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혼합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 죠이엘
[답변]
혼합주의(混合主義, Syncretism)는 서로 다르거나 정반대의 종교 또는 철학(광의로는 모든 학문과 문화를 포함)의 요소들을 서로 합쳐서 새로운 형태의 종교나 철학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두 개가 완전히 융해 되어(total fusion) 전혀 다른 것이 되지 않더라도, 여전히 각각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섞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 이론이나 사상에서 취할 것만 취하여 새로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절충주의(eclecticism)와는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이 용어는 풀루타크(AD 1 세기 역사가)가 서로 적이었던 Crete 섬의 그리스인들끼리 공동의 적에 대항하여 힘을 합한다는 뜻의 정치적 용어로 최초로 사용하였습니다.(Syn=together + Cretans) 종교적으로는 16세기 철학자 에라스무스가 그의 “잠언(Adagia)”에서 신학적 의견이 서로 다름에도 함께 결합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도로 처음 사용했습니다.
기독교 교회사적으로 혼합주의의 효시는 Georgius Calisen Calixtus(1586-1656)가 사도 신경의 “거룩한 공회”(the Holy Catholic Church)라는 표현에 근거하여 독일의 루터파 교회와 카토릭 교회의 통합을 시도하다 실패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참고로 사도신경의 이 표현은 아직도 논쟁의 불씨가 살아 있습니다. 즉 catholic 이란 단어를 일반적인 뜻으로 “눈에 안 보이는 우주적 교회(전 성도들의 모임)”로 보느냐 아니면 “천주교를 지칭하는 고유의 표현”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전자로 보는 개신교 교단에선 모든 교회 행사에서 거부감 없이 적용합니다. 천주교에선 자기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고유명사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합주의라는 명칭만 사용하지 않았다 뿐이지 교회사 전체가 바로 혼합주의와의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바알과 앗세라신을 숭배했고, 솔로몬의 후처와 첩들이 온갖 이방신을 갖고 들어 왔고, 나중에는 앗수르나 바빌론의 국가 종교를 따랐습니다. 엄격히 말해 구약시대는 족장 시대를 제외하고는 출애굽시 시내산의 금송아지 사건부터 시작해 예수님 오시기까지 전부 혼합주의에 물든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거짓 교리에 대해 진리를 수호하는 싸움이 사도들의 주임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지주의를 필두로, 헬라 철학, 유대교, 황제 숭배 종교, 미신 및 신비주의 등과 복음을 구별하는 내용들이 히브리서, 요한일서, 계시록 등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 안에 침투해 들어온 그런 혼합주의 때문에 신약의 정경화 작업과 신조의 작성이 활성화되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확정된 성경과 신조가 혼합주의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두 무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혼합주의는 교리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 관련되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요소에도 광범하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현재의 크리스마스를 들 수 있는데 원래 태양신 축제일이었던 12월 25일을 우상과 사단을 예수님이 정복했다는 의미로 아기 예수의 탄생일로 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풍습 중에는 당시의 이교도적인 관습들이 일부 전해내려 오고 있습니다.
오늘 날에 있어서 혼합주의가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일선 선교 현장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가 혼합주의적 색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만의 구별된 진리를 정확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현지인들의 문화, 풍습, 사상, 종교와의 직접적 마찰을 피하면서도 복음이 잘 수용될 수 있는 방법 상의 조화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이 구분에 자칫 혼동이 오면 혼합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선교에선 항상 토착화(Contextualization: 복음의 진리는 고수하되 전하는 수단은 현지 문화에 맞추는 것)는 시도하되 절충주의나 혼합주의로 가선 안 됩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는 가장 크고도 잘못된 혼합주의는 사실상 개신교단 내에 있다고 봅니다. 바울 사도가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갈4:8,9)라고 한탄했듯이, 십자가의 진리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단에서도 예수님 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으며, 다른 종교와 적극 협력하고 함께 사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律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갈2:16)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은 것입니다.(갈2:21) 사람은 절대로 스스로의 공적이나 선행으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조건 없는 용서의 사랑이 필요 없는 자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개신교단 내에도 구원에서 인간의 선행을 조건으로 강조하는가 하면, 아무리 주님의 어머니이지만 인간에 불과한 마리아의 중보가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선언한 카토릭 교회와 공동 사역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타 종교인들은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선한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적 체계와 교리는 절대 인정해 주면 안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엡1:10) 하기 위해 성도를 선택하여 십자가 구원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물을 예수님의 발 아래 복종하게 하기 위해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입니다.
쉽게 말해 세상 모든 사람이 성전 구석에서 가슴을 치며 기도하는 세리처럼 “저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오직 주님의 긍휼만 바랍니다”라고 무릎 꿇고 통회하며 십자가 아래로 나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 진리를 부인하는 교단이나 종교는 결국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합격점에 들수 있다고 자신하는 셈입니다. 세리와 달리 성전 중앙에서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교만한 바리새인의 형국입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이런 바리새인들을 용서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저주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타종교인을 저주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의 불쌍한 영혼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끌어 안고 기도하며 십자가 복음을 간절히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마저 예수님 오시기 전의 초등학문으로 되돌아 가려 하거나, 세상의 종교를 구원의 방도로 인정해 주려는 움직임만은 막아야 합니다. 지난 이천년의 교회사가 혼합주의와의 싸움의 역사였듯이 말입니다.
혼합주의는 한 마디로 말해 십계명의 제일 가는 계명을 어기는 모든 생각, 말,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십자가 외의 다른 길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이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인간이 구원 받을만한 이름을 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1/6/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