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목사님
그 동안 한국이 참 더운데 미국에서 건강하게 지내시죠?
오랜만에 질문 드립니다~~
밥먹으면서 지나가는 설교듣다가 사도행전에서 마가 동행여부로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는 부분인데요.
나중에는 결국 모두 화해했다지만
(디모데서에서 마가가 유익하다고 바울이 적은거 보면)
성경에서 '심히 다퉜다'라고 적힌 것 자체가 엄청 순화해서 적은거라고 하네요. 마가의 동행여부로 바울과 바나바가 말 그대로 피튀기면서 논쟁하다가 갈라선거라고 하는데요.
바울과 바나바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교하려고 하는데 방향이 다른 것이고, 둘 다 성령충만한 대사도 인데
그렇다면 두 사람에게 성령님이 당연히 내재해서 항상 거룩하게 이끄실텐데 이 정도로 다툴 때 중재하지 않으신건가요?
주기도문에서도 '성도가 서로 교통하게 하고'라는 글귀도 있듯이
믿는자들끼리의 화평함도 하나님께서 좋게 보시는데
둘 다 성령충만한 대사도 들인데도
이런 다툼을 할 때 성령님이 침묵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모두 화해했고 바나바는 소아시아에, 바울은 유럽에 선교를 하게 해서 주님의 광대하신 뜻을 이루셨지만 그 당시에 성도 사이의 갈등에서도 중재해주시면서 둘의 선교방향을 각자 인도하실 능력도 있으신 분이 주님인데 조금 이해가 안되네요.
굳이 두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다투는 방향으로만, 이런 방식으로 뜻을 이루셔야만 하셨어야했는가 라는 점에서요.
성경을 해석할 때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여러 원칙들이 있늗데, 이 주제와 연관해선 반드시 두 가지를 먼저 고려하셔야 합니다. 1) 사도들이 아무리 믿음이 좋고 성령이 충만히 내주했고 소명에 충성했어도 죄성을 지닌 연약한 인간으로 그 성정은 우리와 똑같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종들도 일상적으로는 우리처럼 평범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고 나아가 수시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2) 성령은 인격적인 분으로 아주 비상한 경우가 아니면 신자(사도 포함)가 마음을 열고 기꺼이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역사합니다. 사도들이 자기들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는 성령이 강제로 역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상기 사건에선 두 사도가 각기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마가(별명 요한)가 밤빌리아에서 선교 여행에 동참하지 않고서, 성경이 침묵하므로 아마도 개인적인 이유로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린 일이 끝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행15:38)고 주장한 것입니다. 반면에 바나바는 마가가 자신의 조카이므로(골4:10 참조, 바울도 나중에 용서하고 동역자로 품어주었음) 그 잘못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어서 다시 기회를 주자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두 사람 다 아주 정당한, 그것도 둘 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최소한 위반되지 않는, 이유로 다툰 것입니다.
두 사도가 서로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고 감정이 격해져서 싸웠기에, 바꿔 말해 잠시 그들이 우리 생각과 감정을 삭이고 따로 얼마 동안 기도해보자고 하지 않았기에, 인격적인 하나님이신 성령은 침묵하셨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 때는 그렇게 기도했어도 여전히 침묵하셨을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더 많은 지역에 복음이 왕성하게 퍼져 나가게 하려는 성령의 더 완벽한 뜻이 있었으며, 나중에 두 사람이 화해하여 더 열심히 동역하도록 인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