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청년이고 싶은 할아버지
지난 주일날 오후에 저희 홈피의 유상코너를 맡고 계신 김유상 집사께서 동부인하여 저희 집을 방문했습니다. 작년 연말에 서로 바빠 뵙지 못하다 새해도 되어 차나 한 잔 하려 들린 것입니다. 들고 온 선물을 보고 제가 질겁하고서 불평을 쏟아내었습니다. 사진에 보다시피 유과와 강정 세트인데다 그것도 분홍 보자기에 싸서 갖고 왔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나 선물하는 것을 왜 내게 가져왔느냐고 농담반 진담반 면박을 주었습니다. 집사님은 손녀가 둘이나 있으면 할아버지가 맞는데 왜 불만이냐고 반박했습니다. 실은 분홍보따리를 들고 오면서 스스로도 조금 격에 안 맞는(?) 선물이라고 여겼는지 마치 처갓집에 오는 것 같다고 지레 너스레를 떨어놓고선 말입니다. 저는 아무리 맞는 말이긴 해도 막상 기분은 안 좋다고 떼를 썼습니다.
나이 들어 늙어가면서 주위 사람의 대우에 반응하는 모습은 둘일 것입니다. 아직도 창창한데 할아버지로 부르지 말라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 속하는 편인데 가능한 젊게 살려 노력, 아니 발버둥치는 타입입니다. 반대로 아저씨라 부르면 할아버지에게 버릇없게 군다고 야단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이 값대로 대접 받으려는 타입인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지금은 이 부류는 많이 줄었을 것입니다.
물론 젊게 사는 길만 좋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늙어감에 순응하면서 자기 나이에 걸맞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인생을 계수하는 지혜를 갖고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면서 상식적이고도 합리적인 정도(正道)대로 따라야 할 것입니다. 나이에 비해 너무 젊은 척, 반대로 아주 노숙한 척 할 필요도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신자로서 과함이나 부족이 없으려면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그래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엡4:7) 그래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롬12:3) 할 것입니다. 내 육신의 상태를 비롯해 현재 내가 처한 상황과 소유하고 있는 것과 겪고 있는 일 등등, 모두가 하나님이 나에게 최선으로 마련해주셨음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살아야할 것입니다.
한담을 마치고 가려는 집사님 부부를 배웅하려 일어서는 순간 아뿔싸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여여~~” 비명을 지르면서 일어난 것입니다. 집사님이 곧바로 “할베가 맞네! 괜히 할베 아닌 척 하면서 선물 잘못 갖고 왔다고 야단만 치고 말이야!”라고 먼저 당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주었습니다. 저로선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제 마음은 20대 청년이라도 몸은 속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앉았다 일어서려는 순간 자동적으로 비명을 질러야 제대로 일어설 수 있는 것이 그 확실한 증거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저는 영원히 아저씨이고 싶습니다. 유과와 강정이 비록 설날에 먹는 전통음식이긴 해도 아직은 그런 선물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육신적으로 계속 강건해야겠다는 것은 헛된 욕심이기에 벌써 포기했습니다. 오래 전에 큰 병을 앓은 후로는 제 몸을 아주 조심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바울의 고백대로 겉은 후패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 속은 나이가 들수록 얼마든지 젊어질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또 이것이 바로 신자가 믿음의 분량대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사는 참 모습일 것입니다.
그날 제게 한 가지 소원이 더 생겼습니다. 일어날 때에 제 육신이 나이에 걸맞은 비명을 자동으로 지르듯이, 제 영혼의 젊은 나이도 겉으로 자동으로 비춰 나오길 원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그래서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6:9,10)로 살고 싶습니다. “사망은 제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다른 이 안에서 한다면”(고후4:12)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이 행하실 몫이며 저로선 말씀을 맡은 자로써 충성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 유과 선물이 결과적으로 정초부터 저에게 귀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제가 집사님을 야단 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집사님의 선물을 통해 “제발 네 주제를 알라!”고 야단 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바로 그 자리에 제대로 서있기만 해도 온전히 충성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바꿔 말해 분에 넘치는 생각은 아예 지우는 것이 충성의 첫 걸음이자 전부라고 말입니다.
1/10/2014
김유상 집사님의 부인 카렌 집사가 손수 빚은 것입니다.
저희 집을 방문할 때마다 직접 만든 케이크, 쿠키, 음식 등을 가져다주십니다.
그 정성과 사랑이 대단해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카렌 집사야 말로 윗글에서 말한
다른 이에게 주님의 생명이 역사하도록 하는
충성된 종의 표본일 것입니다.
저도 구태여 멀리 갈 것 없이
카렌 집사를 닮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