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도 인신제사나 동성애가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도 거기서 거기인건 마찬가지인 땅이였잖아요?
근데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보고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13:10)
이라 생각한 것은 가나안이 소돔과 고모라에 비해 척박한 땅이였나요?
소돔과 고모라를 보고 롯이 여호와의 동산같은 곳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의인이 열 명만 있었더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 하셨는데
가나안에는 아브라함이 있어서 멸하지 않으신 건지 그렇다기엔
아브라함은 가나안을 선택했다기보단 걍 니가 가면 난 여기 간다 식으로 제비뽑기한거잖아요?
어릴때는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나 요셉에 저를 대입해서 읽었던 적이 많았다면
나이가 들고서부턴 롯이나 사울, 광야1세대 백성이 저의 모습으로 매칭될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선택권을 맡겼지만, 대부분의 신자는 홀로 양자택일을 직접 해야할 때가 더 많잖아요
신자는 하나님이 주신 지정의로 선택을 해야하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신자 본인에게 있지만요
어느 곳이나 다 악한 땅인데 특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곳으로 분별하며 가야할 때
어떤 기준으로 분별해야 할 지 궁금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여호와의 동산 같이 봤다는 롯의 생각이 가끔 저의 생각이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첫째 질문 - 롯이 소돔과 고모라를 보고 여호와의 동산 같다고 말한 이유에 대한 답변
우선 가나안과 소돔과 고모라를 비교하는 것은 조금 불합리합니다. 가나안은 나중에 다윗 왕국이 세워진 이스라엘 전지역을 말하고 그 안에 예루살렘이나 베델 같은 성읍들이 포함됩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가나안 지역에 속한 사해 연변의 도시들입니다. 창13:10에서 롯이 바라본 지역은 사해 북단의 요단 계곡이었고 소알과 소돔과 고모라는 사해 남단에 위치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네 강이 발원했고(창2:10-14) 애굽은 나일강이 있어서 곡물 재배에 적합했습니다. 따라서 강이 있는 곳에 농업이 번창하고 양식이 풍부하므로 사람이 몰려서 도시가 생성되고 문명이 발달합니다. 처음 바라본 요단 지역에 물이 넉넉하므로 여호와 동산과 애굽 같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반면에 가나안 전지역은 대체로 물이 귀해 척박했기에 농사보다 목축에 적합합니다. 창 3:12는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이르렀더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나안 땅은 도시와 대조되니까 메마른 광야를 뜻합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들판에서 계속 목축을 했습니다. 반면에 롯은 떠나온 갈대아와 잠시 기근을 피해서 머무른 애굽의 화려한 도시 생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작은 도시들에 머무르다, 결국 그 지역에서 가장 번창했던 소돔까지 이주한 것입니다. 그래서 롯이 물이 많은 애굽 같았다고 여긴 것은(10절) 땅을 선택할 때부터 그런 도시를 그리워했다는 뜻을 성경이 암시한 것입니다.
둘째 질문 - 의인 아브라함이 있어서 가나안을 멸하지 않았는지에 관한 답변
원론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가나안이나, 소돔과 고모라나 죄가 많아 어디든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목적이 열방 앞에 여호와를 증거하는 복의 근원으로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가나안에서의 일생을 통해 당신을 증명했습니다. 가나안 족속도 하나님이 구원해줄 불쌍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소돔의 경우는 그 주민들이 롯과 하나님의 천사들에게 행한 짓거리에서 보다시피 똑같이 타락한 지역이라도 하나님이 더 이상 인내해줄 수 없을 만큼 분노의 한계에 찬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의 죄상대로 심판하자면 지금이라도 전 지구를 다 멸망시켜야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완벽하신 장기간의 구원 계획을 실현하려고 당신께서 신자를 통해서 인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신자가 더 많은 자들을 복음으로 초대할 수 있는 방향과 모습으로 말입니다.
셋째 질문 - 신자는 어떤 땅을 택해 살아야 할지에 관한 답변
둘째 답변에서 말씀드렸듯이 온 땅은 다 죄로 타락했습니다. 바꿔 말해 신자는 어디에 가서 살아도 되며, 아브라함을 가나안 족속들 앞에 복의 근원으로 세웠듯이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이 더 시급한 죄가 더 많은 곳을 택해서 그 소명에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 전에 하나님은 신자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할지는 신자의 결정에 맡기고,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의 자녀(자기 하는 일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로 살아가길 원하고 또 그렇게 신자의 인생을 주관 인도해주십니다. 신자가 이런 소명의식으로 산다면 자기 지정의로 자기에게 가장 합당한 장소, 직업, 여건 등을 택하여서 최선을 다해 복음 증거에 헌신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