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배우기로는
기독교 교리에서
죄의 경중에 있어서 차이는 있으나 죄의 결과는 같다.
곧, 천국은 단 한 톨의 죄악도 허용하지 않은 곳이기에 죄의 경중과 무관하게 죄가 있는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원죄를 갖고 태어났으며 자기중심적으로 악한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거듭남을 통해서 성령충만을 받아서 구원을 얻어서 사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신자가 된 이후 현재의 삶에서도 천국을 누립니다. 사후뿐만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
순간에도 천국이 있음)
곧, 스스로의 자격과 능력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사후 천국을 하나님이 내 안에 내재함을 느끼고 그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
이것이 제가 알고 있는 복음과 구원, 그리고 사후 신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근거입니다.
저는 이 진리를 굳게 믿고 있는데, 믿기 때문에 때때로 억울함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제가 죽기까지 저지르는 악행과 죄는, 제가 살인자가 되지 않는 한,
연쇄살인마 유영철이나 혹은 푸틴, 시진핑이나 북한의 김씨일가의 죄악보다는 분명히 가벼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와 무관하게 아무리 가벼운 죄라고 인간은 원죄+자범죄 로인해 죄를 짓게 되어있습니다.
뒤집어말하면 유영철 같은 살인자가 죽기 1분 전에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고 구원을 얻는 것과,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고 사후 천국에 입성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죽기 직전 예수님 오른쪽에 있던 강도가 구원받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참담하고
통한에 사로잡힙니다. 그런 인간도 하나님은 구원해주신다는 사실이 감사함보다는 억울함으로
다가옵니다.
유영철의 경우는 살아 생전에도 잡혀서 교도소에서 현생에서의 벌을 받고 있으니 차치하겠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죽기 적전에 구원을 받을 수도 있는 독재자같은, 제 삶에서 유리된 사람을 꺼내지 않고
당장 제 학창시절부터 무수히 저를 괴롭혔던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중2부터 고1 때까지 같은 반만 되면 괴롭히고 놀리고 아이들 앞에서 망신을 주던 애가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수의학과에 진학했더라고요. 그 소식을 알게 된 것도 몇 년 전이니 지금은 개업의가 되거나, 어디 대형병원 밑에서 페이닥터가 되었겠지요.
막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생 1학년 때 한 번 술자리에서 자기가 그 때 괴롭혀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는 식으로 얘기는 하던데, 무려 13년 전입니다. 근데 그것도 일대일로 진심으로 사과하기에는 쪽팔렸나봅니다. 그냥 애들 모여있는 곳에서 '그 때는 내가 잘못했지~'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든 생각이
' 뭐 어쩌라는거지? 미안하다는거야 아니라는거야? 이 X새끼가...' 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년 뒤에 20대 중반에 페이스북으로 연결되었을 때는 저에게 연락할 때는 좀 더 나이가 먹고 미안함을 느꼈는지 한 번 메시지 주고받을 때 제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태도와 수그리려는 태도는 봤습니다. 그러고나서는 연락이 끊겨서 지금은 연락 안주고받은지 또 몇 년이네요. 만약 그 때 정말 진심으로 눈물로라도 사과한다고 장문의 편지라도 썼다면 이런 앙금도 씻겼겠지요. 그 인간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지도 부끄러운지는 아는건데 인정하기 싫은건지...
물론 저는 완전히 그 사람을 용서하지는 않았습니다. 매일 등교하면서 돌로 뒤통수 찍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십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그 때 그런 용기라도 내었다면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인생 뭐 별거없네~"라는 자신감으로 지금처럼 살지 않고 더 잘살지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남을 괴롭히던 친구가 사회적으로도 돈도 많이 벌고 잘나가는데,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죽기 직전에 구원을 얻어서 천국에서 마주치면 굉장히 화가 날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인간에 비해서 나은 점은 예수님을 아는 것 뿐인데, 내 소중한 보배인 예수님마저 저 인간과 공유해야한다는 사실에 화가 날 것 같습니다.
결국 죄의 경중도 없이 죄가 있다면 누구도 천국에 입성할 수 없고, 반대로 천국은 '부끄러운 구원' 같은 약간의 정도차이만 있지, 천국은 누가 더 많이 전도했냐 등으로 차별대우하지 않고 모두에게 동등한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저를 괴롭히고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도 동일하게 저와 같이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저는 그 인간이 복음을 모른채로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천국에서 저를 괴롭힌 인간과 얼굴을 마주해야 합니까? 솔직한 심정입니다. 다윗이 원수의 이빨을 부러뜨려달라는 기도를 하는 심정입니다. 예전에 목사님께서 그런 자들마저도 불쌍하고 긍휼한 마음이 들어야한다고 하셨는데, 학창시절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괴롭힘을 당하고 따돌림을 주도했던 인간보다 따돌림 당한 제가 더 긍휼함을 받아야하는것 아닐까요?
이 땅에서 그 인간이 잘 사는거는 뭐 그러라고 합니다. 그런데 천국에서까지 제가 그 사람과 동일하게 복락을 누린다는 것은 너무 저에게 가혹한 것 같습니다. 차라리 천국도 보혈로 입성하되, 층층이 나뉘어져있어서 차별적 복락을 누리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감사기도 2편 올렸다가 갑자기 이런 흑화된 글을 올리는 것 같아서 당혹하시는거면 죄송합니다. 갑자기 잘 지내다가도 뜬금 그 인간이 생각나면 이런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네요. 그리고 사실, 초등학생시절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 그 인간 뿐만 아니라 저는 많은 사람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힘을 당해왔습니다. 대표적으로 그 인간을 말했지만 초등학생 시절 애들 괴롭히고 힘자랑하고 물건도 뺐다가 지금 국밥집 열어서 장사하고 있는 놈도 있습니다. 이 인간도 정말 쓰레기같은 놈인데, 다 적다보면 또 내용 한가득입니다. 어린놈이 어차피 미성년자는 법이 보호한다는 사실을 일부러 악용까지 했던 아주 죽일놈이죠. 가끔씩은 선량한 피해자 대신에 이런 인간이 차라리 살해당했으면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국밥집이 사실 저희 집과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기 때문에 (같은 도시 내) 찾아가서 자식한테 니 애비가 그런 인간이었다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도 합니다. 한 두 명이 아닙니다. 죽어야 될 놈은 많은데, 정작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매번 죄가 '가벼운' 자들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의, 그런 악한 일을 제가 당한 것에 하나님께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인간의 악행이고 예전부터 목사님께서 문답에서 자세히 풀어주신 것 처럼, 하나님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지만 그런 인간이 단지 죄를 자백하고 구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피해자와 동일선상에 서는 상황만큼은 억울합니다.
제게 괴롭힘을 주도했던 사람들에게 자식이 생긴다면 동일하게 그 자식도 애비가 했던 학창시절 악행을 받아서 자신의 악행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기도일까요? 그러한 자들이 끝까지 복음을 모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기도일까요? 더 나아가서, 이 땅에서 결국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죄악이 끊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회에서 천인공노한 죄를 지은 자가 타겟이 되어서 대신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기도일까요?
예전에 베드로가 죄지은 자에 대한 용서를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70번에 7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답을 하셨죠. 문자그대로 490번 용서하라는게 아니라 '무한히 용서하라'라는 뜻인 것 잘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예수님이기때문하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저 작은자이고, 그저 내 한 몸 이 땅에서 몸부림치면서 오늘 하루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도 하기 버거운, 조그마한 죄 하나에도 이기어내려면 발버둥치는 연약하고 조그마한 성도입니다. 소시민적 성도이지요. 그런 용서를 하기에는 손양원 목사님 같은 경지에 이르신 분만 가능한, 말하자면 아주 극소수의 특이 케이스 신자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마치 구약에서 선지자로 부름받은 자가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인 것 같이요. 그 말씀이 이런 일반성도에게 주신 말씀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도 베드로니까, 나중에 위대한 복음전도자이자 사도로서 가톨릭의 시조가 될 사람임을 아셨으니까 그 그릇을 미리 내다보시고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라 여겨서 해준 말씀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끄집어내게 되어서인지 글에서 악과 한이 뚝뚝 묻어나는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시절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정말 진정되기 힘드네요. 차라리 성인이되고 나서 만난 인간이라면 안그럴거 같기도 한데요.
다 지옥형벌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게는 다 죽일놈들이고 구원 안 받았으면 좋겠는 놈들입니다. 천국에서 기쁨을 누리면서 그들이 지옥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깔깔 웃으면서 저는 구원받은 자들과 주님과 즐겁게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고 싶습니다.
하뜻청님 본인이 당한 아픈 상처는 주님만이 아시고 주님이 위로 회복해주실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만.... 두 가지만 간단히 언급하고 싶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는 하자, 불합리, 불공평성이 일절 없습니다. 우리는 몰라도 그분만은 모든 이의 회개에 진정성이 있는지 꿰뚫어 아십니다. 임종 직전의 구원에 관한 제 이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단순히 심판이 두려워서 하는 회개는 구원과는 무관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온전히 믿으셔야 합니다.
둘째로 예를 극단적인 케이스로 드셨습니다. "연쇄살인마 유영철이나 혹은 푸틴, 시진핑이나 북한의 김씨일가" 같은 사악한 죄인들은 주님을 끝까지 완악하게 대적했던 십자가 상의 또 다른 죄인처럼 마지막까지 회개하지 않을 테니까 굳이 억울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히틀러는 자살했습니다. 그들도 인간인지라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도 있겠지만 진정한 인격적 회개는 제가 장담하건데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 신묘하고 정미하지 않습니까? 이런 의문과 분노를 품는 경우를 대비해서 십자가 상에 심판으로 떨어지는 철저히 완악한 죄인을 진정으로 회개하는 죄인과 함께 두셨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은 구원 줄 자를 구원 주고 심판할 자를 심판하십니다. 신자는 자신의 구원에 대해 무한 감사하고 죽을 때까지도 자신의 영적 가난함을 직시하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긍휼만 구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도 연약한 본성을 지닌지라 다른 이의 죄악에 대해서 때로 감정적 이성적으로는 분노 저주할 수 있지만 예수님의 심정으로 원수까지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