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모르면 미국에 당한다.

조회 수 307 추천 수 0 2023.04.29 05:31:27

미국을 모르면 미국에 당한다.

 

미국에서 삼십 년 넘게 살고 있으니까 한국의 청년들로부터 미국에 관한 이런저런 질문을 종종 받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 중에도 가족과 친지로부터 많은 질문을, 주로 정치적 상황에 관한 것이지만, 받았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구체적인 제 의견을 말하기 전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유한 성격부터 알아야 한다는 전제를 붙입니다. 비슷한 성정을 지닌 단일 민족이 어떤 사안이라도 일사불란하게 처리하는 한국과는 여러모로 다르다고 강조합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 방미에 관해서도 한 청년이 미국 현지의 언론들이 어떻게 보도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한국은 모든 신문과 방송이 연일 백악관 만찬의 메뉴까지 아주 상세하게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전혀 다릅니다. 제가 한국 방문으로 인한 여독과 시차를 극복하느라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미 전국에 송출되는 일반(뉴스 전용이 아닌 공중파 CBS, NBC, ABC, FOX 등) TV 뉴스에 거의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며, 이런 점에서부터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비해 많이 약해졌어도 아직은 미국이 세계 최강의 지위를 유지하므로 세계 각국의 원수급 지도자들이 백악관을 아주 자주 방문합니다. 특별하거나 긴급한 경우가 아니고는, 예컨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미국 의회 영상 연설, 일일이 보도하지 않습니다. 결코 과장이 아닌데 매주 그런 방문이 있다 쳐도 일 년에 50개국밖에 안 됩니다. 지금은 그러지 않으나 이전에는 그런 귀빈들을 뉴욕 맨하탄의 마천루 사이로 오픈카 퍼레이드로 모셨습니다. 환영객을 강제 동원하지 않으니까 자연스레 환영 분위기가 조성되게끔 의도적으로 직장인들이 거리에 나다니는 점심시간에 맞춰서 통과하게 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국 대통령이 이번 주에 미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아는 미국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워싱턴의 정치가, 메스컴 종사자, 한국 관계 전문가, 유달리 정치에 관심이 많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알지도 못하고, 사실상 별로 관심도 두지 않습니다. 일반 시민들은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운 삶을 사는 데다, 그마저 최근 사회적 경제적 사정이 나빠져 매우 빠듯해졌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의 인생을 자기 멋대로 살려는 미국인 특유의 개성도 작용해서 자기 관심사 외에는 잘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 청년은 한미동맹이야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고 한국 언론에서 보여지는 것과 달리 실제로 이번 방문으로 한국에게는 실익이 없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일리가 있어 보이는 의견이나 민감한 정치 문제인지라 저로선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하겠습니다. 그보다는 이참에 한국인들이 미국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사실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은 당연히 자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데 이는 모든 나라가 외교에서 가장 먼저 견지해야 할 똑같은 입장입니다. 미국이라고 전 세계에 특별히 한국 같은 동맹국에게 자비만 베풀어야 하는 천사 같은 나라가 절대 아닙니다. 그런 기대를 하는 것부터 잘못입니다. 특별히 미국은 현재 누리고 있는 세계의 거의 유일한 패권국의 위치를 절대 놓지 않으려 합니다. 이번에 윤 대통령을 극진히 대접한 일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되지 굳이 그 이상 혹은 그 이하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랜 동맹국으로서 호의를 베푼 것까지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으며 외교 문제에 관해선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분석 평가 판단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일단 국빈 방문의 경우는 어느 나라나 다 그렇게 합니다. 아무리 약소국이라도 상대에게 최대한의 예의와 격식을 갖춰서 기분 좋게 해주어야 미국이 원하는 바를 최대한 얻어낼 수 있는 법입니다. 나아가 한국의 국력이 그만큼 강해졌기에 미국의 국익에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핵 공격을 당하면 미국이 핵 보복을 감행해 정권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북한을 크게 자극할 만한 직설적인 문구도 동원한 것입니다. 바꿔 말해 한국의 국력이 약해지면 언제든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관계 전문가만 이번 방문에 관심을 둔다고 해서 절대 섭섭하게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미국의 큰 강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전문가들은 평생을 두고 오직 한국만 철저히 연구 분석합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연구 분석한 결과를 종합한 데이터에 따라서 정부의 의사결정이 이뤄집니다. 미국은 온갖 인종이 모여 살고 또 50개 주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연방 체제이므로 구조적으로 소수의 정치가에 의지할 수 없고 엄격한 법체제에 의존하는 시스템에 따라서 움직이는 사회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복잡한 나라는 금방 무정부 상태가 되어서 제대로 살아남지도 못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관행들이 반드시 객관적 합리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한국 전문가들까지, 여타분야에도 전문가 우대 정책은 동일함, 갈아치우지 않고 계속해서 활용합니다. 그들의 한국 전체에 관한 연구 결과를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활용하는 것입니다. 감히 추측하건대 한국에 관해 일관되게 연구 분석한 데이터나 사례들이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많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 관한 자료는 당연히 한국이 많지만, 미국이 한국을 꿰뚫어 아는 정도에 비하면 한국은 미국에 대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아무리 정권이 바뀌고 국제정세가 급변해도 그 자료에 절대 수정 가감하지 않고 철저하게 그대로 보관 참조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미국은 외교와 통상은 나라 대 나라의 차원으로 접근 적용하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이번 윤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의회 연설에서 민주 공화 의원들이 함께 수십 번이나 열렬히 박수쳐주었지 않습니까? 일차적으로 연설 내용이 좋았겠지만 국익을 우선하는 데는 정파가 따로 없다는 뜻입니다. 국내 정치 문제로는 원수처럼 미워하며 싸우던 그들이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한국 대통령에게 아부해서 국익을 챙기는 데는 하나가 된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따지면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모든 인간이, 심지어 신자가 되어서도 그 정도만 다를뿐 돈을 우선시하는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반면에 한국은 사건 하나하나, 정치가의 발언 하나하나, 심지어 단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이성에 따른 합리적 객관적 중립적으로 분석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 편이냐 아니냐부터 먼저 가른 후에 시종일관 감정적으로 반응합니다. 시중 잡배들의 싸움에도 감정이 앞선 자는 이성적으로 차분히 대하는 자에게 백전백패합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외교 통상은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지금 미국을 두둔하는 반면에 한국을 비판하려는 뜻은 전혀 없습니다. 미국 시민권자로 삼십 년이나 미국에 살고 있어도 날이 갈수록 저의 속사람은 더 한국인입니다. 외국에 나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는 법입니다. 친미(親美)를 하자 반미(反美)를 하자는 단순한 뜻이 아니라, 미국을 제대로 아는 지미(知美)를 해야만 미국을 극복할 수 있는 극미(克美)를 넘어서 미국에 이기는 승미(勝美)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4/29/2023)


master

2023.04.29 05:39:22
*.115.238.98

그동안 목사가 세상사를, 그것도 미국에 관한 문제를 논하는 것이 은혜가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이 사이트에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마침 오늘 아침에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에 관해 질문 받았고, 또 많은 청년들이 미국을 너무 단순하게 아전인수격으로 대하는 것 같아서 정말로 오랜만에 글을 써서 올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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