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군가의 특징

조회 수 2619 추천 수 266 2005.04.19 18:50:08

“유다야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셨느니라”(대하20:17)

겁에 질린 이스라엘 군대

터어키 이스탄불의 박물관에 가면 오스만터키 군대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킬 때 불렀던 군가가 스피커에서 계속해서 울려 나온다고 한다. 모든 나라의 군대마다 특유의 군가와 개선행진곡이 있고 그 가사는 어떤 강력한 대적이 쳐들어 올지라도  얼마든지 무찌를 수 있거나 있었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는 식이다. 장부로서의 기개와 담력을 고취시키고 애국심과 인간애에 호소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군대가 부르는 군가는 세상 모든 나라의 그것과는 두 가지 점에서 전혀 달랐다. 우선 가사 내용이 적군에게 겁을 먹지 말고 힘을 내라는 것이 아니었다. 여호사밧왕 때에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했다. 당연히 왕이 군대를 소집하여 결전의 의지를 높이기 위해 군가를 부르며 무기와 정신 상태를 점검해야 했다. 그러나 여호사밧과 백성들은 적군의 위세와 규모에 위축되었고 도저히 자기들 군대로는 감당할 길이 없어서 오히려 겁에 질렸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금식하며 여호와께  기도 드리는 것뿐이었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 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 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용기와 담력으로 적군을 무찌르려고 하지 않고 자신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또 어떻게 할 줄도 모른다고 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 울부짖는 기도가 이스라엘 군대의 유일한 군가였고 실제로 다른 어떤 군가도 필요 없었다. 그 군가의 가사도 무기나 군대의 힘을 믿고 인간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도한 후, 즉 군가를 부른 후 완전히 달라졌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야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셨느니라.”(대하 20:15,17) 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던 두려움과 공포는 하나님께 맡겨졌고 대신에 저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은혜와 특권을 받았다.  

그 다음 날 그들은 여호와가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전쟁터로 향했다. 어떤 모습이었는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며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대하20:20,21) 수색병, 특공대, 최정예부대를 선두에 세운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찬양대가 대신 차지했다. 말하자면 군악대가 최일선 전방에 나서서  싸우러 나간 꼴이다. 어떤 무기도 몸에 지니지 않고 후방의 지원 사격 하나 없이 말이다.  

바로 여기에 이스라엘 군대의 군가가 일반 군가와 두 번째로 다른, 어쩌면 확실하게 더 구분되는 모습이 있다. 세상 군대는 전쟁 치러 나갈 때에 군가를 불러 힘을 북돋운다. 그리고 승리하고 난 후라야만 개선행진곡을 부르며 신나게 돌아 온다. 그러나 지금 유다 군대는 전쟁을 치러 나가면서부터 개선행진곡을 먼저 불렀다.  

그들은 단순하게 용기를 부추기 위해 찬양대를 앞세운 것이 아니었다. 또 하나님이 그들이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기특해서 승리를 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승리의 약속을 받았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에게 베푸실 구원을 온전히 확신했다. 그래서 ‘여호와께 감사하세’라고 찬양했지 ‘여호와여 저희들을 구해 주세요’라고 빌지 않았다. 이스라엘 군대의 군가는 여호와께 드리는 기도였고 그 개선행진곡은 전쟁 치러 나가면서 부르는 찬송이었다.  

신자가 부르는 군가

오늘날 주님의 십자가 군병이어야 할 신자들의 군가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 여전히 신자를 감싸고 언제든지 무너뜨리려는 세상과 죄악과 사단의 세력이 그 힘에 중과부적일 때가 많다. 두렵고 겁에 질리어 도저히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고 대처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마저 전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신자는 세상 사람과는 다른 군가를 부를 수 있다. 세상의  군가는 승리를 보장 못한다. 정말 보잘 것 없는 세상적 실력이나 연약한 인간의 의지력에만 기대기 때문에 승리에 대한 어떤 보장도 할 수 없다. 그저  최선을 다 해보고 실패하면 운수로 치부하고 만다. 그런 군가는 사람을 억지로 전쟁으로 내몰아내는 역할밖에 못하는 일종의 최면술에 불과하다.

신자의 군가인 기도는 스스로 힘을 북돋우고 자기 최면을 걸어 자기가 자신을 속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전적으로 주님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아뢰는 것이다. 힘들면 힘든 대로, 무서우면 무서운 대로,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으면 없다고 부르짖어야 한다. 그럼 하나님은 신자에게 당장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보다는 당신에 대한 믿음을 강건하게 해주신다.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지 않았고 여전히 대적은 건재하고 있는데 심지어 아직 전쟁을 치기도 전부터 하나님이 이미 승리의 확신을 심어 주셨기에 찬양을  부를 수 있게 된다.  

며칠 전 영적으로 아주 상태가 안 좋은 한 청년을 만나 상담을 나눈 적이 있다. 상담 중에도 눈에 초점이 없고 그저 안절부절  하므로 그 영혼이 나쁜 세력에 완전히 눌려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는 샤워 중에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온갖 쌍 욕이 튀어 나와 놀라고 무섭지만 도저히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에 기도해 주며 상담을 마쳤더니,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하나님이나 예수님 이야기만 나오면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팠다”고 실토했다.    

흑암의 세력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이름만 들어도 물러간다. 도저히 어쩔 줄 몰라 혼란에 빠진다. 이스라엘 군대가 찬양을 앞세웠더니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승리한 것인가? 승리는 이미 싸우기 전부터 확보되어 있었던 것으로 너무나 당연했다. 그 보다는 유다 군대가 칼과 창을 전혀 휘두르지 않고도 승리했다. 전사자는커녕 부상자 하나 없었고 실제 전쟁은 치르지도 않았다. 그들이 전쟁을 치러 나갈 때는 전혀 몰랐지만 하나님이 이미 그 전에 대적 속에 복병을 두어서 적군을 무찌르게 했다. 그 복병이 천사나, 눈에 안 보이는 불병거나, 뇌성벽락이나, 홍수 같은 초자연적 간섭이 아니었다. 대적이 서로 의심하고 혼란에 빠져 자기들끼리 찔러 죽이게 했다.

참으로 흥미 있는 것은 사단이 가진 가장 큰 무기가 이간질과 거짓인데도 하나님은 그 무기를 흑암의 세력 자기들끼리 사용하게 한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신자가 누리는 능력은 심지어 사단으로 하여금 자중지란에 빠지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예수님의 이름만 들어도 악령에 눌린 그 청년 속에 있던 악한 세력에게 혼란이 생겨 머리가 아파진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찬양하는 것,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권세가 바로 이것이다.

찬양을 통한 능력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찬양의 곡조, 성가대의 실력, 악기의 많고 적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 세상 군대와 하나님 군대의 군가 내용이 어떻게 다른지만 정확히 알고 부르면 된다. 우리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우리의 입술에는 반드시 개선행진곡의 가락이 절로 나와야 한다. 정말 겁에 두려워 그렇게 되기 힘든다면 그렇게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승리의 확신이 생길 때까지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을 묵상하며 부르짖고 또 부르짖어야 한다.  

신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데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세상과 사람을  왜 겁을 내는가? 다윗이 도저히 자기 힘으로는 아예 게임이 안 되는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면서 무엇이라고 했는가?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17:26) 그 어린 소년도 미리부터 군가 대신 개선행진곡을 부르며 싸움터로 나아갔지 않는가?

신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평생을 두고 어떤 대적을 만나더라도 개선행진곡을 먼저 부를 수 있게 된 자다. 그런데도 혹시 하나님을 몰랐을 때처럼 겁에 질린 채 아직도 괜히 스스로 배짱을 키우려 큰 목소리로 할례 없는 군대의 군가를 부르고 있는가? 현재 닥치고 있는 일들이 두려운가? 환난 중에 아무런 현실적 대책이 서지 않는가? 하나님 앞에 나가 온전히 그분만 바라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의 군가를 부르고 또 불러라. 자기도 모르게 개선행진곡이 입술에서 흘러 나올 때까지…

4/19/2005        


김순희

2010.08.24 09: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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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배짱을 키우고 큰목소리로 군대의 군가를 부르며 자기 최면을 거는 모습이
대부분의 신앙의 모습이 아닌지요.
그렇게 배워왔었지요. 자신의 신앙 키우는데 전력을 다 하여서 철야기도하고 새벽기도하고
말씀보고 기도하고.. 그리고 그 행위가 바로 응답의 요인이라 여겨졌던 때...

온전히 바라봄. 그 분만 바라봄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개선행진곡이 솔솔 흘러 나오는 신앙이
되길....

사라의 웃음

2012.06.06 22: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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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받은 휴가로 '이스탄블의 황제들'이란 전시장엘 다녀왔습니다.
동로마를 물리친 오스만제국의 부귀, 영화를 보니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습니다. 다이아몬드로 몸을 꾸미고 심지어 커피잔에도 금은보화로 입혀놓은 부의
절정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라신을 엄청 열심히 섬겼더군요. 터어키 박물관에선 그때의 군가를 틀어놓고 있군요.

십자가군병의 군가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이며 신자의 개선행진곡은 전쟁을
치르기전의 개선행진곡이되는 그 이유를 정말 아몐! 하며 배웁니다.
또 신자가 그렇게 되기까지 지속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날마다순종

2020.08.12 15:46:10
*.14.99.253

소년 다윗의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이 외침이 만인지적의 여포나 장비의 사자후보다 훨~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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