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복음에 나타나는 족보와 순서에 대해서

조회 수 4119 추천 수 80 2006.01.19 06:30:38
운영자 *.108.170.228
얼핏 보기에 모순으로 보이는 두 가지의 일을 질문하려고 합니다.
신학자들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해서입니다 ^^

질문 1.

일단 예수님의 족보 문제인데.. 마태복음의 족보는 요셉쪽, 누가복음의 족보는 마리아쪽 족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알겠는데, 특별히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쓴 의도가 다르다 하는 해설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족보를 마음대로 넣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기로 누가복음의 족보가 마리아쪽 족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누가복음의 초기에 마리아만이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 누가가 누가복음을 쓸 당시 마리아 (혹은 그 측근) 로부터 예수님 탄생 이전의 마리아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이렇게 누가는 마리아와 절친했기 때문에 족보도 마리아쪽 족보를 실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맞는 걸까요?

그리고 마리아쪽 족보라면 왜 마리아를 밝히지 않고 요셉을 밝혔습니까?
혹시 그 당시 히브리인들은 부부의 경우에 관용적으로 남자를 아내의 아버지(장인)의 아들로 표현하곤 했습니까? 즉 질문의 요지는 요셉은 엘리의 아들이요, 라고 나왔는데, 여기서 엘리는 사실은 마리아의 아버지입니까? 그런데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을 헬리의 아들이라고 서술한 것은 그 당시 히브리인들의 글에 흔히 나타나는 것입니까?

답변 1. 예수님의 상이한 족보

아시는 대로 마태와 누가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선조들의 이름이 다윗 이후로는 완연히 다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 사이에 마태의 족보는 요셉 쪽을, 누가의 족보는 마리아 쪽을 기록했다고 통상적으로 해석합니다.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예수님은 생물학적으로는 마리아의 자식이지 요셉의 자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요셉의 장자이자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두 족보의 상이점이 이런 차이를 오히려 더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보며 실제로 그 이론을 뒷받침 해줄 만한 성경 구절도 있습니다.  

우선 마태복음 1:16에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동정녀 탄생이 아니고 요셉과 마리아 부부사이의 정상적 육신의 자녀라면 성경은 당연히 “야곱은 요셉을 낳았고 요셉은 예수를 낳았느니라” 라고 기록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마태는 의도적으로 요셉까지의 족보를 다 밝혀 놓고는 거기서 갑자기 문장을 바꾸어 예수는 실제로는 요셉의 자식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에서(18-20절) 그 경위를 부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태의 족보가 요셉 쪽임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반면에 누가는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눅3:23)라고 족보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as was supposed)”이라는 문구가 “비록 일반 대중은 그렇게 믿고 있었을지라도 사실은 예수는 요셉의 생물학적 아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명시적으로 언급은 안되어 있지만 어머니인 마리아를 지칭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가 어떤 선조의 계열에서 태어나기 위해선(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유일한 인간의 부모는 마리아이기에 이 족보를 마리아 쪽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해석은 오리겐,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아타나시우스, 저스틴마터 같은 초대 교부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또 그 이유는 히브리 전승이 마리아의 아버지가 헬리였다고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Lightfoot 주교에 따르면 탈무드 저자들이 지옥의 고통을 언급하면서 명시적으로 ‘헬리의 딸 마리아”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또 유대인들은 지금도 부모 중 어느 한 쪽만 유대인이면, 말하자면 엄마만 유대인이라도 그 후손을 유대인으로 인정합니다.      

이 이론에서 누가의 족보가 마리아쪽이라고 해서 여자들 즉 어머니들의 족보라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법적 조상을 나타내었고, 누가는 예수님의 생물학적 조상을 기록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인간 부모는 마리아 뿐이므로 예수-마리아(문자적으로는 요셉으로 대신 기록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마리아를 의미)-헬리-…로 올라가 다윗, 아브라함, 아담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마태는 요셉의 아버지를 야곱이라고 한 반면에 누가는 헬리라고 한 것인데,  이 이론을 주장하는 쪽에선 이것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마리아가 남자 형제 하나 없는 유일한 법적 상속자였기에 모세 율법(민36장)에 따라 그녀의 남편인 요셉은 헬리의 상속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요셉의 경우도 야곱의 육신적 아들이자 헬리의 법적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이론은 상당한 성경의 내적, 외적 근거를 갖고 있으며 아주 명쾌하며 설득력 있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하자는 제가 다른 답변 글에서도 밝혔듯이 두 족보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스왈디엘과 스룹바벨을 해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요셉과 마리아가 형제가 아니므로 당연히 서로 다른 부모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선조를 추적해 올라가다 보면 어딘가에서 같은 부모를 만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스왈디엘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선조가 일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룹바벨만 같고 또 다시 달라졌다가 다윗에 가서야 같아집니다. 혹시 동명이인이라고 할지라도 동시에 두 사람이 순서도 같게 일치할 개연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하자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선 이보다 더 타당성이 있는 설명은 없습니다.

질문하신 순서에 따라 답변 드리자면;  

-당연히 둘 다 틀린 족보는 아닙니다.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를 뿐입니다.
-누가가 마리아쪽 족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위에 설명한 바대로입니다.
-마리아쪽 족보이면서도 그 이름이 없고 요셉이라고만 한 이유도 설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인을 족보에 올리는 것은 당시의 관습이 아니었습니다.
-이 이론은 헬리는 마리아의 아버지로 보고 있으며, 요셉도 헬리에게 사위일 뿐 아니라 법적인 상속자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두 족보가 서로 다르게 기록된 이유를 어느 누구도 명확하고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가지 확실한 진리는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였다는 것이며 두 족보 공히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단 마태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언약의 자손이자 만왕의 왕이신 예수, 누가는 이방인도 구원하는 전 인류의 구세주 예수를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는 유대인 신자를, 누가는 헬라인 신자를 주 독자층으로 해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질문 2.

또 한가지 질문은, 사건의 순서에 관한 것인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부른 후에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베드로의 장모를 먼저 치유한 후 제자를 부르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혹시 제가 놓친 부분이 있다면 (자세한 인과 설명이 가능하다면) 부탁드리겠고요,
아니라면, 실제로 어떤 시간 순서로 베드로 장모 치유와 제자를 부르심이 일어났는지 궁금합니다.
그 부분에 있어 누가복음은 시간 순서와 상관없이 서술한 것입니까?

마지막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가지고 성경을 (특히 공관복음을) 공부하는 자세를 묻고자 합니다.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이 일어난 순서'는 신뢰할 수 없으므로 순서는 무시하고 (혹은 얽매이지 않고) 그 사건의 사실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옳습니까? 아니면, 이 경우는 특별한 경우인가요?

오히려 서신서들간에 보이는 모순들은 잘 정립된 신학 이론을 공부하면 그것이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데, 명백히 서사적으로 쓰여있는 복음서가 서로 모순될 경우에는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답변 2. 성경의 순서

이번 질문은 아주 상식적으로 접근해보겠습니다. 우선 베드로의 장모 치유와 제자를 부르는 시간적 순서는 당연히 제자를 먼저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먼저 알았기에 그 장모도 알게 되었지 그 반대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성경을 상식적으로 본다고 해서 아무런 배경 연구 없이 그때그때 생각내키는 대로 해석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에 구태여 상세한 부연 설명이 없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일로서 상식 범위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비범한 수단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일과 사람을 통해 훨씬 더 자주 은혜를 베푸시며 당신의 뜻을 계시하십니다.  

실제로 주님이 갈릴리 바닷가 가버나움에서 주로 사역하시면서 베드로의 집을 사역본부로 삼았습니다. 아마도 베드로의 장모는 사위와 함께 살았나 봅니다. 성경이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로가 열병에 붙들린지라”(눅3:38)고 기록했듯이 회당에서의 사역을 끝내고 베드로의 집에 쉬러 들렀던 것입니다. 또 그곳에서도 마침 베드로의 장모와 온갖 병자들을 치유하고 하루를 그 집에서 묵었습니다.(42절)

만약 베드로의 장모 치유 사건이 제자를 부르기 전에 먼저 있었다면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라는 설명이 먼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단순하게 회당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와서 열병에 걸린 한 나이든 여인을 고쳐 주기를 청하자 그 집에 들어 갔다는 식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누가가 아무런 사전 설명도 없이 대뜸 베드로와 그의 장모를 소개하고 있는 이유는 이 복음서를 기록할 즈음(AD 60-70년경)에는 이미 초대교회가 활성화 되었을 시기로 베드로의 이름이 온 교회에 알려져 있었기에 갑자기 그 이름을 언급해도 별다른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시간적 순서와 상관없이 장모의 치유사건이 먼저 나온 이유는 저자 누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에 따라  관련 사건들을 묶어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즉 눅4:14-44까지는 광야 시험을 마친 후에 갈릴리에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다는 것이 주제이며 따라서 그 때 일어난 이런 저런 일들을 설명한 것입니다. 반면에 눅 5장은 제자를 부르고 그들을 가르친 일이 주제입니다.  

질문자님의 지적대로 서사적으로 사실을 기록한 복음서들이 앞뒤 순서나 복음서 상호간에 모순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복음서를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 바로 일지(日誌-Diary) 형식으로 시간과 순서에 맞게 과학적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 아니며, 나아가 사건이 발생한 한참 후에 기록했습니다. 말하자면 복음서의 기록은 정확한 사실에 바탕을 두었지만 연대기적 역사 기록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건의 발생 시간이나 순서를 완전히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문제도 상식적으로 접근하면 성경을 보는 자세에 대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 간에 시간과 순서가 정확하게 일치하거나 아주 상세하게 언급이 되어 있는 부분은, 그 시간과 순서에도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거나 그 뜻을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가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복음서간에 시간과 순서가 일치하지 않거나 아예 언급이 없다면 그것은 별로 중요한 의미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따라서 질문자님이 예를 든 장모님의 치유와 제자를 부른 사건 간에는 특별히 연관되는 메시지가 없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그 순서나 시간 때문에 각 사건의 의미가 달라지거나 줄거나 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각 별개의 사건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공관복음서에 관해서 가장 먼저 상식적으로 아셔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고대의 전기 작가들은 한 개인의 모든 생애의 모든 기간들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건들을 선별해서 어떤 특정한 주제를 강조하려 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의 시작 부분은 고대 전기와 그 형식상 아주 흡사합니다. 그래서 형식상으로는 복음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공생애에 관한 이야기(Narrative) 형식의 전기입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하나님이 구약 성경 속에 계시해 놓은 자신의 약속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 가운데서 다 이뤄졌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는 저자 나름의(당연히 성령의 영감에 의한) 성경 해석, 긴 담화와 대화의 생략과 요약, 기사들의 연대기적 배열과 그에 반하는 주제별 배열, 저자의 신학적 강조점을 위해 선별된 자료 등이 혼재(混在)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의 독자는 복음서를 현대적인 전기의 관행에 부합해서 해석하려 해선 안 됩니다. 반드시 저작 당시의 상황과 기준에 따라서 그 내용을 평가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따라서 공관복음서를 읽을 때는 한 복음서 내의 관련 문맥 전체에서 뜻을 해석해야 하고 동시에 공관복음서끼리 그 내용을 서로 대조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수직적 해석과 수평적 해석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 부분은 관련 주석서나 신학적 훈련이 되어 있는 전문가에게 저작 당시의 상황과 기준(원어적 해석을 포함)에 바탕을 둔 바른 해석에 대해 반드시 자문을 구해야 합니다.

질문하신 순서에 따라 답변 드리자면;

-베드로를 먼저 제자를 부른 후에 가버나움에서 사역이 본격화 된 후에 그의 장모를 치유했습니다.
-누가는 이 부분에서 주제별로 기록했기에 순서가 바뀌었으며, 또 베드로가 이미 유명해진 후에 기록한 것이라 아무 사전 소개 없이 갑작스럽게 베드로의 장모 치유사건이 초반부에 나타났습니다.        
-순서와 시간이 모순되어 보이는 경우는 사건만 별도로 해석해도 됩니다. 그러나 복음서 간에 일치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된 경우에는 반드시 그 시간과 순서 자체에도 뜻이 있거나 해석의 중요한 열쇠가 있습니다.
-복음서는 서사적으로 사실을 기록했지만 연대기적 기록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제별, 저자의 신학적 관점에 의거해 당시 상황과 기준으로 해석하되, 문맥을 따른 수직적 해석과, 복음서를 상호 비교하는 수평적 해석을 병행해야 합니다. 특별히 복음서 상호간에 모순되어 보이는 기록은 반드시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셔야 합니다.

1/18/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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