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7장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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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룩한 것
2. 개
3. 너희 진주
4. 돼지
5. 발로 밟고
6.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개나 돼지는 거룩한 것과 진주의 가치를
모른다는 전제에서
복음을 지혜롭게 전하라는 뜻으로
나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1~5절과 6절의 연관성?
예수님의 이 말씀을 당시 제자들이
이해를 하였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깁니다
마태복음의 예수님 산상수훈 기사(5:1-7:29)는 "신자가 천국 시민답게 거룩하게 사는 방안"이라는 전체 주제 아래, 여러 소주제로 나눠집니다. 그리고 마태가 예수님의 전체 강화를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며 핵심 되는 내용만 정리해서 기록했다고 봅니다.
따라서 1-5절과 6절은 서로 다른 소주제에 대한 말씀이므로 굳이 연결해서 묵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이 홈페이지를 통해서 여러 번 강조했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한 문단을 구분하는 작은 동그라미가 그 문단이 시작되는 부분에 있습니다. 본문의 전후를 살피면 마7:1(동그라미는 없어도 장이 바뀌므로 다른 문단임)과 7:6과 7:7에 각기 붙어 있습니다. 각기 세 가지 다른 주제의 이야기라는 표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홈피에서 제가 계속 강조했듯이, 예수님의 비유는 당시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사물이나 사안에다 빗대기 때문에 당시 청자인 제자들은 오히려 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청지기, 돌아온 탕자,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 등은 오히려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현대의 성경독자들이 그 뜻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말하자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한국속담은 한국 사람만이, 그것도 그 속담이 만들어질 당시의 옛날 사람들은 듣는 순간 무슨 뜻인지 쉽게 알지만, 다른 나라 사람은 한국의 자라와 솥뚜껑에 대한 추가적인 지식이 있어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모든 비유들도 당시 제자들로선 쉽게 그 뜻을 알 수 있었으나 현대 독자들은 당시의 문화 사회 경제 정치 종교적 상황에 대한 추가적인 지식이 있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예수님의 비유들도 당시의 청지기 역할, 상속 관습, 사마리아 인의 신분 등에 관해서 추가로 더 자세히 배워야만 정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7:6은 복음을, 문맥에선 예수님이 지금 가르치고 있는 산상수훈을, 지혜롭게 전하라는 뜻으로 이해하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시 제자들도 충분히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이 구절을 복음을 이단에게 전하지 말라고 적용했습니다. 굳이 앞의 1-5절과 연결시킨다면 복음을 전할 때에 대놓고 무조건 반대 비판하는 자를 만나면 개나 돼지에게 귀중한 것을 주어선 안 된다고 여기라는 뜻으로 적용하면 될 것입니다. 한국에도 상기의 7:6의 말씀과 그 의미가 비슷한 속담이 있는데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인데 누가 들어도 그 뜻을 알 수 있고, 옛날 사람들은 더더욱 쉽게 그 의미를 이해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