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골통으로 돌아가는 미국

조회 수 2660 추천 수 322 2005.05.11 05:25:32
최근 미국의 아칸사스, 아리조나, 루이지아나 3개 주는 언약결혼(Covenant Marriage)이라는 제도를 법으로 규정지었다. 아칸사스 주지사마저 “우리 주에선 이혼하는 것이 중고차 사는 것보다 더 쉽다”고 말할 정도로 현재의 이혼율이 1950년대에 비해 두 배가 된 것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이혼할 수 있는 사유를 법으로 극히 제한 시켜 놓은 것이다. 그러나 강제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평생 사랑하고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는 각오가 선 카플만 이 서약을 하겠다고 법원에 신청해야 적용 받는다.

언약 결혼을 선택한 부부는 결혼 전부터 상담(the pre-marital counseling)을 반드시 받아야 할 뿐 아니라 배우자나 자녀 학대, 중범죄나 배우자 의무 태만으로 투옥된 것 같은 사유 외에는 이혼할 수 없다. 법원에 이혼을 신청하더라도 의무적인 조정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 2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한 아내의 남편으로 31년을 지낸 마이크 헉커비 아칸사스 주지사도 이 법을 활성화시키고 최소 천 쌍을 동참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결혼을 언약 결혼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 법이 실제로 이혼율을 낮추는데 얼마나 효력을 발생시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 결혼 서약에 막 서명하고 나온 한 부부는 “서류에 싸인한 것만으로도 우리의 결혼이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그들이 이것은 일종의 보험서류 같은 성격이지만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나가자고 서약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듯이 부부가 색다른 각오로 결혼 생활에 임하며 자기 배우자를 영원한 배필로 신뢰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3개 주 외에도 25개 주가 비슷한 성격의 법률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존 홉킨스 대학의 사회학 교수 앤드류 첼린도 “우리 사회에 너무 이혼이 많아진 사실에 대해 일반화된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생각에는 도덕적으로 황폐화되고 성적으로 가장 문란할 것 같은 미국이 오히려 그 반대로 가는 경향이 농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동성간 결혼에 대해서도 37개 주가 법으로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일차 실패했지만 연방 헌법으로 금지하는 것을 재차 시도하려는 것만 보아도 분명한 사실이다.    

흔히 부시 대통령이 보수 골통의 기독교 신자라서 미국을 케케묵은 옛날 식으로 되돌리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잘못된 분석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런 일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그가 국민들을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간 것에 불과하다. 네오콘(Neo-Conservatism: 新保守主義)은 국민들 사이에 다수를 이루는 조류와 사상을 대변한 것이지 그들이 국민들을 계도해서 자기들 노선과 정책을 주입시킨 것이 아니다.

9.11테러를 당한 이후로 미국은 확실히 바뀌었다. 평범한 중산층 미국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인생의 의미와 신의 섭리와 가족의 중요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Moral Value)만이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작년의 대선에서도 이 도덕적 가치가 부시와 켈리 두 사람 중에 누구를 선택할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지도자가 선동과 술수를 포함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중을 자기 뜻대로 끌고 가는 정치와 국민들의 뜻이 어디 있는지 주도 면밀히 살펴서 그 뜻을 자기 정책에 반영하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부시로선 첫 선거에서 기독교적 윤리에 반하는 몇 가지 정책에 애매한 태도를 취해 오백만 보수주의 크리스찬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하여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이 되었다. 따라서 두 번째 선거에선 미리부터 그들의 뜻에 맞는 정책을 발표하여 완승을 거둔 것이다.  

물론 부시를 반대하며 전통적 윤리관과는 다른 견해를 가진 자유주의적인 사람들도 상당히 많아 거의 백중세이긴 하다. 그러나 이 오백만은 당락을 좌우할만한 상당한 숫자이기에 부시로선 자신의 개인적인 기독교 신앙관도 그들과 일치했지만 그보다는 재선을 위해 그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존중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첫 선거에선 민주당 지지층도 일부 자기 쪽으로 끌고 오기 위한 전략으로 자기 신앙과 관계 없이 어중간한 태도를 취한 것도 사실은 같은 맥락이었다.    

대체로 부시는 이라크 전쟁에 점차 실패해 가고 국내 정치로 뚜렷하게 내세울 업적이 없으며 국제적으로도 너무 일방적인 패권주의를 실현한다고 인기를 잃어 다음 선거에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미국 대통령 선거는 옆에서 뭐래도 어디까지나 미국민들의 선거라는 것이다. 이번에도 부시가 이긴다면 신승(辛勝) 그러나 대다수가 케리가 이길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부시의 완승(完勝)으로 끝났지 않았던가?

한 정치 평론가가 이런 분석을 했다. 부시를 지지한 기독교 신자를 포함한 중산 보수층들은  전통적 도덕을 중시한다. 그래서 정상 가정을 가지고 자녀들도 둘 이상 씩 낳는다. 반면에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식층 내지 자유주의자들 가운데는 꼭 정상적인 가정을 갖고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공화당이 반대하는 게이나 임신 중절에 대해 호의적인 것만 보아도 이는 사실이다. 그러면 앞으로 갈수록 어떻게 될 것인가? 공화당 지지층 인구는 점차 늘게 되는 반면에 민주당 지치층 인구는 준다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파나 국민들은 4년 후 선거에는 민주당 정권으로 바뀔 것이고 그러면 한미 관계나 대북 핵문제가 훨씬 부드럽게 진행될 수 있으리라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 같다. 물론 단기적으로 봐선 부시의 2기 실적이 실패로 끝나면 반작용으로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미국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국민의 뜻을 따라 가지 선동해서 끌고 가지는 않는다는 점은 꼭 알아야 한다. 끌고 간다고 끌려 갈 국민들도 아니다. 한국처럼 감옥 갔다 온 범법자가 버젓이 선거에 당선되는 법은 절대 없다. 클린턴이 탄핵투표에까지 몰린 것도 단지 국민을 속이는 거짓말 했다는 한 가지 이유였지 않는가?

한국도 이제 워싱턴의 유력자 한 두 사람의 말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해선 안 된다. 특별히 신문의 논조에 의지해선 안 된다. 미국의 유력지는 언론의 속성상 진보적인 색채를 띄며 정부에 비판적이기 마련이다. 보통 국민들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보다는 장기적으로 미국 국민들 전체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라크 전쟁이 실패한다고 당장 정권이 민주당으로 바뀔 것이라고 쉽게 단정 지어서도 안 된다. 국제적 테러가 계속 기승을 부리는 한 공화당 정권의 명맥이 이외로 오래 갈 수 있다. 미국 전체 국민들의 성향이 대통령을 선출하지 어떤 정파의 기발 난 정책만으로 정권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아마 다음 대선에서도 모든 정당이 국민을 존중하기보다는 선동하는 정책부터 앞장세울  것이고 국민들은 또 다시 그 선동에 휘말릴 것이다. 지역과 세대와 이념간 분열 앞에는 어떤 좋은 정책도 소용 없고, 도덕적 가치는 케케묵은 곰방대가 되어 창고에 처 박히고, 후보자의 실력과 청렴도의 평가는 학연과 친밀도에 잡아 먹히고 말 것인데 어떤 합리적이고 객관적 기준인들 선거에 제대로 반영될 여지가 있겠는가?  

그렇다 할지라도 이제는 제발 국민들이 정치가를 탓하는 어리석은 짓은 그만 두자. 정치가란 정권을 잡는데 가장 유용한 방법을 고안해 내어 실천하는 것이 직업인 자다. 자기들 전문 분야에 자기들 실력을 발휘한 것을 두고 칭찬은 못해 줄망정 되려 탓할 수 있겠는가? 부시가 오백만 크리스찬 표를 잡기 위해 노력한 것이나 한국의 정치가들이 지역 감정을 자극하고 선심성 지역 개발 공약을 남발한 것이나 오십보 백보 같은 성질이다. 단 하나 차이만 빼고는 말이다. 미국은 정치가들이 국민들 뜻을 뒤좇아 간 것인데 반해 한국은 선동만 잘하면 쉽게 넘어오는 국민들이라 정치가들이 먼저 미끼를 던진 것만 다를 뿐이다.  

어떤 사람을 존중할 때는 그 사람이 정말 존중 받을 자격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 국민들이 정치가를 욕하는 이유는 그 중에 아무도 존중 받을 자가 없다는 것을 국민학생이 봐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거꾸로 적용해보자. 정치가도 국민을 전혀 존경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이 존경 받을 만해야 그들도 우리를 존경해 줄 것 아닌가? 돈 봉투는 절대 받지 않아야 하고 실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감옥 갔다 온 정치가는 다시는 뽑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국민을 최소한 겁이라도 낼 것 아닌가?  

존경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는 누가 뭐래도 반드시 존경 받게 되어 있다. 존경 받을 실력이 없을 때는 선동, 술수, 무력, 사탕 발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억지로 존경 받으려 할 수 밖에 없다. 정치가도 그렇지만 유권자도 선동과 술수에 쉽게 넘어가거나 무력에 굴복하거나 사탕 발림을 은근히 바라고 있는 한 존경 받기는 평생 가도 글렀다. 한국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존경 받는 정치가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존경 받을 만한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한 나라의 정치는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대변할 뿐이다. 가뜩이나 골치 아픈 정치를 더 이상 신경 쓸 것 무엇 있는가? 앞으로 3년간만이라도 국민들이 실력을 높이는 데만 힘을 쏟아 스스로의 가치를 되찾아 보자. 그래서 제발 정치가들이 선거 때만 말고 임기 내내 국민들 앞에 머리를 조아릴 수 있는 세상을 한번 만들어 보자.

(2/2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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