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운동 당시 대륙회의와 독립선언이 발표된 곳으로 1787년 미국헌법이 이곳에서 제정되었고 90년부터 10년 동안 미국의 수도였던 미 동북부의 대도시다. 당시 대륙회의 건물이나 자유의 종(the Liberty Bell) 같은 역사적인 유적이 많으며 다운 타운 한 복판의 시청 청사도 고풍스런 건물로 명물이다. 한 무명 복서의 인간승리를 주제로 실베스터 스텔론이 주연하여1976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록키 1편의 무대가 된 도시이기도 하다.
그 영화를 본 분이라면 주인공 록키가 아침마다 로드 러닝을 하면서 어떤 큰 건물 계단을 단숨에 뛰어 오른 후 팡파레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시내를 향해 두 팔을 번쩍 쳐올리는 장면을 쉽게 기억할 것이다. 그곳은 비스듬하게 시내를 가로지르는 프랭크린 파크웨이 끝에 멀리 시청을 바라보며 위치한 필라델피아 미술 박물관의 정면 광장이다.
실베스터 스텔론은 1편의 성공으로 연속해 만든 5부 작까지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 시켰고 그만 보면 록키의 이미지가 떠오를 정도가 되었다. 오래 전 보도라 정확하게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그는 록키 1편에 나오는 그 유명한 장면대로 자신의 두 팔을 든 동상을 로케이션(location)했던 박물관에 기증할 테니 필라델피아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그 광장에 세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가 정중하게 거절 당했다. 록키가 아무리 아카데미 작품상을 탔지만 박물관 광장 한 복판에 세워서 후대 사람들이 두고두고 기념하고 감상을 시킬만한 의미와 가치는 없다는 뜻이었다.
꽃다운 젊음을 영화 예술에 불꽃 같이 태우다 자살로 그 짧은 생을 마감한 이은주씨에 대한 추모 열기가 대단하다. 고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그분의 영화나 드라마는커녕 심지어 노래 한 곡도 인터넷상으로 듣지 않은 필자로선 그저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하고 있었다. 단지 그녀가 일시적인 슬럼프를 이겨내었더라면 그런 열정과 재능을 겸비했기에 얼마든지 영화 발전에 더 큰 공헌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만 가지고서 말이다. 그런데 추모의 열기가 도가 지나치다 못해 일산 청아 공원 안에 동상까지 세운다고 하니 자연히 오래 전에 까맣게 잊었던 스텔론의 일화와 비교하게 된다.
제일 걱정 되는 것은 냄비 끓듯 하는 우리 국민성이 지금은 그렇다 치지만 이 추모의 열기를 과연 몇 년이고 몇 십년 이후에도 이어가겠는가이다. 또 자살한 분의 동상을 어린아이를 비롯해 누구나 가서 휴식을 취하는 공공 장소에 세워서 도대체 무엇을 기념하자는 말인가? 가뜩이나 OECD중에 자살율 1위를 마크한 나라인데 자살의 숭고함(?)을 배우라는 말인가? 지금 한국이 가장 자살율이 높은 이유는 돈이 최고의 덕목이자 가치가 된 세상이다 보니 생활고에 시달린 나이든 어른들의 자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자살을 미화시켜서 젊은이와 청소년들마저 자살로 내몰려고 하는가?
그녀가 한국 최초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탔다든지 하면 모를까 몇 십년 뒤 기억해 주는 지금의 세대가 다 지나면 그 동상이 아무도 찾아 주는 이 없이 쓸쓸하게 서 있을 모습까지 예상해 보았는가? 새가 와서 똥을 싸고 주정뱅이가 실례를 해 놓고 녹이 쓸어 흉물스런 모습으로 변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가? 혹시라도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괜히 생색내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자살하는 당사자에게 가장 절박했던 심정은 아무래도 이 한 많고 탈 많은 세상을 조용히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럼 그야말로 우리 모두 이 일을 하루 빨리 잊고 조용히 보내드리는 것이 고인에 대한 최고의 예우가 아니겠는가?
물론 동상 건립이 동료 연화인들 사이에 나온 의견이라고 한다. 영화인들끼리는 동상을 세우든 좀 심한 말로 시신을 화장하지 말고 방부처리해서 유리 상자에 넣어 영구 보관하든 어느 누구도 말릴 사항이 아니다. 정말 그녀가 한국 영화계에서 그 정도 업적을 남겼다면 말이다. 그래서 하루 빨리 한국의 예능 스포츠계도 미국의 명예의 전당(the Hall of Fame) 같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사계의 전문가로 객관성과 중립성이 보장된 심사 위원회를 상설하고 엄격한 심사 기준을 마련해서 후대에 기념할 만한 스타들의 사진, 기념품, 친필 싸인, 기록, 출연 작품 등을 보관 전시 해 놓고 그 분야에 취미를 가지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가 보게 해야 한다.
필자가 자랄 때에는 명절날 영화관마다 미어터졌다. 일년에 며칠 마음 놓고 노는 날이 명절 뿐이었고 또 오락이라고는 영화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동시 녹음이 안 되어 입과 동작이 안 맞고 낡은 흑백 필름이라 모든 장면이 비가 오는 듯 해도 그저 함께 울고 웃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정말 영화배우만이 진정한 대중의 최고 스타였다. 그래서 가끔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도 볼 길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영화 박물관이 있거나 필름 비데오 도서관이 있어 누구나 흘러간 영화를 언제든지 쉽게 열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비슷한 곳이 있는지 모르지만… 한국 영화에 대해선 그곳에만 가면 무슨 자료든 누구나 다 쉽게 구하고 열람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통 예술을 전시하는 필라델피아 박물관측으로선 스텔론의 동상 건립 제의를 거절한 것이 결코 대중 예술인 영화나 그를 얕잡아 본 뜻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로선 수백 년 수천 년 후대의 사람에게도 가치와 의미를 던져 줄 수 있는 예술 작품에 대한 자체 심사 기준이 이미 마련되어 있고 그 기준에 합당하지 않았을 따름일 것이다. 록키는 록키대로 영화로서 가치성과 의미는 충분히 있고 동상 건립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문제는 영화 박물관이나 영화 아카데미에서 처리할 일이지 단지 그 영화에 배경 장면으로 나왔다고 해서 그 자리에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이치는 없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각각 서로의 전문 분야를 인정해 주고 그 영역을 침범하지 말자는 미국 사람들 특유의 업무 처리 방식이 이 일에서도 나타난 것 뿐이다.
지금 한국의 영화계가 제 2의 중흥기를 맞아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성가를 인정 받고 있으며 조만간 아카데미에도 그 명함을 내밀 것이다. 정말 한국 영화계의 앞 날을 걱정하고 또 고인을 진심으로 추모한다면 이참에 모든 영화인들이 돈을 거두어 영화 박물관 내지는 영화 명예의 전당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 이은주의 사진과 기념품을 걸어두자. 또 심사 위원회의 기준에 합당하다면 동상이나 밀랍으로 등신대 인형을 세우든지 하면 된다. 그러면 전국민이 나서서 인터넷 상에서 과열된 추모 열기가 잘못되었다느니 동상 건립이 옳으냐 마느냐 온갖 갑론을박할 필요가 없어질 것 아닌가? 또 진정 그녀의 팬이었다면 그런 모금 운동에 얼마라도 동참하는 것이 고인을 추모하는 가장 현명한 일이 아닐까? 제발 무슨 일만 생기면 전국민이 나서서 남의 집 냄비를 가지고 내 연탄 불에 올려 놓고 끓이는 일은 이제 그만두고 내 연탄불 위에 있는 냄비라도 제대로 맛있게 끓여 보자.
(2/28/2005)
제가 20대대부터 가장 좋아한 배우였습니다.
드라마 카이스트로 대뷔(?)했죠...실제 데뷔는 아니더라도 저에겐 그렇습니다.
송어,태극기 휘날리며, 주홍글씨, 연애소설등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초반기에는 작품성 위주로 영화를 고른것 같더니 나중엔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리긴 했습니다.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이은주씨의 죽음이 이렇게 냄비끓듯 동정을 얻는것은....
현재 한국에 특별히 추천할만한, 기억에 남는 여자배우가 별로 없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죽기직전 촬영한 영화에서는 극단적 상황에서 미치다 못해 임신 상태로 죽는 배역을 맡았었죠,.
아쉽게도.....
이은주는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과연 그가 복음주의적 크리스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결론을 내리지 않겠습니다.
오늘날 삶과 죽음을 스스로 해결할 수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대해 아쉽고 그녀가 기독교장까지 치르는 순간이 오기까지 과연 주위의 성도들은 무엇을 했는지 진지하게 되물어보아야 합니다.
저도 동상 세우는건 반대입니다.
그리고....아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목사님께서도 쓰셨듯이 냄비근성일 뿐이지, 한번 닥친 바람이 잦고나면 다들 이성적으로(때로는 지나치게 이성적으로)변합니다.
사견입니다만, 저도 마뜩치 않아하는 한국인의 냄비근성은 한국을 이만한 속도로 발전시킨 원인중 하나라고도 생각합니다.
모든 사물에 장점과 단점이 혼재하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