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1절은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사28:11,12)를 축약하여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선지자들의 예언(죄에서 회개를 촉구하는)을 외면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보내어서 그들의 방언(여기선 외국어이나 이스라엘로선 은사로 받는 방언처럼 못 알아 듣는 것이라는 뜻)으로 경고할지라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북)이스라엘은 다른 방언(언어)를 사용하는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21절은 22절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예로 든 것인데 "온 교회가 방언으로만 말하면 무식한 자들(불신자들)이 와서 못 알아듣고 미쳤다고 욕하면"(23절) 믿음이 생기지 않고 이전 이스라엘처럼(21절에 인용한 대로) 심판의 자리에 머무르게 됩니다. 반면에 예언(하나님의 진리에 따른 선지자적 선포)을 들으면 회개하고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24-25절).
제 앞선 답변은 22절 안에서 방언과 예언의 특성을 설명드린 것입니다. 대신에 20-25절 전체로 따지면 이미 설명드린 대로 방언은 불신자에게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는 표적이 되지만 방언만 해선 이전 앗수르에 멸망당한 것 처럼 불신자를 심판에서 건지지 못하며, 예언을 하면 회개로 인도해서 구원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더러 방언보다는 예언을 하도록 권면한 것입니다. 결국 21절도 방언에 비해 예언의 우월성을 암시한 것이며 그래서 바로 앞 20절에서도 지혜에 아이가 되지 말고(교회에서 초자연적 은사를 받았기에 영적으로 우월하다고 자랑하려고 방언만 하는 것을 상징), 지혜에 장성한(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정확히 깨달아 교회에서 예언으로 선지자적으로 선포하는) 사람이 되라고 먼저 전제한 것입니다.
방언은 통변하는 자가 없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일종의 초자연적인 이적입니다. 그러니까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성령이 신자의 영에 역사하여 당신의 뜻대로 들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역할(표적의 의미)을 합니다.
반면에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장래 일을 구체적으로 시간 장소 사람 등을 적시하며 미리 알아맞히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판단에 반드시 그래야 할 비상한 경우에는 그렇게도 하시지만 아주 드문 경우임) 그보다는 구약 선지자들의 예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다시 확인시키며 그 뜻을 벗어난 죄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촉구이며 그러지 않으면 장차 형벌과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선지자적인 선포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적 진리를 재천명하면서 권면 충고 도전 경고하는 것이 예언이므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아는 신자들을 위한 은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