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뜻청님 아주 오랜만인데 안타까운 소식을 주셨네요. 구체적인 내용을 몰라서 구체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렵네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진리 하나는, 하나님은 언제 어떤 경우에도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신자의 장래의 진정한 유익을 위해서 종합적 장기적으로 완벽하게 그 삶을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신자로선 그런 완벽한 뜻과 섭리를 나중에 (대체로 사태가 완결되고도 한참 뒤에야) 구체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르고 넘어갈 때도 많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연약한 인간적 본성에 따라 현실이 너무 어려우면 허탈해지면서 하나님을 의심 원망하다 못해 미워지고 이럴 바엔 믿음도 버릴까라는 생각까지 스쳐지나갑니다. 기도도 말씀도 전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뾰족한 방안이 없습니다. 당분간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영적인 교제도 마찬가지 아니 더 우선적으로, 조용히 마음을 멍 때리듯이 완전히 쉬게 해야 합니다. 사는 곳에서도 떨어져 멀리 여행 가시는 것도 좋습니다. 성령님이 회복시켜 주시리라는 소망은 버리지 마시고서 말입니다. 요컨대 영적인 문제도 신자 안에 신자의 사정을 훤히 알고 계시는 성령님이 내주 보호 인도하고 계시므로 때로는 시간이 최고의 해결책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현실적 문제도 완전히 거리를 두고 제 삼자적인 객관적 차원에서 바라봐야만 정확한 분석 판단 수정 결단이 가능해집니다. )
제가 당장의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혹시라도 성경을 읽어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시편, 그중에서도 다윗의 한탄시를 다시 깊이 묵상해보십시오.
하뜻청님 아주 오랜만인데 안타까운 소식을 주셨네요. 구체적인 내용을 몰라서 구체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렵네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진리 하나는, 하나님은 언제 어떤 경우에도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신자의 장래의 진정한 유익을 위해서 종합적 장기적으로 완벽하게 그 삶을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신자로선 그런 완벽한 뜻과 섭리를 나중에 (대체로 사태가 완결되고도 한참 뒤에야) 구체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르고 넘어갈 때도 많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연약한 인간적 본성에 따라 현실이 너무 어려우면 허탈해지면서 하나님을 의심 원망하다 못해 미워지고 이럴 바엔 믿음도 버릴까라는 생각까지 스쳐지나갑니다. 기도도 말씀도 전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뾰족한 방안이 없습니다. 당분간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영적인 교제도 마찬가지 아니 더 우선적으로, 조용히 마음을 멍 때리듯이 완전히 쉬게 해야 합니다. 사는 곳에서도 떨어져 멀리 여행 가시는 것도 좋습니다. 성령님이 회복시켜 주시리라는 소망은 버리지 마시고서 말입니다. 요컨대 영적인 문제도 신자 안에 신자의 사정을 훤히 알고 계시는 성령님이 내주 보호 인도하고 계시므로 때로는 시간이 최고의 해결책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현실적 문제도 완전히 거리를 두고 제 삼자적인 객관적 차원에서 바라봐야만 정확한 분석 판단 수정 결단이 가능해집니다. )
제가 당장의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혹시라도 성경을 읽어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시편, 그중에서도 다윗의 한탄시를 다시 깊이 묵상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