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의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28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27절에는 솔로몬 조차 자신의 모든 영화로도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28절에는 하나님께서 그 들풀조차 솔로몬보다 잘 입히시는데 너희는 얼마나 잘 입히시겠냐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솔로몬 조차 들풀만큼 차려입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은 말 할 것이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들풀보다 소중한 너희를 들풀보다 잘 입히시는 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그 누구도, 심지어 솔로몬의 모든 영화로도 들풀보다 잘 입은 전례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들플보다 사람을 잘 입히시는 것이 당연하다...?
전례가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있다가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보다 사람을 더 잘 입히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시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어째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들플보다 잘 입히실 것이라 믿으라고 하시나요?
그리고 세상을 보면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새를 먹이시고 들풀도 입히시는데 왜 세상에는 입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까? 이 약속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인가요? 자녀들에게만 주어지는 약속이 맞다해도, 들풀보다 잘 입히시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들풀(백합꽃)과 솔로몬의 영화를 '외적인 풍요나 축복'을 근거로 비교 대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입히시는" 들풀과 "자기의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을 비교한 것입니다. 들풀은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섭리대로만 꽃을 피우다가 때가 되면 시들고 죽습니다. 들풀이 자기 힘과 의지로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솔로몬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자기 능력으로 자기를 치장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풀이 솔로몬 영화보다 낫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불신자가 스스로 노력해서 자기를 아무리 풍요롭고 화려하게 치장해도, 비록 이름 없고 현실적으로 궁핍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만 따르고 사는 신자의 삶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약속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해당됩니다.
그리고 들풀은 그냥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섭리대로만 따릅니다. 스스로 그분의 뜻을 구분해서 그분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인간 신자는 하나님께 받은 재능과 은사로 그분의 일을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실현하여 귀한 열매를 많이 멪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들풀과도 비교가 안 되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