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님께서 선택해서 구원을 허락하신다면,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며 하나님의 공평하심은 어디에 있으며, 나중에 심판대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어떻게 공평하게 심판하실 수 있습니까?

[답변]


기독교의 예정론에 따르면 항상 누구는 구원을 받고 누구는 선택을 못 받게 되는 결과가 필연적으로 생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선택의 기준이 인간의 선행과 공로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라는 데 있습니다. 특별히 나아 보일 것 없는 사람, 심지어 죄를 많이 짓고 더 나빠 보이는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로만 선택을 받으니 그 선택의 기준이 너무 일방적이고 불공평해 보입니다. 선택 받지 못했지만 더 선해 보이는 사람은 어떻게 되며 하나님은 불공평한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게 됩니다.

이것은 기독교 구원의 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참으로 풀기 힘든 과제입니다. 그래서 먼저 십자가 복음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광범위한 내용을 줄여서 가능한 간단하게 설명한 것이므로 찬찬히 생각하면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1.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모두가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누구는 더 선해 보이고 누구는 더 악해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판단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면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죄인입니다. 간단하게 예증하면 어떤 사람은 거짓말은 생전 안 해도 성적(性的)으로 깨끗하지 않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성적으로는 깨끗해도 금전적으로는 부정한 자가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를 믿고 교회에 성실히 출석하는 사람마저 그렇습니다. 죽을 때까지 매일 많은 죄를 알게 모르게 짓습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신앙이 깊어지고 혹은 불신자라도 인격을 잘 가다듬어가면 죄를 적게 지을 수 있지만 여전히 죄는 짓습니다. 또 행동과 말로 짓는 죄는 현저히 줄어들 수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시기, 분노, 음란, 살인 등 죄를 짓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형제를 바보라 해도 살인한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 가 있는 자들은 아무도 자기들이 감옥 밖에 있는 자보다 더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들 성격이 조금 급했거나 돈이 없어 억울하게 당한 것이라고 합니다. 감옥 밖에 있는 자들은 교양과 매너로 치장했을 뿐이지 더 교묘하고 치사한 죄를 많이 짓습니다. 죄에서 자유로울 자는 예수님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구원이란 인간을 죄에서 건져 내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죽어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절대적 선이요 완전한 사랑이므로 더럽고 추하고 악한 어떤 것과도 절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연인 상태 그대로 죽으면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 앞에 아무도 제대로 설 자 없습니다. 바로 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혹시라도 이 땅에서 선하게 산 사람이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하시겠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 보아 상대적으로 덜 악하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인격자라고 칭찬을 받는 그 사람 본인의 내면의 상태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으며 그런 사람이라고 해서 공개적으로는 아니라도 개인적으로 죄를 안 짓는다고 아무도 보장 못합니다.  

나아가 이 땅에서 자기가 지은 죄를 다 회개할 수 없으며 선행으로 다 씻고 갈 수도 없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6시간을 회개해서 이제 자기가 지은 죄를 다 용서 받았으니  천국 갈 수 있겠구나 자신하고 일어서는 순간 다시 예전에 지은 더 큰 죄가 생각났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그 회개를 받아주는 수도원장이 네 엄마를 죽인 죄가 아닌 이상 그만큼 회개했으면 천국 갈 것이라고까지 말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자기가 용서 받았고 천국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또 우리가 짓는 죄가 하루에 하나밖에 안 된다고 해도 60년이면 21,900 번인데 평생에 선행을 그만큼 많이 해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지울 수 있겠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인간의 노력으로는 자기를 절대 의롭게 하지 못합니다. 도덕, 사상, 철학, 종교, 심지어 기독교를 믿기로 결심했다고 의로워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성자라도 자기 공적으로 천국에 들어갈 자 아무도 없으며 하나님 앞에선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윤리적으로만 따져도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하나님을 먼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진정으로 사랑하며 그 분께 기꺼이 자기의 전 존재와 모든 삶을 내어 드리는 자라야 천국에서 살 자격이 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모든 인간이 똑 같이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다면 구원 받을 수 있는 기준으로 따지자면 이 부분이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근본적 의미는 “과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살아야만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죄입니다. 단순히 어떤 절대자의 존재를 믿고 그 분께 복을 비는 것으로는 하나님 품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뜻대로 성결하게 살되 그 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 참 인간답게 살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쫓아 나타났나니…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것에 마음이 어두워진”(롬1:18,21) 것이 인간의 상태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9-12)

2. 하나님의 구원의 방도

공평성이 문제가 되지 않으려면 항상 상벌을 받는 대상의 상태도 객관적으로 보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하면 일등, 이등, 삼등이 분명히 정해지니까 그에 따라 금, 은, 동 메달을 차별해 준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불공평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모든 사람의 상태가 동일한 데 상을 차별해서 주면 그것은 불공평한 것이 됩니다.

앞에서 살펴 본대로 모든 인간의 상태가 똑 같이 점수로 치면 제로입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방법은 두 가지 뿐입니다. 모두 벌을 주던지 모두 사면하던지 해야 합니다. 모두 벌을 주려면 단 한 사람도 천국 가지 못하고 전부 지옥가야 합니다. 아니면 지금 당장 죽여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지 않은 것이 차라리 나을 뻔 했습니다. 지구와 인간을 만든 것은 하나님에게는 너무나 사치스런  낭비이거나 그저 심심풀이로 만들어 본 희롱거리 밖에 안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사면해 주면 어떤 현상이 발생합니까? 인간이 죄를 아무리 지어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심지어 저주해도 그대로 방치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소극적으로 허락만 했든 이 땅과 인간을 죄악과 배도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책임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럼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죄는 벌하시되 죄인은 살려 주는 것입니다. 그 죄도 단순하게 벌해선 안 됩니다. 한두 번 말로 훈계한 후에 사면해선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란 존재를 알고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오히려 우상을 섬겨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배반한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게 해주고 사면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 되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우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구원해 주십니다. 그 믿음의 의미는 당연히 “저는 하나님을 외면한 죽을 수 밖에 없던 죄인이었으며 윤리적 면에서도 인간의 공적으로는 절대 그 죄를 없앨 수 없음을 확신하며 예수님의 그 대속의 죽음 외의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예수님이 가르치는 대로 선하게 살겠다는 결심은 믿음이 아닙니다. 자기가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분의 자녀가 되었고 이제는 이전의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상태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헌신과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삶으로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3. 영생의 의미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다고 할 때에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국과 지옥이라는 상벌을 예수를 믿었는가 아닌가에 기준해서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엄격히 따져 틀린 이야기입니다. 그런 정도로만 이해하면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에 대해 타 종교나 일반인들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해 놓고 “자 누가 믿는가 안 믿는가 보자 믿으면 착하니까 천국 보내고 안 믿으면 괘씸하니까 지옥 보내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었는가 아닌가가 인간 심사의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인간을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공평한 심사로 테스트해 보면 그 성적표는 하나같이 점수로 치면 제로였고 그 대가는 죽음이라는 형벌밖에 없었습니다. 의인과 악인을 구별해 상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죄인과 의인으로 나누는 구분이 아니라 죄인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원한 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는 한 마디로 “나는 하나님이 지금 당장 죽여도 아무 할 말이 없는 죄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 용서만 바랄 뿐입니다”라는 뜻입니다. 나 같은 천하의 죄인, 죄인 중의 괴수조차 사랑하셔서 “나 대신에” (나를 위하여가 아니라) 독생자를 죽이심으로 내게 새 생명을 허락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나야말로 천하의 죄인이라는 처절한 깨달음이 구원의 출발이며 이 출발이 있어야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의 뜻과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신자가  진정으로 예수를 영접하면 그것으로 이미 구원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신자가 받을 상이 따로 없습니다. 만약 예수 믿고 안 믿은 것이 심사 기준이 되면 상벌도 예수 믿은 이후에 따로 더 붙여서 따라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믿은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상을 받은 것입니다. 불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들이지 않은 것 그 자체로 이미 벌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7-19)

예수님은 분명히 당신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 죽음을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므로 이미 구원 받은 것입니다. 대신에 믿지 아니하는 자는 따로 정죄나 심판이 없고 그 믿지 않는 것으로 이미 심판이 완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빛보다 어둠이 더 좋아 어둠에 계속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생을 정의하기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는다고 하지 않고 예수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받아 들인 자는 영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 땅에서부터 예수를 아는 순간 이미 심판이 면제되고 구원이 확보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다는 정확한 의미는 지금 당장 죽어도 천국 갈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을 가게 된 것은 “내가 기독교를 택하고 예수를 믿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내 대신에 십자가에 죽이셨다는 것” 때문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기독교가 죽은 후에 심판을 받는 다른 종교와 가장 다른 점이자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4. 신자의 심판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하나님이 선택해서 구원하면 나중에 심판대에서 어떻게 공평하게 심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은 답변이 이미 된 셈입니다. 하나님이 선한 인간 악한 인간의 구분도 없이, 나아가 예수를 믿기도 전에 주권적으로 미리 선택해 버리면 심판대에서 심사해서 상벌을 줄 기준과 근거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 질문자가 갖는 의문의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 말씀 드린 대로 인간의 성적표는 모두 제로였습니다. 따로 심판할 기준이 필요 없습니다. 대신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항복하여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기 때문에 그 관계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되니까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불신자의 경우는 그 반대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미 살아서 요3:17에서 보듯이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신자는 영생을 확보했기에 죽은 후에 따로 심사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맛 본자라야만 죽은 후 천국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선 죽기 직전이라도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모든 종교, 인종, 사상의 벽을 넘어 전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단 죽고 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영원한 운명을 되돌이킬 수는 전혀  없습니다. 따로 심판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된 자라야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가 가능하며 인간의 의로는 도저히 깨끗해지지 않으므로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게 된 자 만이 하나님 앞에 가도 소멸되지 않고 공존이 가능합니다. 반면에 불신자는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해 본 적도 없고 죄의 용서함을 받은 확신도 없으므로 죽은 후도 그런 상태가 계속되는 것 입니다.    

그럼 성경에서 말하는 심판대는 무슨 뜻입니까? 마지막 심판 날에 모든 죽은 신자와 불신자들과 또 그 때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을 부활과 영원한 심판으로 나누는 심판대입니다. 이 땅에서 진정으로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신자라면 죽어서 심판을 따로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이 땅에서 성도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하나님의 일에 얼마나 많이 헌신했는가에만 달라질 따름입니다. 선택에 의한 구원이라고 해서 심판대에서 불공평해질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5. 예정의 공평성

그렇지만 여전히 가장 큰 의문은 풀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예정으로 구원하면 선택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 것이며 누구는 구원해주고 누구는 구원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불공평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두가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면 더 그렇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결국 이 문제도 그 질문의 성격상 십자가 복음의 문제로 다시 되돌아갑니다. 인간 쪽에서 보면 불합리해 보일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 쪽에서 보면 죄인인 인간을 다 죽이느냐 다 살리느냐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으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예정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이 없으면 전부다 죽이거나 구해야 합니다. 다 죽일 수는 없고 다 살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다시 창세기의 선악과 문제로 돌아갑니다. 처음부터 모두 선한 자로 만들고 타락도 없어야 하며 이 세상에 악도 없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전혀 자유의지가 허용되지 않고 모두 하나님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존재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차라리 인간을 기계나 동물로 만들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예정이 없으면 인간이 구원을 선택하거나 인간의 공적으로 구원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기 공적으로 의로와질 수도 없습니다. 나아가 인간은 무슨 수를 써도 스스로 자신과 이 세상의 주인 노릇 하려 들기 때문에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조차 참아 넘기지 못합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없다면 인간의 구원은 근본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혹시라도 다른 종교나 일반인들이 생각하듯이 인간이 죽고 난 후에 하나님이 인간의 선행을 심사해서 구원할 자 구원하고 심판할 자 심판하면 공평할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만큼 순진한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커트라인의 문제가 생깁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 거짓말 평생에 200번 한 사람을 기준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그 운명을 결정짓는다면 매일 밥 먹듯이 한 사람은 별로 억울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거짓말 201,202, 203번 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들과 198, 199, 200번 한 사람들 사이에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져야 할 만큼 큰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이때야 말로 하나님은 불공평한 하나님이 됩니다.  

나아가 모든 인간의 점수가 제로인데 하나님이 혹시라도 모두 구원하지 않고 심판만 내렸더라면 인류는 과연 어떡할 뻔 했습니까? 지금 세상이 돌아 가는 형편을 보면 과연 하나님에게 나는 구원 받을 자격이 있소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 땅에 지금 당장이라도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을 내려 다 멸망시켜도 하나님의 공평성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다 죽여도 불공평하지 않다면 그 가운데서 단 한명이라도 구원되면 이미 공평성의 문제를  떠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여러 명이 바닷물에 빠져 죽어 가는데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었다면 그 사람이 구조원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오직 그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왜 안 건져 주었습니까라고 따지거나 불평할 수 없습니다. 대신에 구조 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볼 때에 너무나 안타깝고 불쌍히 여겨질 뿐입니다. 선택 받을 자가 있고 그렇지 못할 자가 있는 것이 불공평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일부러 강제로 죄악을 짓게 하고 멸망으로 밀어 넣은 후에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 전부 살려달라고 고함 쳤는데도 구조원이 힘이 달려 다 못 구해준 경우와도 전혀 다릅니다. 인간들 스스로 어둠이 좋아 그곳으로 들어갔고 끝까지 완악하고 교만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거부한 것 뿐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다 심판의 자리에 밀어 넣어 놓은 후에 순전히 자기 임의로만 선택을 했다면 무슨 말로 변호 했던 그 하나님은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좋아서 지옥의 불 못으로 뛰어든 것을 오히려 오직 그 분만의 주권적 선택과 간섭으로 구해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실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근거는 엄격하게 따져 예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인류를 죄에서 건질 수가 없습니다. 오직 그 분의 피로만 우리 죄를 사할 수 있습니다. 천국 갈 때에 예수님의 보혈의 필터를 통과한 자만이 하나님과 공존이 가능하게 됩니다. 신자는 예정에 의해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구원 받은 것입니다. 십자가가 있으니까 예정이 가능하며 바로 그래서 예정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란 구원 받은 자의 입장에서 자기의 구원 받은 과정을 되돌아 볼 때 자기 쪽에  도저히 구원 받을 만한 구실이나 근거가 단 한 치도 없었음을 구원 받은 후에야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노예 상인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존 뉴튼이 찬양한 대로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 은혜가 놀라울 따름(Amazing Grace)”입니다. 초대 교회의 가장 큰 대적으로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려고 다녔던 바울도 다메섹에서 주님의 은혜로 구원 받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엡1:4,5)고 밖에는 고백할 수 없습니다.

뉴톤이나 바울같이 거듭난 신자에게는 하나님이 자기를 선택해 주셨다는 것 말고는 그 구원을 설명할 재간이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정이자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실 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며,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기 (엡1:10, 22, 2:7)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택으로 탈락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아니 전부 다 구원하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며 십자가 상의 사형수 강도도 아무 공로 없으나 그 자리에서 용서하셨습니다.

선택과 예정이 아니면 하나님 쪽에서 본다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방도는 하나 뿐입니다. 인간을 심사해서 구원해야 하는데 그러면 뽑힌 자들은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스스로의 자랑이 됩니다. 대학 입학 시험에 걸린 자가 점수만 매긴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 봤습니까? 자기 실력이 좋아 당연히 합격한 것으로 알고 주위에 자랑하러 다니기 바쁩니다. 인간의 공로로 구원 받으면 하나님은 이 땅의 삶에 아무런 사랑의 간섭을 하지 않다가 죽은 후에 채점관의 역할 밖에 한 것이 없습니다. 예정이 아닌 구원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최소한 남들보다 의로웠기 때문에 시험 쳐서 하나님의 기준에 합격하겠다는 너무나도 건방지고 어리석고 무지한 교만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상대적인 인간의 입장에선 제대로 이해 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이 나타난 십자가의 은혜로 보아야만 그 신비가 벗겨집니다. 또  그 은혜에 완전히 들어 온 자에게는  그만한 은혜가 더 이상 없는 것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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