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 성공한 크리스천들이 하는 고백들 중에서 자신이 이룬 성공이나 성취가 모두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운동선수를 예를 들면 운동선수가 타고난 육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노력을 많이 했으나 성취를 이루는 것에는 하나님의 허락 또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까요?
질문 2. 의미 없는 질문일 수 있으나 궁금해 질문드립니다. 바울이나 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쳤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천국이라는 두 번째 삶이 없었다면 그들이 본인들의 삶을 다 바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만약 천국이 없고 지옥만 있고 구원이 정죄없는 소멸이라면 창조주에 대한 경외와 지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들의 삶을 다 헌신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하나님이 구원을 천국과 영생이 아닌 정죄없는 소멸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의 신앙은 달라질까요? 정죄없는 소멸이 구원인 것과 영생과 천국이 구원인 것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성탐자님이 친절하게도 정답을 자세히 달아주셨네요. 제가 조금 알기 쉽게 정리해서 보태자면,
질문 1.
아무리 천재라도 에디슨의 말처럼 태생적 재능(하나님이 주신 능력) 외에 후천적 노력(본인 훈련의 열매)이, 각각의 비율은 따질 것 없이,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항상 강조하듯이 하나님은 신자가 자유의지대로 행하도록 허락하고도 아무런 상충 모순 없이 당신의 거룩한 뜻을 다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재물을 얻을 능을 주시나"(신8:18), 그 결과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잠16:9, 약4:13-17)
말하자면 하나님의 전능성(全能性, Omnipotence)은 반드시 전지성(全知性, Omniscience)과 함께 작동된다는 뜻입니다. 지금이라도 죄악으로 타락한 이 땅과 인간들을 당신의 능력으로는 멸절시키는 심판을 내릴 수 있고 내려야 마땅하나, 인간 죄인들의 사정을 더 잘 아시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하시려는 긍휼로 보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물론, 특별히 신자는 평생토록 삶의 모든 차원에서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그분의 은혜(자격이 전혀 없는데도 선한 것을 공짜로 주심)에 붙들려 사는 것입니다. 아마도 신학 용어의 의미와 용례를 정확히 몰라서 그냥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반만 맞는 표현인 셈입니다.)
질문 2.
성탐자님의 설명으로 충분하지만., "만약 천국이 없고 지옥만 있고 구원이 정죄없는 소멸이라면" 필연적으로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겠지요. 우선 지옥이 두려워서 평생토록 구원의 확신 없이 벌벌 떨며 살아가거나, 다른 한 편 굳이 구원받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헌신을 덜하겠지요, 어리석으면서도 영악한 인간은 천국이 없다면 지옥도 없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지레 짐작하고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천국 부활이 있는 것이 절대적 진리이므로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고, 인간의 본성에 비추면 불합리한 가정에 불과합니다. 사탄에 미혹된 모든 인간은 지금처럼 성경에 천국과 지옥을 정확히 계시되어 있어도, 나아가 예수님의 낙원에 간 거지 나사로의 비유처럼(눅16:19-31)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증언해도 믿지 않습니다. 오직 진정으로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깨달아서 그분을 자신의 온전한 주인으로 모셔야만 부활신앙도 온전히 가질 수 있고, 나아가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 헌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우선 타고난 dna부터가 축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정하는 불편한 진실이, 그 사람의 성취에 있어서 많은 부분이 dna로 결정난다는 겁니다. 의사집안이나 법조인 집안이 많이 보이는 것이 그런 것이죠. 운동을 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같은 운동량을 해도 근육성장이 월등하고요. 각 사람에 맞는 다양한 재능이 다르다는 것은 결국 dna얘기입니다. 하다못해, '노력을 할 수 있는 성격'조차 dna입니다. 누군가는 그걸 아무리 훈련해도 못버티니까요.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것에 '타고난 dna'에 대한 감사가 있고요. 물론 dna '만이'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일이 풀리는 과정에서의 감사함에 대한 고백도 있죠.
답은 그래서 ' 두 가지 전부'입니다. 타고난 부분과 그것이 잘 풀리게 하는 상황에 대한 것들. 그래서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2. 천국이라는 두 번째 삶이 없으면 그렇게 불태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정확히는 '부활신앙'입니다. 부활신앙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핵심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없는 학자들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체험'을 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로 믿습니다만 비기독교인인 그들은 인간이 부활했다는 비과학적인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조차도 인정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가 사망한 직후에는 겁을 먹고 뿔뿔이 도망갔지만 어떠한 시점이후로 갑자기 홀린듯이 겁을 먹지않고 목숨을 걸고 전도를 하다 죽었다"
라는 사실입니다. 그들 입장에서 '부활'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제자들이 예수 사후 어떤 일을 분명 경험했고 그 이후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되었다'라는 사실입니다. 부활을 과학적입장에서 인정할 수는 없으니 '부활체험을 했다'라고 표현한 겁니다.
예수님과 직접적 교류가 없던 사도바울도 같은 맥락입니다. 성경이 의하면 그는 '영적체험'을 하고 180도 삶이 달라졌습니다.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도 이를 동일하게 '사도 바울은 삶의 태도가 전환된 큰 사건을 경험하였고 그 뒤로 돌변하였다' 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비신자들 조차 당시의 제자와 사도들이 죽음을 불사하게 된 터닝포인트로 '부활체험'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보여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요. 부활신앙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교를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부활을 빼고 말씀하신다면 우리의 신앙은 확연히 달라질 겁니다. 부활은 그리스도교의 핵심교리이기 때문에 말씀하신 '정죄없는 소멸'을 기치로 내세웠다면 그리스도교는 결코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