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은 왜 한번 잘못한건데 왜 용서받지 못한건가요? 왕까지 뺏으실정도로 다윗은 부하의 아내를 간음했는데 왕의 자리는 지켜주셨는데
성탐자님이 더 보탤 것이 없을 정도로 정답을 다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다시 간단히 정리하자면 사울과 다윗 둘 다 죄를 지었으나(모든 사람들의 죄는 도토리 키재기임), 사울은 사람들 눈치를 보며 자신의 형통만 도모하면서 한 번도 하나님을 순전히 믿은 적이 없고 죄를 지어도 전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매사에 기도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며 헌신했고 죄를 지으면 즉시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무엇보다 사울은 사람들이 전쟁을 잘 치룰 왕으로 택했고, 다윗은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맡기고자 하나님이 택하여 세운 왕입니다.
우선 사울의 잘못은 단 한 번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반복적으로 하나님의 위상보다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급급했습니다.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에서 신의 대리자인 예언자 사무엘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왕인 자신이 드렸으며, 이에 실망하고 가려는 사무엘에게 "백성들앞에 자신의 체면을 살려달라"면서 같이 가는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이후 자신의 가문에서 왕위가 끊기고 다윗가문에서 왕위가 이어질 것을 알고도 끊임없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딸 미갈마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다윗과 결혼시키기까지 했습니다.
다윗은 그를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살려주었고 이를 알고 눈물로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였지만 다시금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시 야훼신앙을 국교로 둔 이스라엘에서 해서는 안되는 짓인, 무당을 통해 사무엘의 영혼과 접견하려했습니다ㅡ 이는 하나님이 가장 가중스러워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끝내 회개를 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진정 거듭난 신자는 자살을 택할 리 없다는 것은 박목사님께서 여러차례 적으셨으니 이에 대한 의문증은 그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사울은 왕위로 세워졌을 때부터 죽기까지 한 번이 아니라 많은 잘못을 했으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그것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아닙니다ㅡ
다만 이와 별개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비춰보거나,혹은 내 신앙을 돌아보면 사울을 쉽게 비난하는 사람들도 믿음이 깊어보이지는 않습니다. 일전에 박목사님께서 스스로 "저 스스로를 돌아보면 사울왕만도 못한 천하의 비겁한 신앙인"이라고 적으셨는데 묵상이 매일 깊어지고 기도하고 하루하루 신앙인으로 살수록 박목사님의 저 고백이 얼마나 진실되면서도 담백한 고백인지 깨닫게 되고 저 역시 저 고백을 하게 됩니다.
사울왕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인데,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청동기 문명이었습니다ㅡ 이에 반해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블레셋 민족들은 '철기문명'으로 기술적으로 우세일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청동기 시절 대부분의 국가는 제정일치 과도기로서 종교세력과 정치세력이 연합하여 국가권력을 이루는 시기입니다. 거기다가 성경의 내용으로 유추해보면 사무엘의 권위가 사울왕의 권위보다 강하다는 것은 아직 종교의 힘을 담당하는 세력이 정치를 담당하는 왕가보다 세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정일치 사회에사 한 걸음 더 나아간 연맹국가 수준인 고대국가 부여에서조차도, 흉년이 들면 왕에게 그 책임을 물어 왕을 죽이는 사례가 있을 정도인데 당시 이스라엘 국가의 정치적 상황에서 사울왕의 권위는 전쟁 하에서는 바람 앞의 촛불이었을겁니다. 종교세력의 지도자인 사무엘이 늦는 상황에서, 왕가의 왕권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병사들의 동요가 일어나면 한 순간 살해당할 수 있을 위협에 인간적인 불안감에 자기가 대신 제사를 지냈을 겁니다. 그리고 뒤늦게 온 사무엘에게도 자신의 체면을 차려달라는 것도 진짜로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약한 왕권'때문에 한 행동이겠지요.
저 역시 사울의 당시 정치 종교적 권력알력 상황에서 사울처럼 행동하지 않겠다고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