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에서 차로 서쪽으로 약 두시간 가면 버지니아 주 쉐난도 국립공원 안에 루레이(Luray)라는 아름다운 종유석 동굴이 있다. 동부쪽의 친지를 만나러 여행 간김에 그 동안 세 번이나 들렸다. 그만큼 아름답고 특이하다. 특별히 동굴의 지하 광장에서 불을 다 끄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종유석을 이용해 만든 자연 파이프 오르간으로 오래 전 남북전쟁을 주제로 나온 서부영화 ‘쉐난도’의 주제곡을 들려 줄 때는 온몸이 오싹 떨리며 신비하기조차 했다. 뉴욕쪽 한인 여행사의 동부 관광코스에도 들어가 있어 아마 가 본 사람도 꽤 될 것이다.
1991년 여름 휴가로 그 동굴에 처음 가보았을 때에 깜짝 놀랐던 일이 하나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삼십분 간격으로 약 20명씩 잘라서 입장시키는 것이었다. 표를 사고 보니 2시간 후에나 구경이 가능했다. 가뜩이나 성질 급한 한국인으로선 이해가 안 되고 화도 났지만 꼬불꼬불 산길만 한 시간 넘게 운전해 온 것이 아까워 주위 기념품 가게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도대체 뭣 때문에 그리 콧대 높은지(?) 두고 보기로 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미국 사람들 틈에 끼여 아내와 두 아이 손을 잡고 열을 지어 들어가자마자 가이드가 밖에서 오래 기다려야만 했던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람이 호흡하면 발생하는 일산화 탄소가 종유석을 부식(腐蝕) 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굴 내부의 전용적(全容積)과 성인(成人) 일인의 호흡에서 배출되는 단위 시간당 일산화 탄소의 양을 정확하게 계산하여, 외부와 소통되는 대기만으로 그 피해(damage)를 충분히 희석(purify) 시킬 수 있는 사람 숫자만큼 시간 간격을 두고 동굴에 입장시킨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람의 호흡으로도 종유석에 절대 피해가 안 가게 해서 그 아름다운 자연 유산을 천년만년 후손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기겠다는 뜻이었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한여름이라도 느끼는 지하 동굴의 서늘한 한기에 덧붙여서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야! 이 놈들 대단한 놈들이구나. 아니 무시무시한 놈들이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솟았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에서 반신반의했던 이야기가 진짜 정말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드니까 더 무서워졌다. 미국은 알라스카를 비롯해 곳곳에 석유가 무진장 있는데도 일부러 파내지 않고 놓아두었다가 다른 나라 석유가 다 떨어지면 팔 것이라는 그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마침내 그 숨겨진 석유의 실체가 이제 곧 만천하에 공개될 판이다. 미국 상원이 3/16 부시가 제출한 알라스카 석유 채굴을 허락하는 법안을 51대 49의 박빙의 차이이긴 해도 통과시켰다. 국제적으로 급등하는 석유 가격이 호경기로 돌아서는 미국경제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의 국제시세가 오르는 가장 큰 원인은 후진국들도 경제 개발을 이루어 마이카 시대로 접어들었고 그 중에서도 광대한 중국과 인도의 성장이 가장 큰 소비 주범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금 세계적으로 석유를 아무리 파내도 공급이 수요를 도저히 못 따라가고 있다. 중국과 인도가 경제 개발을 그만 둘 리는 절대 없으므로 앞으로는 구조적으로 항상 석유 위기라는 말이다.
1960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알라스카에 ANWR (the Arctic National Wildlife Refuge:국립북극자연보호구역)이라는 성역을 1900만 에이크에 걸쳐(1200평/에이크) 법으로 지정했다. 그러다 수 차례 오일 쇼크를 겪자 1980년 해안 평야쪽 150만 에이크의 땅은 국회가 별도로 인준하면 석유 채굴을 위해 개발할 수 있다는 유보조항을 두었는데 이제 25년 만에 그 조항을 실제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곳에 묻힌 매장량에 대해선 석유업자, 지질학자, 환경보호론자 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적으로 최소한 하루 백만 배럴을 약 10년 정도 팔 규모는 될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파보아야 알겠지만 사실은 미국 전체 하루 석유 소비량 2천만 배럴의 5%밖에 안 된다.
그런데 별 것 아닌 것 같아보이는 그것마저 환경론자와 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내겠다고 덤비는 것이 오히려 우리로선 더 큰 문제다. 세계는 격변하고 있고 앞으로 누가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느냐에 국가의 생존을 걸고 있는 마당이며 시쳇말로 해서 미국도 단단히 똥줄(?)이 탔다는 뜻이다. 중국과 인도의 급성장은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의 소비가 가장 큰 요인이다. 미국의 경제가 무너지면 전 세계가 무너지며 중국과 인도라고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럼 한국은…?
그러나 이 뉴스를 접하면서 더 크게 놀란 사실이 또 있다. 미국의 Gulf(중동말고 미대륙의 남해)에 알라스카보다 더 무진장한 석유가 매장 되어 있는데 단지 채굴 비용 때문에 알라스카를 먼저 파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특별히 지난 대선에서 패한 케리 같은 이는 에너지절약을 더 강화하고 연료절약형 자동차와 재활용연료 개발에 힘 써야지 왜 자연을 파괴하여 환경상의 재앙을 늘리려 하느냐고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반해 부시측에선 이제는 석유채굴 기술이 발전하여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고도 얼마든지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부시가 대통령이 된 이후 4년간의 논쟁을 거쳤지만 통과되지 못하다가 어제 그것도 가까스로 두 표 차이로 통과되었다. 참 그래도 대단하다. 자동차 연료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 소비자들(유권자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겨우 이제서야 통과되니 말이다. 그렇게 반대가 많은 것도 환경 보호를 얼마나 중요시하며 그만치 먼 장래를 내다 본다는 또 다른 증거이지 않는가?
그런데 더 놀란 것은 미국의 에너지 자원으로 가장 풍부한 것은 사실은 석탄인데 공해 때문에 개발과 사용을 극히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 석탄을 공해 유발하지 않고 개발하여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고 전력을 쏟고 있다. 또 수소연료구동자동차(hydrogen-powered vehicles)와 연료전지(fuel cell) 같은 대체 에너지 연구에 내년도에 약 8억5천만불(우리 돈 약 일조)을, 노후파이프 교체 같은 에너지 산업의 효율화에 올해 27억불을 연방예산(각주 정부와 민간연구소를 제외한)으로만 배정해 놓았다. 미국은 루레이 동굴을 천년만년 보존하듯이 과장해서 말하자면 에너지도 천년만년 쓸 자원이 있고 또 그럴 수 있는 대책을 계속해서 세워나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 미국 땅이 천연의 축복을 받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부자가 더 아낀다고 그 풍부함 속에서도 주도 면밀하게 먼 장래를 대비하는 것을 알게 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소름이 끼친다. 그에 반해 두고 온 조국과 형제들을 생각해 보면 한 없이 서글퍼진다. 가뜩이나 좁고 자원이라고는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 험난한 국제 경쟁에서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면 말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머리 좋고 성실하게 일하며 융통성이 풍부한 인적 자원뿐이지 않는가? 그런데 그 자원을 먼 장래의 목표를 향해 제대로 하나로 만들어 모아나갈 생각은 않고 바로 담 하나 둔 이웃도 서로 못 믿을 정도로 갈갈이 찢겨져 있으니….
미국 못지않게 무서운 놈들이 일본이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메이커로 올라선 Toyota의 전사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아는가? “Toyota를 이기자!”이다. 벤즈나 GM을 이기자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절대 자만하지 말고 기존의 성취감에 도취되어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라는 뜻이다. 일등으로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앞만 보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도 먼 장래를 내다보는 데는 아시아에선 최고로 도가 튼 민족이다. 다른 말로 하면 독도 분쟁 같은 것은 심심하면 재미로 한국의 신경을 툭 한 번 건드려 놓고 그 사이에 자기들은 오직 자기들 앞날 챙기는데 모든 힘을 쏟겠다는 경쟁자를 따돌리는 고도의 계산 된 수법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게 아니면 정확한 정보에 바탕을 둔 우리가 모르는 뭔가 숨겨진 흑막이 거대한 빙산처럼 그 뒤에 감쳐져 있든지, 그래서 한국이 제 뿔에 흥분하기만 기다리든지 둘 중 하나다.
우리 국민들이 독도 문제에 민감한 것 정말 이해할 수 있다. 멀리 이국 땅에서도 똑 같은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일본인들을 만나면 갈아 마시고 싶지만 그 보다는 우리 민족이,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선동에 넘어가는 소시민들이 더 안타깝고 불쌍하니 어쩌면 좋은가? 지금 전 한국민들의 당면한 화제와 관심은 어디에 가 있는가?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3년 후 선거가 아닌가? 벌써부터 작은 용들은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사회 집단간, 지역간 주판 알 튕기기가 덩달아 춤추고 있지 않는가? 그래서 독도분쟁마저 정파는 정파대로, 언론기관은 언론기관대로 서로 자기 입장에 유리하도록 해석하고 목소리 높이지 않는가? 일본 사람들은 바둑의 수읽기로 치면 이미 끝내기까지 다 계산 해놓고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