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장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ㅡ> 18절에 ' 그(라헬)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라헬에게 요셉과 베냐민이 있지 않았나요?
개역개정
예레미야 31장
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표준새번역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라마에서 슬픈 소리가 들린다.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자식들이 없어졌으니,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
목사님의 답변은
'라헬에게 요셉과 베냐민 두 자식이 있었지만 오래 동안 자식이 없어서 애통해 하던 그 심정이나 상황에 비유하여서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되어 있는 슬픔과 절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ㅡ> 라헬이 자식이 없으므로 애통해 한 것과
있던 자식이 없어진 것 때문에 애통해 한 것은
다르게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라헬의 두 아들 요셉과 베냐민은 알다시피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애굽으로 피신하여서 요셉은 나중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선조)를 기근에서 구원해내는 소명(하나님이 그가 어렸을 때 꿈으로 계시해준)을 실현했습니다. 라헬이 그 두 아들을 잃어서 애통해 한 적은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라헬로, 포로생활하는 슬픔을 그녀가 지식이 생기지 않았을 때의 고통에 비유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렘 31:15절 한 절만 떼서 보시지 말고 반드시 16절과 함께, 나아가 마태의 기사와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또 성령의 영감으로 헤롯 대왕으로 인해 두 살 미만의 아이들이 살해 당하는 엄마의 슬픔을 예언한 것입니다. 바로 이 예언의 의미로 없어졌다고 표현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라헬이 결국 두 아들을 얻었듯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게됩니다.(렘31:16). 마찬가지로 비록 예수 탄생으로 아이들이 죽고 예수님도 애굽으로 피신했지만 신명기 예언대로 예수님이 모세 같은 선지자로 메시아가 될 것이라는 의미로 마태는 이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었듯이, (라헬의 아들 요셉이 애굽에서 열두 형제를 구원했듯이), 하나님이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을 귀환시켜주었듯이, 애굽에서 돌아온 예수님도 이스라엘을 그 타락한 죄에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개역 한글
예레미야 31장
1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개역 개정
예레미야 31장
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표준 새번역
예레미야 31장
15.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라마에서 슬픈 소리가 들린다.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자식들이 없어졌으니,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
공동 번역
예레미야 31장
15. 나 야훼가 말한다. 라마에서 통곡소리가 들린다.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구나. 그 눈앞에 아이들이 없어 위로하는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 가지 않는구나.
개역 한글
마태복음 2장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개역 개정
마태복음 2장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표준 새번역
마태복음 2장
18.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애곡하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자식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공동 번역
마태복음 2장
18. "라마에서 들려 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 잃고 우는 라헬, 위로마저 마다는 구나!"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ㅡ> 예레미야서는
개정 한글 ㅡ 자식이 없어
개정 개역(세번역, 공동번역) ㅡ 자식이 없어져서
마태복음에는
개역 한글(개역 개정) ㅡ 자식이 없으므로
표준 새번역(공동 번역)ㅡ자식을 잃고
라헬에 대한 해석이
요셉과 베냐민의 어머니로서 라헬인지(자식이 없으므로 슬퍼함)
아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의미(자식(백성)을 잃었으므로 슬퍼함)에
따라 현재형(없으므로)인지 아님 과거형(잃었으므로)으로 해석이 달라질 수 있지 않은지요?
그동안 늘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궁금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반드시 16절과 연결해서 해석해야 하고 그럼 상징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또 개인 라헬의 아이가 없어지거나 없는 것이 아니므로 마찬가지로 당연히 상징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어의 뜻은 단순히 없다는 것이지 "있다가 없어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의 많은 엄마들의 아이들이 바벨론 포로 때에 죽었고, 또 바벨론 포로 상태가 이스라엘로선 아이가 없어진 것 같은-즉 하나님의 자녀였다가 버림 받은 상태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둘 중 어느 쪽으로 번역해도 원래의 의미를 살리는 것입니다. (영어 번역도 두 가지 표현이 다 나옴)
계속 강조하지만 성경해석에서 문맥상 의미를 무시하고 한 절만 떼어 보거나 그것도 문자적 표현에 붙잡혀선 안 됩니다. 성경의 선지서는 물론 곳곳에 등장하는 예언들은 상징 묵시적 표현이 아주 많다는 점을 미리 감안하셔야 합니다. 앞에서 라마에서 슬퍼하고 통곡하는 것(라헬과 짝을 이루는 문학적 표현법)도 실제로 라마에 모여서 통곡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라마가 베냐민 지경인데다 라헬의 묘지가 있었으니 라헬과 짝을 이루기 좋아서 인용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라마도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이는 예레미야 31:15을 인용한 것입니다. 라헬에게 요셉과 베냐민 두 자식이 있었지만 오래 동안 자식이 없어서 애통해 하던 그 심정이나 상황에 비유하여서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되어 있는 슬픔과 절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고대는 물론 이스라엘에선 아들이 없는 것은 하나님에게 버림 받았다고 여겼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라헬이 오래 동안 자식이 없어서 애통해 한 것 같은 슬픔으로 지샜지만, 그녀가 뒤늦게나마 두 아들을 얻었듯이 이스라엘도 이제 곧 포로 귀환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해준 것입니다.(렘3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