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등학생 시절,김선일 씨가 납치당해서 피살당했습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알고보니 이 분은 무역회사의 미군보조 계약직 직원이었고, 독실한 크리스천이더라고요
가나무역 이라는 미국 미군보조 회사의 자기소개서에 비뚤었던 자신이 학창시절 복음을 전달받은 사실이 적혀있었고 수련회 영상에서 직접 선교사로 헌신하고 싶고 구체적으로 기도했더니 아랍쪽으로 마음을 주시더라 라는 간증도 있었습니다 (94년 수련회 당시 본인 간증이 해당 교회 동영성에 남아있네요)
2000년 후반부터 선교 전략 중 일환으로 해당 지역의 전문직업인으로 녹아들여서 하는 선교전략이 유행한 터라 그런 부분에서 택한 임시직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해 같이 참살되었던 미국인과 일본인은 개인의 선택이었고 자기나라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담담히 발표했는데 김선일 씨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절규를 수십번 외치면서 한국 군대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아랍지역 같은 생명이 보장되지 않는 것을 알고서도 자기가 선택해서 그 지역에 목숨을 바쳐 선교하겠다고 해놓고서는 죽음이 다가오자 비기독교안 만도 못하게 목숨을 구걸했다는 것으로 그 분을 폄하하고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 상황에서도 그럴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심지어 선교사를 꿈꾸고 아랍 지역이 위험한 곳에 가겠다고 간증까지 하고 각오했던 사람도 죽음을 앞둔 순간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절규하는데 나라고 안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목사님의 칼럼에서 전도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한다고 하는 글이 있었는데 목숨을 걸겠다고 다짐한 사람조차 저렇게 죽음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게 되는데....
구원받아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면 스데반처럼 목숨을 초개처럼 던질 수 있어야만 하며, 구원을 받은 자라도 죽음의 순간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일까요?
그 분은 심지어 입사 자기소개서에 당당히 선교와 복음을 밝혔고 수련회 간증까지 하신 분인데도 그렇게 되었는데 저도 그 상황에서는 목숨을 구걸할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이 하나님께 구원받은 자의 모습인가 비기독교인만도 못한 건가 하는 생각에 스스로 침울해집니다.
비기독교인과 대화하면서 초기 교회 순교자들은 로마제국 하에서 사자굴에 던져졌어도 즐겁게 구원의 믿음으로 노래를 불렀다면서 복음이 주는 기쁨,복름이 주는 죽음에 대한 공포극복을 얘기했었던 저인데...
사실 제가 그럴 일을 겪을 가능성이 0에 수렴하고 제3자의 일이라서 위대하다 아름답다 말하지만 그것은 내가 그 상황에 던져지지 않았으니
죽음의 상황에 대해 너무 쉽게 떠벌린 것이 아닌가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자기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며 성령충만하지 못한 것일까요?
또 믿는 자라고 말하면서 죽음의 공포 앞에 굴복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라지 같은 자들인 것일까요?
목사님께서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지만, 위 사례같은 경우는 예수님을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라는 식의 '믿음을 대가로 건 희생'이 아니라 그저 한국 군대 철수라는 정치적인 이유로 가해진 처형이었으니 순교의 차원에서 해석할것이 아니라 그저 악행에 의한 무고한 희생이라고 보아야하지 않을까요? 죽음 앞에서, 그것도 잔인한 처형 앞에서 인간은 신자건 불신자건 두렵고 약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다만 주님을 증언할수 있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죽음이라면 성령님께서 초자연적인 평강을 주실것이라고 성경에서 약속되었습니다. 그마저도 사람이 감당할 시험만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서 충분히 믿음이 연단된 신자에게만 특별한 계획하에 순교를 주시는 줄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