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학 입시 제도의 원칙은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변함 없이 오직 하나 - 대학의 전적 자율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 넓은 땅 곳곳에 산재해 있는 대학과 수험생들이 입학 시험 보러 왔다 갔다 할 수 없으며 그 관리도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실기를 테스트 해야 할 일부 예체능계 대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대학이 본고사 없이 서류 심사로만 학생을 선발한다.
학교와 전공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서류 심사에 갖추어야 할 필수 서류는 GPA(grade point average- 9-12학년 성적표), SAT(Scholastic Aptitude Test-학력적성검사성적), Essay(수필) 크게 세 가지다. 구체적으로는 그 내용과 적용이 다르지만 한국의 내신성적, 수능고사성적, 논술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각 대학은 이 셋을 종합해서 고유의 사정 방침에 따라 평가를 하여 합격 여부를 개별적으로 통보한다.
전국적으로 시험 일시가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입학신청료(Application fee)를 첨부하여 서류만 갖추면 무한정으로 복수 지원이 가능하다. 입시전형을 대학의 전적 자율에 맡긴 것이 미국은 땅이 너무 넓고 대학 숫자가 많다는 현실적인 탓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학생들이 자기 적성과 성적과 형편에 적합한 대학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대학도 자기 학교의 교육 방침에 맞는 우수한 학생들을 재량껏 선발토록 하기 위한 것이다.
소위 Ivy League로 불리는 최고 일류대학들은 전국의 영재들이 지망하기에 GPA와 SAT 성적이 지망생간에 거의 대동소이하다. 한 미국 교수의 농담에 따르면 입시원서 전부를 공중에 던졌다가 아무 것이나 하나 집어 들어도 둘 다 거의 만점 수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일류 대학으로선 그 중에서도 더 우수한 학생을 선별하기 위해선 자기들 특유의 규정들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세가지 필수 서류 중에서 오히려 Essay에 입학사정의 비중을 높이 둔다.
그런데 이 에세이는 대개의 경우, 특별한 제목이 없고 고등학교 때의 활동, 그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게 된 이유, 대학에 들어와 어떻게 공부할 것이며, 대학에 기대하는 내용, 장래 희망 등에 관해 논술하도록 한다. 마치 회사 입사할 때에 이력서나 자기 소개서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을까, 누구라도 다 그럴싸한 내용으로 수준 높게 쓸 수 있을 것 아닌가 의아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은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우선 영어에는 동일한 내용도 표현 법과 인용되는 단어들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그 수준에 따라 금방 등급 매길 수 있다. 나아가 글 내용의 독창성(creativity)과 그 학교와 전공을 택한 지망생의 열정(passion)과 학업 준비 태세 및 장래의 가능성(possibility) 등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 때문에 단순히 글이 명문(名文)이라고 해서 점수를 후히 받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로서 정작 주목해야 할 사항은 논술마저 지망생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어떤 주제를 주고 시험 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집에서 이미 작성한 것을 우편으로 접수 받아 심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장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우리의 잔머리는 어떤 방향으로 돌아가겠는가? “책에서 베끼거나 전문가에게 교정 내지 대필(代筆)을 시켜 보내면 되겠네”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염려도 사실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앞에서 말한 대로 영어의 표현법과 용어가 너무나 다양하기때문에 실제로 많은 학습과 다양한 경험을 갖추기 전에는, 말하자면 고3의 실력으로는 어지간해선 사용 못할 표현법과 용어들이 있다. 그래서 에세이를 심사하는 교수는 전문가의 교정, 복사, 대필한 것들을 단 번에 골라 낼 수 있다.
또 대부분의 미국 부모들은 거짓말이나 비겁한 행동을 하는 것과 법을 어긴다는 것은 아예 생각도 않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고, 설령 그런 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자녀들이 그런 요구를 한 마디로 거절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선 서울대가 논술고사를 입시 전형에 포함시키느냐 마느냐로 대학당국과 정부간에 논쟁이 분분하다. 그런데 이 논쟁을 단지 사교육비의 추가부담이나 입시 관리의 복잡성 문제로 몰아가선 안 된다.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인가?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교육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정부 예산이 얼마가 들던 관리가 좀 복잡하든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을 선택해 뒷받침 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서울대가 논술을 요구하는 첫째 이유가 미국의 일류대학처럼 내신성적과 수능고사 만으로는 다들 우수하니까 그 중에서도 더 우수한 학생을 정확하게 가려 뽑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그러면 그것을 지원 내지 권장은 못할망정 도대체 “건방지니 손 봐주겠다니, 특권층을 재생산하는 서울 대학을 없애겠다”는 식의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주저 없이 국민들을 향해 막 대놓고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어떤 대학이라도 대학이라면 반드시 일류를 지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자 그대로 대학(大學-큰 배움의 터)조차 아니다.
그러나 한국 교육의 정작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일부 미국 교포들 중에는 자녀들더러 Essay를 베끼거나 대필해서 내도록 시키고 있고 또 당사자들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하던 버릇을 미국에 와서도 답습하고 있다. 오직 성적만 잘 받고 일류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더라도 자식을 출세만 시키겠다는 뜻이다. 서류로 접수하는 논술도 스스로 정직하게 쓰게 만드는 미국 교육의 참 모습은 보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베낄 꿈도 못 꾸거나 안 꾸는 미국인들이 앞 뒤 꽉 막힌 바보로 보일 뿐이다. 최근의 조기 유학 바람에 편승한 부모들도 무슨 수를 써도 그저 영어만 잘하면, 미국 대학 졸업장만 따면 된다는 식이다.
한 7-8년 전에 미국 SAT 문제가 사전에 누설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말썽이 LA에서 생겼던 적이 있다. 시험을 마친 한국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학원에서 이미 배운 문제들만 나왔다고 나누는 이야기를 미국 학생이 듣고 수상하게 생각해 신고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문제가 누출 된 것이 아니라 한국 학원에서 자기 학원의 수강생더러 문제 하나씩 만 외워 오라고 시키고 여러 번에 걸쳐 모아 소위 말하는 족보를 만들어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실제적인 실력을 늘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오직 점수만 손 쉽게 빨리 올리겠다는 것이다.
한국 교육이 미국에 비해 백년이 뒤진다고 해서 교육전문가로서 구체적인 자료나 통계를 갖고 하는 말은 아니다. 단지 교육을 국가의 百年之大計라고 말하는데 한국 교육에 그런 먼 장래를 내다보는 확고한 교육관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대학이 스스로 일류가 되려는 것조차 정부가 말리고 있다.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뒷전이고 관리가 복잡하지 않고 욕만 크게 안 먹게 하려한다. 독창성, 열정, 가능성은 아예 안중에 없고 오직 점수로만 사람을 평가한다. 나아가 그 점수가 어떤 부정하거나 불공평한 방법으로 취득 되어졌던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대학의 자율화는 요원하고 아직도 기껏 논술을 포함시키느냐 마느냐를 따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부모들이 자식을 커닝을 해서라도 점수만 올리라고 가르치고 자식들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다. 교육이나 대학 당국보다 부모가 더 큰 문제다. 백년 뒤 이 나라의 앞날을 상상해보라. 실제 실력이 아니라 거짓말과 사기술에 능통한 자들이 출세해 지도층에서 이끌어 가고 있을 모습을… 사실은 지금도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백년 뒤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심해져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한국 교육이 미국보다 백년이 아니라 그 몇 배나 뒤져 있는지 모른다. 수능고사, 내신 성적, 에세이 전부를 서류로 심사해도 그 공정성을 교육 당국간에 서로 완전히 믿을 수 있게 되려면, 나아가 부모나 학생들이 에세이를 집에서 작성해도 베끼겠다는 생각은 죽어도 하지 않고 당연히 스스로 정직하게 쓰게 되려면 과연 얼마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7/7/2005
교사권위의 완전한 실추, 학습효과 극대화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지는 사교육의 난립, 부익부 빈익빈의 학력세습구조, 특성화되지 못한 대학을 따라 특성화되지 못하는 중고등학교 교육의 붕괴.....
저는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사는 삶에 큰 희망을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을 생각하면 2세를 키울 자신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