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들 중에는 부부가 함께 하루 종일 직장이나 가게에 나가 뼈빠지게 일하는 가정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갓난 아이는 할 수 없지만 자녀들을 보육원(Day Care)에 맡길 여유가 없는 경우 혼자 어지간히 앞가림 할 줄 아는 아이들은 집에 두고 다닌다. 그 때는 아파트 창문을 꼭 걸어 잠그고 커튼을 치고 전기 불도 켜지 말게 하고 전화도 받지 말고 큰 소리도 절대 내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고 나간다. 아이들만 집에 있다는 것을 밖에서 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도적이나 유괴범을 겁내는 것만이 그 이유가 아니다. 법적으로 14살 미만의 아이를 집에 혼자 두면 그 부모가 걸리게 되어 있다. 이웃 사람도 그런 집이 있으면 바로 경찰에 신고한다. 그 부모를 벌 주자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아이들끼리만 있다가 위험한 일이 생길까봐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런 일로 몇 번 연거푸 걸리면 정부에서 아이들을 강제로 데리고 가서 대신 키워준다. 아이들 부양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할 뿐 아니라 아이들이 안전하고 자랄만한 환경에서 커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에 와서 살다 보면 한국과 다른 점이 많은데 그 중 하나는 어린이 날이 없다는 것이다. 노약자와 여자와 어린이를 아주 귀하게 여기고 남자는 거의 종이나 다름 없이 일해야 하는데도 그러니 이상하다 싶다. 그러나 조금만 있으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 그야말로 일년 365일이 어린이 천국이기 때문에 구태여 따로 하루를 정해 잘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로 어린이 유괴 사건이 일어나면 그 즉시 관련지역의 전고속도로 전광판에 긴급 속보로 용의 차량의 차종, 색깔, 번호판 등의 정보가 떠서 모든 사람이 수상한 차를 발견하면 바로 자발적으로 신고하게 한다. 직접 아이에게 잘해 주는 것은 없더라도 이들이 아이들 일이라면 얼마나 발을 벗고 나서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비슷한 예로 성추행 범죄자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서 어떤 동네로 이사가면 모든 동네 주민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게끔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언제 또 다시 성추행 범죄를 일으킬지 모르니 주민들이 경각심을 갖고 아이들 단속을 잘 하라는 것이다. 전과자도 거주 이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이미 죄 값을 치렀는데도 불구하고 어른의 인격은 손상되더라도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이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위하는지 필자가 정말 놀란 사실은 따로 있다. 9.11 테러 때 거대한 쌍둥이 빌딩이 마치 모래 탑이 무너지듯 사라지는 장면을 TV로 본 사람들 모두 정말 황당하고 까닭 모를 공포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선 그 장면이 사건이 난 당시 이틀만 방영되었지 그 이후 3년이 넘도록 단 한번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방송국, 자료 보관소 같은 곳에 일부러 신청하지 않는 한 일반인이 이 장면을 볼 길이 없게 된 것이다.
나아가 그 이후로 흔히 생각하면 반드시 등장해야 할 ‘상기하자 9.11! 때려 부수자 알카에다와 그 두목 오사마 빈라덴!’ 식의 구호도 전혀 들을 수 없다. 심지어 매년 돌아 오는 9.11 기념일조차 그렇다. 물론 그 첫째 이유는 국민들이 그 장면을 보고 복수심에 불타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할까 염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이 그 장면을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 수천 명이 졸지에 비참하게 죽은 그 엄청난 죄악의 원인과 배경을 어린 아이들에게 도저히 알아듣게 설명해 줄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또 그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장면이 큰 정서적 상처를 줄까 염려한 것이다. 나아가 최소한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구태여 어려서부터 알게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틀 전에도 그런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또 다시 테러가 났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시 가문의 오랜 친구였던 Doug Wead 라는 사람이 부시 부자(父子)와 사적(私的)으로 전화 통화한 내용을 책으로 발간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 가운데 아들 부시가 고어와 맞붙은 첫 선거에서 대학시절 마리화나를 핀 적이 있다는 소문에 휩싸였던 것에 관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내용이 나온다.
친구 Doug이 왜 해명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부시는 그 진위여부를 떠나 소문 자체에 대해 아예 언급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우리 아이들이 자기 아빠에게 ‘부시 대통령도 마리화나 했는데 나도 해도 되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일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의 정치적 계산을 감안하더라도 이 말에 그의 진정이 실린 것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말의 앞뒤 문맥을 따지면 대학 시절 마리화나를 했다는 것을 친구에게 인정한 셈인데 그럴 정도로 자기 속내를 솔직히 털어 놓은 대화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식의 사고는 부시뿐 아니라 미국 부모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아이를 호텔 뷔페에서 먹이고 최고급 명품으로 입혀야 잘 해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가장 아이답게 자라게 해야 한다. 아이가 가장 아이다워야 한다는 것은 어른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와 어른이 가장 다른 것은 무엇인가? 지식이 자라고 육체적 능력이 늘어나고 사회 적응력이 신장 되는 것은 나이가 참에 따라 다 이뤄진다. 어른이 아이에 비해 가장 다른 것은 죄와 부조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또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이 꼭 실력을 늘려 주는 것 즉 좋은 것을 많이 소유하도록 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에 반비례 해서 실력이 주는 것 즉 나쁜 것들은 가능한 소유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그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어느 누가 아이들에게 일부러 나쁜 것을 가르치겠는가? 그러나 아이들이 죄악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을 자꾸 접하게 되면 자연히 나쁜 것부터 배우게 된다. 결국 어른들의 책임은 아이들에게 깨끗한 세상을 보여 주어야 할 뿐 아니라 9.11처럼 불가항력적인 죄악의 모습은 가능한 안 보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 말은 아이들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어른들의 일을 미리부터 주입시켜선 안 된다는 뜻이다. 참으로 가슴이 답답한 일은 왜 어린 아이를 노동 쟁의나 촛불 행진에 동원시키는가? 어려서부터 그런 사회 정의적인 차원의 분위기를 알게 해 준다는 변명은 도저히 말도 안 된다. 모든 사회 갈등은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법은 없다. 아이들로선 자기 부모가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도저히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부모가 주입하는 일방적인 논리에 물이 들게 되고 부모를 괴롭히는(?) 그 상대는 얼마나 악마처럼 느껴지겠는가?(이런 점에서 영호남 지역 감정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혹시라도 아이들을 볼모로 해서 어른들의 이익을 채우겠다는 욕심이 그 속에 과연 하나도 없을까? 만약에 조금이라도 그런 점이 있다면 아이들로 자연적으로 그런 잘못도 배우게 하는 셈이다.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좋은 것만 보여 주어야 하고 그러는 데에만도 시간이 모자란다. 아이들 교육에 가장 효과적인 것은 말이나 매가 아니다.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각목 들고 스트라이크 하는 것을 보며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것밖에 할 줄 모른다. 어른이 잔소리하면 아이들은 귀를 막고, 매를 때려도 잠시 아픈 그 때 뿐이다. 그러나 어른이 하는 짓은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지켜본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 한다.
이제 한국도 이전에 못 먹고 살 때에 제정한 어린이 날을 없앨 때가 되었다. 미국은 어린이 날은 없어도 아버지 날과 어머니 날은 따로 있다. 일년 내내 왕자와 공주로 대접 받는 아이들이 일년에 한 번은 아버지와 어머니도 왕과 왕비로 대접해 주는 날이다. 한국이 못 살고 집집마다 아이가 여럿이었을 때는 아이들이 거지 취급 받았다. 맛 있는 것도 엄마가 숨겨 놓았다가 아빠에게만 주었다. 아이들은 들에 나가 땔감을 주어 오거나 심지어 나가서 껌이라도 팔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정말 일년에 한 번이라도 짜장면에 야끼 만두 외식을 꼭 시켜 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 집에 자녀가 겨우 하나 내지 둘이라 매일 왕자와 공주 대접 받는다. 심지어 그 집의 왕과 왕비 노릇하고 있다. 한국도 일년 365일이 어린이 날이 된지 오래다. 따로 하루를 정해 특별 보너스 주는 날로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아이들이 대박 터트리려 벼르거나 부모는 부모대로 혹시라도 이웃집 아이보다 선물 보따리 숫자와 크기가 작을까 노심초사하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결식 아동, 소년소녀 가장, 고아, 장애아 등 어려운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경우가 태반인데다 정부가 전적으로 일반 아이보다 365일 더 세심하게 책임져야 한다는 면에선 따로 어린이 날이 필요 없기는 마찬가지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어른이 아이가 되는 것이다. 함께 뒹굴고 놀아 주라는 뜻만이 아니다. 어른이 아이처럼 순수하고 깨끗해지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답고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며 죄악과 부조리와 모순이 없는 세상을 물려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른들이 어렸을 때부터의 그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계속 커가는 수밖에 없다. 다른 말로 하면 비록 우리는 이미 더렵혀졌지만 가능한 아이들에게 그런 꼴을 감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가식적으로 살아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로 가능한 좋은 것만 보고 자라게 하라는 것이다.
필자의 부모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잠시 양해해 주기 바란다. 평생 두 분이 싸우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물론 싸울 일이야 많았겠지만 아이들이 집에 없을 때나 밖에 나가서 싸우셨을 것이다. 또 아이들 앞에서 당신들끼리 해야 할 긴급한 이야기는 일본말(해방 전에 학교 다녔던 세대라)로 하셨다. 아이들이 알아선 안 된다는 세심한 배려였다.
아이들에게 잘 해 준다는 것이 기껏 내신 성적 올리려고 학교 선생들에게 돈 봉투 갖다 바치는 일이어선 안 된다.(물론 일부이겠지만) 그 보다는 그래 놓고는 아이들 앞에서 그 선생 돈 밝힌다는 이야기 하는 것은 돈 갖다 주는 것보다 더 나쁘다. 어린이날 백화점에서 비싼 외제 장난감 사주고 부모 역할 다했다는 생각을 버리자. 그보다는 아이를 시위 현장에 데리고 가서 붉은 띠 이마에 매게 하고 구호를 같이 외치게 하는 일부터 제발 그만두자. 시위는 어른끼리만 하면 된다.
아이들 생각해서 9.11 테러를 그 이후 단 한번도 TV에 방영하지 않을 정도의 사고방식을 갖고 모든 시스템이 거의 완벽하게 짜여져 있는 이 나라에 사는 것이 가끔은 그 끔찍한 모습을 다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소름이 끼친다. 반면에 과연 이런 나라와 아이들마저 붉은 머리 띠를 두른 우리 조국이 언제쯤 맞설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마냥 우울해지기만 한다.
(2/24/2005)
굳이 색깔을 고르라면 우측보다는 좌측에 가깝다고 스스로를 생각하는 저이지만 이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젊었던(지금도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젊었던) 시절에 분노에 몸을 떨며 거리로 나간 일이 있었으나, 지금은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가치관이란 특히나 인간의 가치관이란 나이와 시기를 따라서 변해가는 것임을 알게됩니다.
대결의 장에 같이 서는 것보다는 대결하지 않는 시대를 물려줄 수 있다면 그것이 더 후세를 위해 좋은 일일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