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한 계곡 물에서만 자라 공해측정기라는 별명까지 있는 송어(Trout)를 맨손으로 잡은 적이 있다. 갓 미국으로 이민 온 오래 전 이야기다. 가족들과 함께 바베큐 피크닉하러 계곡에 갔더니 송어 몇 마리가 옹기종기 바위그늘에 모여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 장난 삼아 손을 넣어 보았더니 가뜩이나 운동신경이 느린 내 손에도 거짓말처럼 잡혔다. 잡았다기 보다 떠 올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미국 송어는 아무도 잡는 사람이 없어 굉장히 둔한가 보다 잠시 착각했지만 사정은 그것이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 미국 사람이 낚시로도 한 마리 낚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인즉 어자원 보호와 관광진흥 차원에서 양어장에서 송어를 부화시켜 성어(成漁)가 되면 매년 초여름에 계곡 물에 대량 방류하는데 마침 그날이었던 모양이다. 양어장의 갇힌 물에 살던 송어들이 세차게 흐르는 계곡물에 아직 익숙치 못해 얼떨떨해 있었던 것이다. 계곡물을 따라 헤엄을 쳐야 낚시에 걸릴 텐데 꼼짝 않고 있으니 미국 낚시꾼은 죽을 쓸 수밖에…
예상치 않게 손으로 떠올린 송어 몇 마리를 담을 그릇이 없어 입고 있던 비닐 점퍼에 싸들고 숲 속 벤치로 돌아 오는데 미국 낚시꾼이 아주 기분 나쁜 얼굴로 쳐다보았다. 한 마리도 못 잡아 괜히 시기가 나서 그런가 보다 했지만 그것도 잠시동안 나만의 착각으로 판명 났다. 조금 있으니 산림경찰(Forest Ranger)이 근엄한 얼굴로 우리 벤치로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낚시 허가증(Fishing License) 없이 고기를 잡으면 벌금을 문다는 말이 생각나 겁부터 덜컥 났다.
아니다 다를까 대뜸 방금 저쪽 계곡에서 송어를 잡았는가 하고 물었다. 벌금 물 것이 아까워 그런 적이 없다고 딱 잡아 뗐다. 눈은 연신 그 고기를 넣어 놓은 아이스 박스에 가 있으면서 혹시 저 박스를 열어보면 큰 일인데 그 때는 짧은 영어로 뭐라고 변명하나 잔머리를 굴러 가면서 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낚시 하던 사람이 너희가 손으로 고기를 잡았다고 신고를 해서 확인하러 왔는데 그러지 않았다니 믿고 가겠다. 내가 현장에서 그 사실을 확인했다면 딱지를 떼고 벌금을 물릴 텐데 증거가 없으니 나중에라도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경고만 주겠는데 절대 손으로 고기를 잡지 말라”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지금 되돌아 봐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었던 일이다. 대한민국 남아의 자존심과 아빠로서 아이들 앞에서 정직한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들은 까맣게 잊고 돈 몇 푼 아끼려 거짓말 했고 그 다음 핑계 될 것까지 궁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반면에 미국 경찰은 참 일을 합리적이고도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증거가 없으니 경고만으로 끝냈고 또 수색 영장 없이는 남의 물건을 함부로 조사해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아이스 박스의 뚜껑이 열려 있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틀림 없이 경찰에게 위증한 죄까지 더 보태져 벌금이 몇 배로 나왔거나 법원에 가서 정식 재판을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이들이 매사에 일 처리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예를 두 가지만 더 들어보자. 이왕 낚시 이야기가 나왔으니 보태자면 매년 라이센스를 사야 낚시를 할 수 있는데 라이센스 한 장으로는 낚싯대 하나 밖에 사용 못한다. 여러 대를 줄지어 늘여 세우려면 낚싯대 숫자만큼 라이센스를 사야 한다. 또 민물에선 사람 손, 그물, 약물, 몽둥이 등 낚시 아닌 방법으로는 고기를 잡지 못하게 한다. 물론 이들이 생선을 그리 즐겨 먹지 아니해 그렇기도 하겠지만 환경 보호에 철저하고 다른 방법으로 고기를 잡는 것은 동물 학대에 해당되기 때문일 것이다.
극장이나 운동장 같은 곳에서 표를 살 때에나 공원이나 공연장에 입장할 때에 반드시 함께 온 사람 전원이 같이 서서 기다려야 한다. 한국에서처럼 한 명이 대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차례가 오면 갑자기 어디에선가 떼거지로 나타나는 것은 새치기로 금기(禁忌)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뙤약볕에서 고생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바로 앞에서 갑자기 나타난 많은 사람들로 인해 입장이 지연되거나 표가 매진되어버리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또 어떤 공연이건 줄 서서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구경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줄서기에서 유일한 예외가 있다. 핸디캡을 동반한 보호자 및 가족은 열외로 쳐 준다. 약 10년 전 한국에서 부모님이 방문 오셨다. 무릎이 아파 걷기 불편해 하시는 부친을 위해 도착하기 전부터 차량등록국(DMV)에서 차 안의 백미러에 걸 수 있는 6개월짜리 임시 핸디캡 면허를 발급 받고 휠체어도 빌려 놓았다. 공항에 배웅하러 갔더니 게이트를 통과해 비행기 안에까지 들여보내 주었다.(아마 911테러 이후는 출영객 대신 공항 직원이 대신 가겠지만)
미국 각지를 여행 하면서 나이아가라 폭포에 들렀다. 엘리베이트로 굴을 타고 내려가 폭포 안쪽의 뒤에서 물이 떨어지는 장관을 볼 수 있는데 여름 휴가가 한창 피크일 때라 표 사서 구경하려면 족히 두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대표로 제가 부친의 휠체어를 밀고 핸디캡 매표소로 바로 가고 동생과 우리 가족 예닐곱 명은 일반인 표를 사려고 길게 늘어선 줄의 꽁무니에 붙었다. 앞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직원이 우리 일행 전부 불러서 당장 함께 입장 시켜 주었다.
반면에 부친이 그 미국 방문을 마치고 김포 공항에 입국했더니 공항 직원이 휠체어를 갖고 와 태워주는 친절을 베풀기는 미국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제는 부친만 먼저 입국 심사를 간편하게 마치게 하더니 공항 로비에 혼자 두고는 가버리더라는 것이다. 동행하신 모친이 입국 절차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혼자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만약 그 사이에라도 무슨 일이 생기거나 화장실에라도 가려면 어떻게 되는가? 장애자용 보호 시설과 그 실천의 우월성을 따지자는 뜻이 아니라 이런 간단한 일에서조차 공평성과 합리성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위에 예를 든 것같이 정말 별 것 아닌 사소한 일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페어플레이를 한다.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욕 중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거짓말쟁이’(Liar), ‘비겁한 사람’(Cheater)을 들 수 있을 정도로 신사적이다. 어떤 사람은 서부 개척 시대에 법을 올바르고 공정하게 집행하지 않으면 무법자가 설치게 되니 그때부터 페어플레이가 생겼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훨씬 이전부터다. 중세 유럽에서부터 발단한 기사도와 장인 제도 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기독교 문화에서 비롯된 정직하고 공평한 삶이 천성적으로 몸에 베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수천년간 가난에 찌들다 보니 이들과는 반대로 오직 출세와 금력 지향 주의가 몸에 베였다. 경제 성장기 동안에 만연되어 지금까지 성행하는 부정부패 때문에 법을 지키는 자가 오히려 병신 취급 당하는 세상이 되었다. 경쟁사회에서 살아 남게 하기 위해 자식들마저 영악하게 키운다. 밖에 나가서 맞고 오면 원인과 잘잘못은 따지지 않고 일단 나가서 두 배로 복수하고 오라는 식이다.
그토록 순박했던 한국인들 사이에 갈수록 페어 플레이다, 스포츠맨쉽이다 하는 말은 영화나 드라마로도 들어보기 힘들게 되었다. 혹시라도 공정한 행동을 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이 한다. 간단한 예로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에 빨간 신호등이라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뒤에서 빵빵거리지 않는가? 줄서기에 대표만 세우는 편법 새치기부터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한 페어플레이 정신이 도저히 되살아 날 것 같지 않다.
최근 전쟁이 나도 군대에 가지 않겠다고 대답한 대학생이 45%가 넘으면서도 막상 말썽 많던 국적법에 따라 병역 기피를 위해 국적을 포기한 자를 비난하는 자도 75%가 넘었다. 군대 입대의 근본 목적은 전쟁이 나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뜻이다. 45%가 넘는 자가 명시적으로 병역 기피하겠다고 선언한 셈인데 그러고도 어떻게 남을 비난할 수 있는가? 페어플레이와는 거리가 먼 너무나 비겁하고도 자기 얼굴에 자기 침을 뱉은 격이다.
그러나 잠시만 돌이켜 생각하니 최근 친일조사다, 연일 터지는 각종 스캔들에서 보여준 어른들의 비겁하고도 후안무치한 행동을 따라 한 것뿐이지 않는가? 나아가 그 동안 어떻게 되었든 우리 스스로 자식들을 영악하게만 키워온 당연한 결말이기도 하고….
6/2/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