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안녕하세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지요
신앙에 침전이 있는 것인지, 예전부터 무의식상에서 꿈틀대던 생각이 지금 나타난건지 모르겠지만
살면서 부귀영화 다 누리고 적당히 세상 기준으로 착하게 살다가
죽기 얼마 전에 구원받고 천국가면 소위 '꿀빠는 삶'을 사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계속 올라옵니다.
저는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20살에 대학가서였는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지금까지 신앙의 부침이 있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하면서도 이미 영접을 해서인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 자체를 삶에서 스스로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똑같이 죄를 지어도 '정말로'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며 거리낌없이 사는 자들과 근본에서부터 이미 달려졌기에 그 이전으로 가치관과 사고관이 돌아간다는 거 자체가 불가능해졌습니다.
과거 체험했던 구원의 감격, 그리고 제가 쌓았던 성경적 지식-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이 오히려 저에게 구속이 되는 느낌까지 듭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 맘대로 살면 안되는 걸 이미 알아버렸으니까요. 지식으로만 아는게 아니라 가슴으로도 알아버렸습니다.
삶이 퍽퍽하고 안풀리고 할 때는 이런 거 자체가 억울하다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똑같이 자기 마음대로 방탕하게 살아도 저 사람들은 마음에 거리낌없이 행복한데
저는 몸은 편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하고 마음 한 켠으로는 불편한 느낌입니다.
방탕하게 살면 마음이라도 편해야하지 예수님을 영접하고나서는 방탕하게 살아도
저런 사람들보다 손해같습니다. 저만 그런걸까요....
그래서 저런 사람들이 다 거리낌없이 지내다가 죽기 얼마 전에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구원을 얻고 영면에 드는 것이 부러워지는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 삻이 형편없어서 그런 마음이 드는걸까요. 하염없이 세상이 밉고 억울합니다.
가장 순수하던 청년 시절 20세 그 당시에 예수님을 모르고 고등학생 시절처럼 돈 많이 버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삶을 추구했더라면 지금보다는 윤택하게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10년도 더 전에 그랬다면 지금 저는 스스로만을 믿고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사람이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자꾸 들고요. 그러면 지금 제 명의로 차라도 한 대 있을텐데... 통장에 돈이라도 넉넉할텐데...
나중에 필요할 때 영접하더라도 돈이 남으니까요
돈 뿐만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과거 생활을 청산하고 회심했다는 분들 중에 화려한 여성편력을 가진 분들도 많습니다. 그 분들은 지금은 그런 생활을 버렸고 예수님께 귀의했다고 고백하면서 그 시절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는 합니다. 그 시절에는 청년의 때에 많은 여자와 놀고 잠자리를 갖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없이 쾌락을 누렸다는데
이미 저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실행에 옮길 일도 없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죄'라고 인식하면서 그럴 거 같은데 그것도 억울합니다. 저 사람들은 놀거 다 놀고 지금 안그런다지만 거리낌없이 다 해봤는데 저는 이미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기 때문에 그럴 일도 없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죄책감을 느끼면서 하게 될 거 같으니까요.
물론 저 분들도 나름의 고통이 있겠지요. 이미 그 '맛'을 알아버렸기에 예수님께 귀의하고 나서도 '느껴봤던 그 죄의 쾌락'과 싸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아예 그 맛을 모르는게 낫다고는 하는데
배부른 투정 같아보입니다.
예수님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것이 후회되기는 처음입니다. 무슨 우울증 같은것도 아닌데 훅 들어오네요. 이런 생각은 잘 안들었었는데....
찾아보니 이미 이전에 관련 질문에 대한 글을 작성해 주셨습니다.
https://whyjesusonly.com/easy_to_know_predestination/40150
그런데 읽다보니 십자가 강도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하시고 제목에서 정말 궁금한 부분에 대한 답변이 구체적이지는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ㅠ
"...언뜻 세상 쾌락 다 즐기다가 마지막 순간에 구원 받는 것만큼 꿩 먹고 알 먹는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만이 구체적으로 콕집어 저런 질문을 한 사람들의 마음 속 가운데의 억울함을 드러내셨는데
이에 대해서 명확하게 가타부타하게 답변이 있는게 아니고 강도 이야기로 넘어가서
명확하지가 않는 느낌입니다.
또 특혜 라는 부분이 '전도를 하지 않아서 좋다' 라는 부분에 초점이 된 느낌입니다.
보통 저런 의문을 지니는 사람들은 그런 부분이 아니라 세상 향락 누리는 것의 이점을 위주로 생각하지않을까요.
혹시 좀 더 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뜻살님 우선 인용하신 제 글은 예정을 주제로 쓴 것이라 지금 질문하신 내용과는 그 초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구원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를 그분이 택하여서 그분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내 맘대로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구원 받으면 되지라는 마음을 가진 자를 기뻐하실 리는 절대로 없지 않습니까? (물론 스쳐지나가는 생각이었다가 그 후에 그 생각을 완전히 바꿔먹었다면 사정은 달라지겠지만...)
그런 마음에서 죽기 직전에 행하는 한 번의 회개는 일종의 행위구원에 해당되며(회개도 정신 활동임),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의 구원에 담긴 정말로 엄중한 의미와 넘치는 은총을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마치 알라딘이 외우는 주문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후에 이 땅에서 그분과 교제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고귀한지에 대해선 아예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나 지옥 심판이 두려워서 어느 정도 진정성 있는 회개를 할 것이며 예수님도 정말로 믿고 싶다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도 하나님은 누가 구원 받아야 할지 누구를 기뻐하는지 그분은 이미 다 아시고 구원과 심판으로 다 택해 놓았습니다. 누가복음 23:39-43을 다시 잘 읽어보십시오. 왜 두 강도가 구원과 심판으로 나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마지막 순간에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 하나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의 회개도 그 진심을 꿰뚫어 아시며 평소의 인생관, 세계관, 종교관, 가치관 등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예정론의 다른 글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일에 동역할 소명자로 세우기 위해서 예정으로 구원 주신다고 밝혔습니다. 또 택함 받은 자의 인생도 복음을 전하느라 형통 풍요와는 거리가 멀고 좁은 문을 통과하며 머리 둘 곳도 없는 고난이 기다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만약에 미리 신자의 삶이 현실적으로는 고달플 수 밖에 없다고 알게 해준다면(예컨대 바울의 경우처럼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다가 결국은 순교당한다는 사실을 - 고후11:23-30 참조 요)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므로 예정으로 구원주실 수밖에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십자가 상의 강도는 마지막 순간에 구원 받아 하나님의 일에 동역한 것이 없어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믿음으로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여실히 보여 주었고, 평소의 인격 품행 사고 철학이 달라야 하며, 무엇보다 인간은 예수로 인해 구원과 심판 둘로만 나뉜다는 진리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생생한 예입니다. (참고로 예정론에 관한 글들은 당시에 워낙 질문이 많아서 조금 서둘러 쓴 글이라 빠트린 내용이 조금 있어서 앞으로 여유가 생기는 대로 보완할 예정입니다. )
하나님을 제하고서는 물질적 풍요와 안락을 누려도 불구덩이 위에서 줄 위를 걷는 것 처럼 무서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삶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그게 세상에 모든 부귀영화 다 누리는 삶이더라도 마귀와 호형호제하는 삶이 아닐까요....
그런 것들을 나의 우상, 선망하는 것으로 삼는다면 결국 그것들로 하여금 끝에는 배신당하며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런 삶을 살다가 죽기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천국 가는 삶도 당연히 있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했던 삶을 부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을거에요.
구속되는 느낌이 든다고 하셨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은 결국 어딘가 구속될 수 밖에 없는 존재같습니다. 그게 말씀이냐, 마귀에게냐에 문제지 무조건 둘 중 하나는 구속되는 삶 같습니다.
제3의 어떤 것에 구속되거나 하나님과 마귀 어느 곳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삶은 없다고 봅니다.
모든 구속에서 풀리는 게(말씀포함) 그게 자유로운거다 그게 편한거야, 형통하고 안락한거야 라고 마귀가 속일 수는 있겠죠.
다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우리도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그 진리와 지혜가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케 할 것이고, 구원받은 신자는 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신자라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흔들리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할 수 있겠죠.
저도 순간순간 욱하고 올라오는 그런 억울한 마음이 들때도 있습니다.
특히 물질적으로 삶이 곤고해질 때 더욱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럴 때 그저 그 마음에 저를 놓아버리는 게 아니라 저의 마음이 아닌 성경 말씀을 붙들고
성령님만이 저를 주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편입니다.
죄를 사랑하거나 마귀가 주는 열매를 꺼려하는 것 자체가 아주아주 은혜로운 삶을 살고 있단걸
물론 저도 포함해서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가끔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가 주는 쾌락에 빠져들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할 때 정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얼굴을 돌리면 어떻게 될까요.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 내 속에 있는 두 마음이 자꾸 싸우는 것은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지 않고 하뜻청님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보라고 부르시는 거라고 저는 생각되네요.
시편 73편과 호세아서를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이 들때에 시편 73편을 자주 읽으며 기도하고 묵상하는 편입니다.
솔직한 신앙의 고민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뜻청님.
행복이란 무엇인가? 누군가 제게 이 질문을 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행복이란, 그 단어를 소유한 자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따라 마음속에 이미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지 뒤이어 물어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결국 행복이란, 마르틴 부버라는 한 철학자가 지적한 바 있듯이, 나와 너 사이에 관계회복이 있을 때, 그 나눔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 욕구충족과 행복을 나누어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단순 욕구충족을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풍요가 없는다는데 있지 않고, 기쁨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이 시대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풍요 속에 빈곤입니다. 영적 빈곤이지요. 매순간 존재의 문제를 소유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많은 현대인들의 현주소입니다.
저 또한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돈, 권력, 명예, 성.. 끊임 없는 떡의 유혹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결코 제 인생의 주인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그 길의 끝은 결국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마음도 전혀 들지 않습니다. 만일 질문자님 질문대로 죽기 직전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인생은 자기에게 허락된 유한한 시간들을 오직 욕구충족을 위해 살아온 허망한 인생이요,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물론, 구원을 받았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인생인 것입니다. 제 스승님은 30살까지 무신론자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난 후, 날마다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가, 하나님 제가 10년만 더 일찍 이것을 알았더라면.. 시간을 되돌려주실 수는 없습니까.. 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진리의 눈으로 자신의 지난 무신론적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너무나 허탄한 인생의 낭비였고 자기에게 손해일 뿐인 인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 시점에서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날마다 십자가 대속을 묵상해야합니다. 마지막 찬양가사로 글을 마칩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이전엔 세상락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수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결심(결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믿음에는 결심(결단)이 이 포함되지만 결심 그 자체가 믿음은 아닙니다.. 결심(결단)은 믿음의 한 요소일뿐 입니다 ...
다시 말씀 드립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그냥 믿기로 결심하면 구원 받는줄로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 왜냐하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갖게 되는 것 이기 떄문입니다..
죽기전에 구원 받으면 된다구요 ??? 다시 말하지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하나님이 은헤로 주셔야 하는것이지 자신이 결심해서 믿는다고 구원을 받는게 아닙니다 ... 구원은 사람이 자기가 믿기로 결심해서 받는것이 아닙니다 ... 다시 말하자면 구원 받는 시기는 하나님이 정하시는것이지 인간이 정하는것이 아닙니다 ...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란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또한 " 동시에 "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는 받아들이는데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입니다 .. 왜나하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또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것은 동시적 사건이기 떄문입니다 ...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는 받아들이지만 ( 이것도 참된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이러한 믿음은 멸망에 이르는 믿음 입니다 ..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는 받아들이지만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기로 결심했으니까 자신은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냥 그렇게 구원 받았다는 착각( 자기기만) 에 빠져서는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구원이란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 입니다 ...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먼저 더 중요한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아는냐 입니다 ... 다시 말하자면 믿음이란 것은 달리 표현하자면 예수님에 대한 신뢰 입니다 .. 이 신뢰는 관계를 통해서 생기는겁니다.. 예수님과 관계를 맺지도 않았으면서 내가 그냥 믿기로 결심했으니까 이제 끝난거 아니냐 ?? 라는 생각은 자기기만에 빠진 자들의 착각 입니다 ...
구원의 확신은 내가 정말로 거룩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있느냐 ...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으냐... 예수님을 정말 알기를 원하느냐.. 예수님을 사랑하느냐.. 로 갖게 되는 것 입니다
만약 거듭나지 못 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그 거듭나지 못 한 사람은 천국에서 영원히 고통 받을 것 입니다.. 왜냐구요 ??? 거듭나지 못 한 인간은 예수님을 증오하고 미워하기 떄문입니다 ..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을 알기를 싫어하고 예수님과 관계 맺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어하거나 거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 사람은 자신이 하기 싫어하는것을 " 영원히 "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만약 거듭나지 못 한 인간이 천국에 가게 된다면 그 인간은 천국에서 영원히 고통 받을 것 입니다 ..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고 싶다면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야 거룩해지고 싶은 새로운 심령이 생깁니다.. 다시 말하자면 거듭나야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렇므로 거듭나고 싶다면 예수님과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깊이 알아야 되고 또한 나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또한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과의 관계로부터 회개함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고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생기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나 자신에 대해서 지혜롭게 알 수 있게 되는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