의 지혜에만 의지해야 합니다. 

 

사탄은 이브로 선악과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보이도록 해서 하나님을 거역하게 이끌었던 바로 그런 효과를 예수님에게도 기대하고 동일한 세 가지 시험을 한 것입니다. 첫째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나 둘째 인류의 대표인 예수에게 죄를 부추긴 원흉은 동일한 사탄이었고 죄를 범할 대상도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모든 죄의 출발이 이러하므로 인간이 지은 모든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범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브에게 쉽게 통했던 시험으로 예수님마저 넘어뜨려서 계속해서 인간을 자기 노예로 죄에 묶어두려 했으나 무참하게 실패했습니다. 다음 기회를 노리며 떠날 수밖에 없었고 예수님은 천사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선한 것을 공급받았습니다. 에덴에서 이브가 타락하기 전에 동산의 모든 과일을 임의로 먹었던 상태와 같아졌습니다. 

 

모든 인간이 갖는 세 가지 욕구

 

그런데 요한 사도도 인간이 죄를 짓는 과정이 바로 이 세 단계와 같다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해서 세상 전부가 사악하니까 완전히 결별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세상 자체를 하나님이 만드셨지 않습니까?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다스리는 존재는 하나님과 사탄뿐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배제되면 사탄에게 속하는 세상과 세상의 것이 됩니다. 또 그렇게 되면 세상과 그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채우려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 모든 죄의 기원은 사탄이고 그 죄가 실현되는 통로와 양상이 인간의 이 세 가지 욕구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가 하나님을 거역하자 선악과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해줄 것처럼 보였습니다. 각각은 그 순서대로 요한이 말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대변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세 가지 욕구를 채우려고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최대한 많이 취득하기 위해서 살아갑니다. 또 모든 이가 그러니까 서로 시기 분쟁하다 온갖 죄를 짓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세 시험을 이김으로써 인간들의 겪는 모든 죄의 시험을 다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이니까 당연히 모든 죄를 이길 수 있었겠거니 단순하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갔다고 말합니다. 광야에 가서 금식했더니 사탄이 알아채고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성의 한 많은 여인을 구원해주고 죽은 지 나흘 되는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려낼 때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당신께서 계획하여 이루셨던 것처럼 사탄이 당신에게 정확하게 그 세 가지 시험을 하도록 당신께서 이끄신 것입니다. 

 

최초 인간 아담은 사탄에게 져서 후대의 모든 인간으로 사망이 왕 노릇을 하게 하는 원죄를 물려주었습니다. 이제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이 사탄과 직접 대면하여서 그 원죄를 이브가 당했던 순서대로 따르며 완전히 이기셨습니다.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머리에 짊어진 양이 광야로 가서 그 죄를 사탄에게 돌려주었듯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이 인간이 짓는 모든 죄를 광야로 가서 사탄에게 되돌려준 것입니다. 실감 나게 말하면 이브가 당했던 대로 똑같이 사탄에게 복수해준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신자에게 당신의 생명이 왕 노릇을 하게 해준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만 주목하면 자칫 주님의 흘린 피의 공로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고 하니까 어딘가 모르게 레위기 16장 같은 미개한 종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거기다 대표와 전가라는 종교적 용어로 구원을 논리적으로만 설명하니까 잘 이해가 되지 않고 일단 믿어보자는 식이 되어버립니다. 주님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사탄에게서 오는 모든 죄를 완전히 이기셨습니다. 사탄도 언제든 간단히 이길 수 있는 분이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실제로 죽으신 것입니다. 

 

이 시험을 통해 주님은 인간이 범하는 모든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것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말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등을 사십 일이나 금식하여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처럼 완전히 쇠약해진 당신의 몸으로 실현해서 보여준 것입니다. 광야의 시험에서 주님은 사실상 구원의 본질을 다 보여준 셈이며 십자가는 그 본질을 천하만국 앞에 영광스럽게 완성시킨 것입니다. 

 

인간실존의 근본 문제와 해결책

 

결과적으로 주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이 세상에서 살면서 묶일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정욕에 대해서도 완전히 승리한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세대 모든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 고민하는 인간실존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정답도 제시해준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 땅에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보이는 일들을 풍성하게 행해도 여전히 허망하고 갈급해지는 이유와 그 해결책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과 도덕성과 영성이 가장 진보된 지금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세계 곳곳의 유명 관광지로 여행 다니면서 안목의 정욕을 채우고, 또 맛집을 찾아서 유유자적하게 즐기며 육신의 정욕도 만족시키려는 버킷리스트를 실현하는 것 아닙니까?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젊어서 열심히 일해서 근검절약하며 돈을 모아서 조기 은퇴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이생의 자랑이 되었지 않습니까?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쁘거나 죄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인생에서 귀한 일이고 짧고 한 번뿐인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만한 일입니다. 여행은 사람에게 인생살이의 지혜를 주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스트레스받으며 현실과 부대낄 때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것도 자기 혼자에게만 좋다가 금방 시들해집니다. 죄송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엉덩이에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합니다.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계속 떠나다 보니 스스로 역마살이 끼었다고 핑계 댑니다. 

 

요한이 사탄에게서 오는 죄의 본질 셋을 말한 다음에 바로 이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하나님의 사랑이 없고 그분을 알지 못하는 인간 사회에서 아무리 신나고 기쁘며 심지어 다른 사람으로부터 의롭다고 칭찬받는 일들도 다 지나간다고 합니다. 찰나적인 기쁨 만족 의미 가치만 줄 뿐이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만 영원한 가치와 의미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혹시라도 신자도 동일한 인생 버킷리스트를 실현하려고 여행하면서 주일에 예배보고 수시로 말씀 읽고 기도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 것이라고 여기면 큰 착각입니다. 신자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준비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이나 후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 땅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다스리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아서 주변에 나눠주는 것입니다. 

 

교회보다 예수

 

그런데도 요한의 이 말씀을 문자적 의미로만 적용하여서 실제로 세상과는 완전히 담을 쌓고 교회에서의 종교적 행위에만 집중하고 또 그러는 것만이 인생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꽤 많습니다. 교회 활동은 당연히 너무 귀하지만 그것에만 매달리면 자칫 자기 혼자 그분의 사랑을 독점하려는 것이 됩니다. 대신에 교회 안의 아직도 복음을 잘 모르는 연약한 성도에게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기도와 특별히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겨서 주님처럼 인간실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면 아주 의로운 하나님의 일이 됩니다. 

 

그러지 않고 혹시라도 구원이 취소되어 심판받을까 두려워서 신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무만 다한다면 하나님이 바라는 것과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반대쪽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자기가 벌 받을까만 염려하는 모습은 여전히 자신의 안위에만 초점이 몰리는 원죄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는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이브가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쓰러져서 타락하게 된 근본 원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알고 있듯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과적 행동일 뿐이며 그 전에 자기가 사탄처럼 이 땅의 주인이 되려고 하나님과 그분의 자신을 향한 사랑을 자기 마음속에 완전히 배제해버린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일은 누차 강조한 대로 하나님이 없다고 가정하면 부부끼리 사이좋게 지낸 도덕적으로는 선한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아직 교회나 예배 같은 종교는 없었고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사랑하는 교제뿐이었습니다. 최초 인간이 하나님 그분을 자기 인생에서 지우자 모든 삶에서 완전한 실패가 왔고 그것이 바로 실질적인 죽음이었습니다. 

 

또 바로 그것이 현재 모든 세상 사람이 겪는 공허 갈증 눌림 묶임 고통 분노 등의 근본 원인입니다. 아무리 자기만의 버킷리스트를 넘치도록 달성해도 여전히 허망하다면 그것이 바로 실질적인 죽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다른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이뤘는데도 정작 본인에게 만족이 없으면 그동안 행한 것은 완전히 허사입니다. 역사적으로 인류 최대의 버킷리스트를 달성한 솔로몬 왕이 하나님 없이 해 아래에서 행한 모든 일이 헛되고 헛되며 헛될 뿐이라고 탄식했지 않습니까? 

 

여행을 정말로 많이 해본 한 전문가가 여행의 목적은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평소의 일을 더 열심히 하려고 여행을 간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광야 같은 인생길이 너무 고달파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로운 일을 통해 극복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지만, 반드시 그 출발지인 하나님께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성실히 수행해야만 합니다. 

 

예수 십자가가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의미는, 어쩌면 더 중요한 뜻은 모든 인간이 눌려있는 인간실존의 근본적인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고안한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독생자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실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인간에게 참 생명을 주실 수 있고 완전하고 영원한 진리로 참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러니까 사탄의 시험을 마치고 공사역을 시작하는 첫 마디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즉,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제발 돌아와 그분과 참사랑의 관계로 교제하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미 십자가 복음 안에 들어와 신자 된 특권이 얼마나 엄청난지 아셔야 합니다. 더 이상 영원한 정죄함이 없으며 세상 어떤 것으로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신자를 끊어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광야에서 사탄에게 앞으로 당신께서 십자가로 구원해줄 당신의 자녀들에게는 더 이상 이브 같은 시험이 먹히지 않도록 당신처럼 성령님이 이끌어주실 것이라고 엄중한 경고를 주었지 않습니까? 당신의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은 성령이 함께 하는 신자에게 천사가 그 독생자를 수종하듯이 당신의 모든 좋은 것으로 아끼지 않고 베풀어주십니다. 

 

그럼 신자가 된 후의 인생에서 행할 일도 이미 완전히 정해졌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와 똑같이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인생의 모든 허기와 갈증을 해소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길입니다. 

 

(9/25/2022)


날마다순종

2022.09.26 06:56:18
*.14.99.25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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