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질문]

목사님들이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 순종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 전인격적으로(지정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의 이해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과 예정으로 죽을 수 밖에 없었든 죄인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죄인이, 하나님을 몰랐든 죄인이, 하나님을 부인하든 죄인이, 성령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찾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영접하게 되어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스스로(자기가, 인간이) 영접하고, 믿고, 순종하고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인간이 믿고 순종해서 영접을 해야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성령님(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구원을 허락하시는 것인가요? 만약, 하나님께서 선택해서 구원을 허락하시면 왜 우리가 전도를 해야 하나요? 왜 우리가 전도할 때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라고 해야 하나요?

[답변]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에 의한 구원을 논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누구나 질문자와 동일한 세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1)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2)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이라고 하면서 왜 자꾸 믿으라고 하는가?  그 믿음과 순종의 의미는 무엇인가? 3)예정에 의한 구원이라면 구태여 우리가 전도할 필요가 있는가? 각각에 대해 나눠서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구원과 자유의지

1.1.예정에 대한 오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먼저 우리가 갖고 있는 한 두개 오해를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정이라고만 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상태와 전혀 상관 없이 독선적이고도 무조건적으로 나기 전부터 운명을 결정지어 버렸다는 식의 숙명론적 결정론(Determinism)으로만 이해하려 듭니다.

모든 인간의 자연적 상태는 단 한명의 예외 없이 죽음의 형벌로만 갚을 수 있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인 죄인입니다. 따라서 구원 받은 것은 하나님의 측량하기 어려운 사랑이라는 시각에서만 이해되는 그분의 자유롭고도 은혜로운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이 아니었더라면 영원한 멸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의 다른 표현이 예정입니다. 그 선택 안에 든 자만이 예정이 이해되고 은혜가 됩니다. 따라서 예정에 대한 신자의 올바른 반응은 피택(被擇)된 것에 대해 감사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 뿐입니다.  

또 예정을 시간적으로 예지(豫知)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구라는 한정된 시공간 안에 사는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예정에 의한 선택은 분명히 하나님이 미리 알고 선택하여 인간의 현재 상태와 무관하게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은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일을 영원한 현재의 개념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완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여의도 5.16 광장에 개미 한 마리가 동에서 서로 80년에 걸쳐 가로지르는 것이 인간의 일생이라면 63빌딩 위에서 광장 전체를 한 눈에 바라 보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개미는 앞에 언덕이 있는지 물이 흐르는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밟혀 죽을지 전혀 모릅니다. 이미 가로지른 거리는 과거로, 열심히 가고 있는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길은 현재로, 또 닥치는 미지의 길은 미래로 밖에 이해되지 않습니다. 시간적으로도 분명히 구분됩니다. 그러나 그 전체를 훤히 내려다 보는 입장에선 과거, 현재, 미래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현대 물리학에서도 시간은 관측자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를 필립 얀시가 잘 설명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착하는데 약 8분이 걸립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태양은 사실 8분 전의 태양입니다. 일출이나 일몰 모두 실제보다 8분 늦게 봅니다. 그러나 한 쪽 발은 지구에 다른 한 쪽 발은 태양에 둘 수 있을 만큼 아주 거대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면 태양을 보통 사람보다 8분 먼저 볼 수 있고 지구 또한 같은 시각에 관측이 가능합니다. 그럴 경우 그 사람에게 지금 몇 시입니까라는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거대한 사람보다 더 큰 존재입니다. 우주의 한 복판에서 우주 전체를 보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밤 하늘의 한 별이 이미 수십만 년 전 블랙홀에 흡수되어  없어졌지만 지구와 거리가 수백만 광년 떨어져 있다면 여전히 그 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이런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현재 시제로 볼 뿐입니다.          

예정을 너무 시간적 예지의 개념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도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조차 없었던 정말 여의도 광장의 개미 한 마리만도  못한 인류에게 그 분은 영원한  사랑으로 간섭하셨다는  무한한 은총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났고 그를 믿는 신자에게 베푸는 그 사랑은 이 지구상의 시간과 공간 안에 제한해 이해하려 하지말고 전 우주에 단 한 번 뿐인 은혜로 받아 들이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3:8)

2.2. 선택과 자유의지

아무리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한 구원이라고 하지만 일단 믿고 나면 분명히 내가 믿었다는 의지적 결단을 한 것으로 인식되므로 어느 정도 자신의  자유의지가 분명히 작용한 것 같습니다.

구원에서 인간의 의지가 과연 어디까지 작동했는가에 대해 신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갑과 을 둘 다 하나님 앞에 죄인인데 갑은 구원 받았고 을은 못 받았다 가정합시다. 이 때 갑과 을이 믿음으로 영접할 때에 자유 의지가 어느 정도 작용하는지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 몇 가지만 간단히 소개해보겠습니다,

- 펠라기우스주의: 갑은 믿기로 을은 거부하기로 완전히 인간의지로 결정했다.

- 반(半-Semi) 펠라기우스 주의: 갑은 믿기로 노력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지만 을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 아우구스티누스: 갑은 예정되어 있는 은혜에 불가항력적(不可抗力的)이었고 을은 예정이 되어 있지 않았다.

- 아르미니우스: 갑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에 협력하였고 을은 협력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갑은 믿어서 선택을 받았고 을은 믿지 않아 버림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되 믿음은 불가항력적이 아니고 인간이 여기에 대해 준비할 수 있으며 믿는 자도 타락할 수 있다.  

- 루터: 갑과 을 두 사람 다 하나님의 은총에 협조할 능력이 없었다. 갑은 결국은 굴복했지만 을은 고집스럽게 은혜에 저항했다.

- 캘빈: 갑은 성령의 새로운 창조 능력으로 중생했고 을은 그렇지 못했다.

그럼 성경은 과연 이 중에서 어떤 것을 지지합니까? 질문자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요3장)는 분명히 자기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믿어 보려고 노력했고 선택했고 하나님 은혜를 거부할 리도 없었고 오히려 굴복할 준비도 되어 있었던 자입니다. 성경 전체를 보아도 니고데모 같이 의롭고 선한 자가 없었습니다. (요7:20-52, 요19:39,40 참조) 그러나 그는 성령이 인간을 거듭나게 하는 능력을 이해하지 못해 돌아 갔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예정에 들지 못했다는 것 말고는 이 사건을 설명할 재간이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두고 그 스스로 복음을 거부했거나 협조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는 성령의 거듭남에 대해 모르는 부분을 예수님에게 질문했고 또 주님은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비유하자 제자들이 그럼 도대체 누가 천국을 갈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고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인간의 노력과 상관 없이 성령의 간섭으로만 영생을 선물로 얻게 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로 부르짖느니라.”(롬8:15),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1:8)

특별히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2:11)고 했습니다. 니고데모의 경우에는 성령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그의 영혼 속에 성령이 임재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사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다  주시면 기계적 구원이 됩니다.

 

반대로 인간이 성령을 받겠다고 소원하고 마음 문만 열면 성령이 임재하게 된다면 니고데모의 경우에 예수님을 만나는 그 단계에서 구원을 받았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 성령을 받고 싶다는 생각과 소원을 하지 않을 자는 없습니다. 니고데모도 그 자리에서 예수님 말씀이 이해가 안 되어도 그런 생각을 분명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 의해 받아야 할 사람에게만 당신의 때와 방법으로 나눠줍니다. 니고데모도 나중에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그 장사를 위해 향품을 제공합니다.(요19:39) 십자가 죽음 이후에 성령님이 역사하여 그를 회심시켜 구원 받은 것으로 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즉 성령이 니고데모 본인의 소망과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방식에 따라 당신의 택한 사람 니고데모에게 임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이 성령에 의해 이뤄진다면 당연히 예정이며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1.3 성령의 원자폭탄  – 구원

그럼에도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용한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은 지정의로 인식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우리 영혼을 중생시킬지라도 우리의 영으로는 그것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 영이 바뀌면서 예수를 영접하고 믿고자 하는 의지적 결단도 일어나게 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의지가 작용되기 전에 일어난 영의 변화에 관해선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어떻게 사람이 거듭날 수 있느냐고 성령의 역사에 대해 의문을 보이자 예수님은 “네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고 대답했습니다. 혹시라도 바람 소리가 들리듯이 성령의 소리가 들리거나 오는 기척은 알고 방향만 모른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님의 비유는 바람이 임의로 불고, 사람은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도 어디까지나 그나마 인간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든 것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성령이 전적으로 역사해야만 이뤄집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동원되면 그 구원에 인간의 힘이 보태어진 것이 됩니다. 자칫하면 그 힘이 아무리 작아도 전적 은혜가 되지 않으며 선물로 주어진 것이 아니게 됩니다. 선물 받을 사람이 포장하는 마지막에 리본 다는 것도 함께 거들어 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선물을 자기의 자유의지로 받기는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선물 받은 사람이 그 선물을 받는 데 어떤 역할을 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나아가 인간끼리는 선물 받는 사람이 거부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인간이 거부할 수도 없을 뿐더러 거부할만한 사람에게 주실 하나님도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은 당연히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예정으로만 이뤄지는 것이고 또 그래야만  선물로서 온전한 가치를 갖게 됩니다.    

또 다른 오해를 마셔야 할 것은 성령의 역사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배제하고 이뤄진다고 해서 인간은 가만 있는데 하나님이 마취약을 주사해놓고 믿게 한다든지, 본인은 별 믿을 생각이 없는데 강제적 혹은 자동적으로 믿게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 조차 당신의 은혜를 수용하게 하는 통로로 간섭하십니다. 말하자면 믿고자 하는 마음이 들고 또 결심하고 영접하게 하는 것에 조차 비록 우리가 지정의로 거의 인식 못하지만  하나님은 성령의 역사로 이미 간섭하셨다는 뜻입니다.

구원과 자유의지의 상관관계를 자꾸 따지는 것은 사실은 교리적 측면에서만 의미를  가집니다. 한 개인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과정에는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로만 진행됩니다. 이 예정의 교리를 인간이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든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의 역사를 통해 구원하실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미 구원을 얻어 주님의 은혜 안에 들어 온 자에게는 이 교리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은 자는 누구라도 자기는 100%의 철저한 죄인이었기에 하나님의 전적인 100% 은혜가 없었다면 구원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내가 믿기로 영접했다고 마치 자신의 의지가 많이 작용된 것처럼  말할지라도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진정으로 본인이 100%의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를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용서 받을 수 없고 오직 십자가의 예수님의 공로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면 말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는데 동원한 자유의지는 구원을 받아 들이는 통로였지 하나님이 구원을 이뤄내는 데 힘을 보태드린 공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 분이 구원 받았는지 아닌지는 오직 하나님과 그 분과의 일대일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재삼 재사 강조합니다만 선택과 예정, 구원과 자유의지는 자신이 철저하게 100% 죄인임을 인정하여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하였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하나님이 전적으로 은혜로 간섭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일본이 이차대전 때에 미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했습니다. 그 항복한 것은 분명히 일본의 자유의지였습니다. 그러나 히로시마 원폭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절대 항복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신자는 예수를 영접하기 전에 이미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자 폭탄을 맞은 자입니다. 마치 일본이 강요된 것도 자동적으로 항복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한 것과 마찬가지로 신자도 성령의 임재 후에 자기 의지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 때에 자유의지가 얼마나 작용했는가 하는 문제가 무슨 특별한 의미를 가질까요? 또 성령의 원자 폭탄을 맞지 않은 자가 자유의지로 예수가 자기의 전 존재와 삶과 영원한 운명의 구세주로 믿어질까요? 혹시라도 기독교라는 종교체계를 공부해보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따라 살아야지 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하셔서 예정하시고 신자는 전적으로 그 크신 은혜에 반응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Sihoon

2018.08.24 01:44:14
*.34.12.134

목사님 감사합니다

종합하자면, 믿고자하는 마음또한 하나님이 그런마음을 주셔서 믿을수 있었다는 것인가요

성령의 간섭이라고 하셨는데 이 '간섭의 정도'에 대해 자꾸 의문이 생겨서요

그리고 믿기전의 사람의 마음상태에 대하여서도, 성령의 작업이 없으면,

'하나님은 물론 그의 구원을 바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전제인가용?

(그렇다는 전제하에)

 

1) 성령의 전적인 간섭: 사람은 애초에 하나님의 구원을 바랄수없고 바라는 마음도 애초에 들지 않으나

                     성령의 전적인 간섭에 의해 마음의 Re Building 작업으로 하나님을 바라게됨

2) 성령의 부분적 간섭: 사람은 애초에 하나님의 구원을 바랄수있고 바라는 마음도 애초에 들수도 있으나

                     성령의 부분적 간섭에 의해 마음의 Re Building 작업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쪽으로

                     더욱 기울게됨

쓰고나서보니 부분적 간섭은 말이 안되고 오직 전적인 간섭으로 작용하시는것 같은데 목사님께서도 언급하신

성령의 간섭은 당연히 전적인 간섭으로 성령의 전적 은혜로 저의 마음또한 믿을수 있게 된것이겠지요?

master

2018.08.24 13:57:12
*.246.122.206

인간 영혼의 전적인 타락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전적타락이 윤리적 선악을 구분 못하거나, 선은 행치 않고 오직 악만 행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스스로 찾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전적타락이기에 믿음마저 전적 은혜의 선물로 주는 성령의 전적간섭이 필요합니다. 

신자가 스스로 믿기로 결단 헌신하는 것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간섭이

신자 영혼에 이미 작용한 후에 인간의 지정의가 인식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샬롬!  

Sihoon

2018.08.24 15:21:05
*.94.111.238

답변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하나님의 구원은 당연히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함임을 인정하지만 (당연히)

믿기로 결심했을때의 최초 판단, 의지는 내가 결정했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이 결심이 드는 마음까지도 하나님께서 하셨다니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입니다.

 

이것을 깨닫기전에는, 우쭐되는 교만의 마음도 있었거든요. 왜 불신자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가. 돈을 요구하거나 조건을 제시한것도 아닌데. 그들은 머리가 아둔한가. 혹은 내가 그들보다 영특한가. 이런 교만한 생각이 은연중 있었는데,

저또한 성령의 작용이 아니였다면 목사님께서 언급하신것처럼

'하나님을 스스로 찾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을것이고 결국 믿음에 이르지도 못했을것이였겠군요.

왜 하필 나를 택해주셨을까.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에 그저 감사할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감사합니다 

Sihoon

2018.08.27 16:10:55
*.125.203.190

목사님 평안하신지요.

 

니고데모에 관하여 말인데요.

글중 "그렇다고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다  주시면 기계적 구원이 됩니다. 반대로 인간이 성령을 받겠다고 소원하고 마음 문만 열면 성령이 임재하게 된다면 니고데모의 경우에 구원을 받았어야 합니다."

이 구절이 너무 이해가 안갑니다.

 

성령을 받겠다의 소원. 즉 내가 하나님을 믿고싶다. 받아들이겠다의 결심은 곧 회심이며 구원의 길에

속해지는것 아닐까요?

 즉. 목사님의 글에서, '성령을 받겠다'는 그 마음또한 성령께서 주신것 아닌가요.

그럼 니고데모의 경우를 어떻해 볼것인가.

짧은 저의 소견으로는, 결론부터 말하면 니고데모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것인데,

이것은 믿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음에도 이해가 안되서 받아들이지 '못했다'라기 보단

애초에 성령의 작업이 없었던것이고, 예정되지 않아서 인것이죠.

결국 '믿고자 하는 마음또한 없었다' 의 결론이 아닐까요.

이해가 되면 한번 믿어봐야지 아니면 말고 이정도 수준이 아니였을까요.

 

즉. 내가 하나님을 믿겠다 받아들이겠다의 결심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고백에 진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령께서 이미 작업을 하신것이며 

성령이 인간을 거듭나게 하는 능력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성령의 일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의문이긴 합니다)

그렇게 결심하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은 구원을 주시는 것 아닐까요.

 

너무 제가 몇 단어에 지엽적으로 따지게 되는것 같은데,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음에도 구원을 얻지 못한 니고데모의 사례가

너무 이해가 안되네요. 머리가 아프네요..

 

master

2018.08.28 00:18:04
*.246.122.206

Sihoon 형제님 제 글을 다시 보니 그런 오해를 살만 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아래처럼 다시 고쳤습니다. 이제 이해가 되리라 믿습니다. (조금은 몇 단어에 지엽적으로 따지는 것 같네요. 너무 그러면 형제님 말씀대로 머리가 아파지는데요..^^)

 

*************************

 

반대로 인간이 성령을 받겠다고 소원하고 마음 문만 열면 성령이 임재하게 된다면 니고데모의 경우에 예수님을 만나는 그 단계에서 구원을 받았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 성령을 받고 싶다는 생각과 소원을 하지 않을 자는 없습니다. 니고데모도 그 자리에서 예수님 말씀이 이해가 안 되어도 그런 생각을 분명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뜻에 의해 받아야 할 사람에게만 당신의 때와 방법으로 나눠줍니다. 니고데모도 나중에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그 장사를 위해 향품을 제공합니다.(요19:39) 십자가 죽음 이후에 성령님이 역사하여 그를 회심시켜 구원 받은 것으로 학자들은 해석합니다.

 

즉 성령이 니고데모 본인의 소망과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방식에 따라 당신의 택한 사람 니고데모에게 임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이 성령에 의해 이뤄진다면 당연히 예정이며 인간의 자유의지와는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Sihoon

2018.08.28 03:50:35
*.94.111.238

답변 감사합니다

 

'성령을 받고싶다=하나님을 믿고싶다' 라는 마음과

'하나님을 믿겠다' 라는 믿음을 결심하는것은 다른것이란 말씀이신건가요?

하나님을 믿고 싶은데 그것이 결심에까지 이르지 못할수 있다는것은 제가 처음 접하는 개념이어서 혼동이 온것 같습니다. 그런경우가 있다니 새삼 놀랍군요. 

결국 '하나님을 믿겠다'라는 결심까지 나아가지 않은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상태라고 말할수 있겠군요.

 

그리고 니고데모는 결국 구원을 받았군요. 무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성경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master

2018.08.28 05:34:12
*.246.122.206

Sihoon님이 아직까지 완전히 이해를 못하신 것 같아 노파심에서 하나만 더 보태겠습니다. 

 

인간 스스로 기독교 교리에 동의하고 예수를 믿어보기로 결심을 하는 것과

성령의 간섭으로 한 죄인의 타락한 심령이 완전히 뒤집어진 후에

앞으로는 자기 전부를 주님께 드리고 주님 뜻대로 따라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며 전자는 아직은 구원 전이고 후자는 구원 후라는 뜻입니다.

 

인간 지정의로 결단했다는 사실 하나만을 인식하기는 같게 여겨질지 몰라도

결심한 내용을 엄밀히 따져보면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의  완전한 전도가 이뤄지기에

실제로 인생의 목표가 완전히 바뀌어서 그렇게 살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고있다는 면에서

(비록 때로  게으르고 넘어지고 심지어 이전 방식으로 잠시 돌아갈 때가 있어도)

이 둘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니고데모의 경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는 분명 성령의 중생이 있었기에

공회원의 신분과 위치에서 유대 사회의 온갖 예상되는 손해와 핍박을 각오하고

예수님의 장사에 향을 제공한 즉, 행동으로 그 회심을 드러내 보인 것입니다. 샬롬! 

Sihoon

2018.08.28 18:45:06
*.125.203.190

자꾸 물어서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저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글인데요

즉. '성령의 간섭이 없는, 믿음의 결심이 있을수 있다'는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저의 믿음을 회상해 볼때에,

믿음을 결심한것은 = 주님 뜻대로 살겠다의 결심과 뼈를치는 듯한 통회의 회개가 있었고

예수를 믿는다는 자체가 예수가 나의 주를 시인하고 당연히 이것을 결심하는것이라 생각해왔는데

이것을 구분해서 믿는 자들이 존재한다는건가요? (그럼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는걸까요 ㅇㅅㅇ??)

 

이러한 질문을 던질려는 찰나 저의 아버지를 생각해보니

저의 아버지는 장로집사라는 신분까지 교회사역을 하셨었으나 사업이 부도난뒤로 여러 사람들의 상처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더이상 교회도 나가지 않고, 하나님을 포기한것 같진 않으신데 그냥 자신은 더이상

복잡한것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또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처음 믿을때 그 뜨거움을 경험하지 않은 형제들도 꽤 되어서, 저는 이러한

느낌(?)을 받는 자도 있고 받지 못한자도 있구나 모두 처음믿음을때 나같은 경험이 없을수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어떤경우일지라도 남의 구원을 정죄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혹여 이러한 사례들이

단순히 예수를 믿어보기로 (떠보기로) 결심한 사례들일까요.

혹여 저의 구원은, '성령의 작용이 없는 믿음' 이었을지 검증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성령의 작용없는 믿음을 가진자들은, 입술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였을지라도 단순형식적 웅얼거림이였지 

그 마음은 예수가 내 주인임을 적극적으로 대적하고 있는 상태인건가요? 그러면서도 교회를 출석하는것인가요?

 

저는 강박을 앓고 있으며 이러한 고통이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예수를 믿게한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강박을 앓는 사람은 우울도 쉽게 동반하며, 세상에 대한 허무감은 하나님(절대성)이 아니면 다른것에 큰 의미를 얻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강박성 특성은 무엇인가 이해가 안될시 발동될때가 많아서 자꾸 묻네요

혹여 이러한 부분이 사이트적으로나 문제되거나 불편하시다면 얘기해주시면 더이상 질의 하지 않거나 가이드라인에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여로모로 감사합니다. 이 사이트에서 큰 도움 얻고 있습니다.

 

 

master

2018.08.29 01:36:53
*.246.122.206

Sihoon님 

 

믿다가 안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의 글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주변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그 신앙 특별히 회심여부를 함부로 판단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영적인 진리는 본인에게 가장 먼저 적용하여서 항상 점검 회개 성숙시켜 나가면 됩니다. 
성령의 간섭으로 믿기로 결단하는 것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새롭게 가치관이 바뀌며 그에 따라 인생의 목적과 삶의 방식도 완전히 바뀐다는 것입니다.  
 
강박증 때문에 질문이나 댓글 다는 것을 중지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선 아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저희 홈페이지 회원님이나 방문자님들도 그런 부분을 알고 참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서적으로 불안 내지 부조화가 일어나는 작금의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청년은 물론 어린이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다시 당부드리지만 반드시 약물 치료를 받으십시오.
그래야만 생각이 한곳으로만 집중적으로 몰리는 것을 고칠 수 있습니다. 샬롬!
 

모루두개

2024.02.06 02:51:32
*.230.44.2

저는 루터의 노예의지론이 와닿더라고요.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적잖게 미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영미권에서는 프리(덤), 프리윌, 리버티 개념을 다르게 인식한다던데, 개인적으로 프리윌은 하나님만이 행사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옛날에 테넷이랑 플랜팅가 찾다가 이 칼럼을 읽게 된 것 같아요, 눈팅만 했었는데 이제야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칼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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