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주 존경하는 목사님들의 말에 따르면
지옥은 인간이 스스로 택해서 스스로 들어가는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옥에 있는 자들은 영원토록 하나님께 나아갈 의지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 순종하는것보다 지옥에 머무는것을 더 원하기 때문이라고 하시더군요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예수님을 그 정도로 증오하고 있기 떄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아무리 증오심이 크다고 해도 극도로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면
없던 회개할 마음이 생길것 같기도 하거든요
저도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의 말씀이 성경적이라고는 생각하는데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리 불신자여도 극도로 끔찍한 고통을 겪으면
제발 살려달라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하면서
없던 회개할 마음도 생길것 같기도 하거든요
보통 사람들은 극도의 고통을 겪으면
자신이 잘못했다면서 제발 살려달라고 빌잖아요
이것에 대해서 답변 부탁 드립니다
성경에 좋은 예가 있습니다. 거라사의 군대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Do not torment me."(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라고 간청합니다.(막5:7) 그는 바로 직전까지 "밤낮으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며 살고 있었는데"(5절), 바로 그런 모습이 지옥에서 괴롭힘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지옥에서 심판받는 상태를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 13:42, 외에도 22:13 24:51등등)라고 동일하게 표현합니다. 울며 이를 간다고 했듯이 영원히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하나님에 대해 분노하고 원망만 합니다.
그 귀신들렸던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을 만났기에, (사실은 주님이 그를 구원해주려고 계획하고 찾아간 것이지만), 지옥에 갈 상황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죽어서 이미 지옥에 간 자들은 제2의 기회는 전혀 없습니다.(히9;27) 우리도 동일한 운명이었으나,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음에 평생토록 감사하고 주님이 이 땅에서 살았던 삶을 따라가도록 최선을 다해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릴 문제가 아니고 이해하기 힘든 것도 아닙니다. 형제님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선 첫째로, 지옥이 문자적인 의미의 '풀무불'이 아니듯이 '던져 넣으리니'도 문자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성경해석의 원리를 따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둘째로 구원이 하나님이 택하여서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이뤄지지만, 신자 개인은 예수를 믿어야(이 또한 성령의 역사에 따라) 합니다. 심판은 그 반대로 하나님이 전적으로 주관하지만, 각 개인이 스스로 자기 의지로 그분을 끝까지 완악하게 거역 대적한 때문입니다. CROSS님도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섭리는 서로 상충 모순되지 않는다고 이미 잘 알고 있고, 여러 댓글에서 그렇다고 밝혔지 않습니까?
저의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1. 불신자는 하나님을 미워하는데 어떻게 하나님한테 나를 고통에서 건져달라고 말을 하게 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 자신이 미워하는 존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게 좀 이해가 안됩니다
2. 지옥에서 불신자들은 하나님에 대해 분노하고 원망만 하게 된다,. 는것도 잘 이해가 안됩니다
불신자가 하나님을 미워하고 증오한다는건 알고 있지만
뭔가 이유가 있어서 지옥에서 분노하고 원망을 한다는건데
그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3. 누가복음 16장 28절 말씀도 이해가 안됩니다...
자신의 형제들에게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곧 하나님을 믿어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는 뜻 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뭔가가 이상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미워하는데.. 그렇면 미워하는 존재를 믿지 말라고 말해야 정상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형제님의 질문을 자세히 풀어주시니까 무엇이 궁금한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앞선 댓글의 질문을 제가 너무 단순하게 이해해서 죄송합니다.
1. 질문의 답
불신자도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을 닮게 지어진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서 간혹 이렇게 살아선 되는가,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구원받고 싶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이고 영혼이 원죄로 완전히 타락되어서 평생토록 진실한 구원 소망은 생기지 않습니다.
2. 질문의 답
살아 있을 때 원죄로 완전히 타락해 하나님 구원에 대한 진정한 소망이 없었고 오히려 교만하게 대적 거역했던 그 상태가 지옥에까지 이어집니다. 그대로 완전히 굳어진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큰 고통을 당하니까 더욱 자기가 받은 심판과 그렇게 만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크집니다. 이런 크리스천 조크가 있습니다. “나처럼 의로운 자가(평소에는 나는 의롭다고 자부하며 교만했던 자, 주님이 건강한 의인에게 의사가 필요 없다고 했듯이) 지옥에 오다니?”라고 크게 놀라며 절대 수긍하지 못하는 자가 지옥에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 교만한 자인데다, 사탄에 미혹된 그 상태가 계속 이어지니까 원망만 하는 것입니다.
3. 누가복음 16장 28절
이 비유는 성경해석법, 그것도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하는 원리를 반드시 정확하게 적용해야만 합니다. 비유는 가장 중요한 한두 주제만 찾아내어서 해석해야지 구체적인 묘사까지 문자적으로 해석해선 안 됩니다.(이는 제가 이 홈피에서 입이 닳도록 강조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말씀은 결론에서 강조하는 주제가 드러납니다. 그 비유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16:30,31)
우선 죽은 자가 다시 살아서 지인들을 찾아가 회개하라고 말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따라서 비유 전체를 일일이 문자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것이 30절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형제님과 질의. 응답하고 있는 주제를 더 확실히 해주는 비유입니다. 살아서 모세와 선지자(구약성경과 그에 예언 계시된 메시아인 예수님 본인)을 믿지 않으면 반드시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지옥에 간 사람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라,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교만하고 탐욕스러운 부자처럼 산 자와, 겸손하게 구원을 소망한 거지 나사로의 죽은 후의 처지를 대조하는 것이 그 주제입니다. 살아서 예수 믿지 못하고 죽은 자에겐 영원한 고통만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유 안에서도 주님이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라고 이미 설명했듯이, 사실은 지옥에 있는 자가 천국을 절대 볼 수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옥에 있는 자들도 회개하고 구원을 소망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며, 죽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주제를 더 쉽게 이해시키려고 그런 식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조금 더 확장해서 적용하자면, 그 처참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은 있고 또 뭔가 잘못되었다고 깨닫고 원통하다고 여기지만 진심으로 회개할 마음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비유가 말하는 바를 한마디로 줄이면 지옥에 간 자는 제 2의 기회는 아예 없기에 이미 늦었다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예로 가룟유다와 베드로의 예를 보면 됩니다.
유다도 예수님을 판뒤 후회하고 자살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부터 회개하지는 않고 지옥에 갔습니다.
베드로는 큰 죄를 지었으나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 결과 신약시대 가장 위대한 성도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지옥에서 나가기를 간절히 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꼭 필요한 자기 부인의 능력은 상실된 상태이며 하나님을 사랑할수도 없을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진노에 절여진 상태라 이를 갈며 분을 토할뿐, 혹은 자기 안위만 염려할뿐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tormented 라고 합니다.
끊임없이 영원토록 후회하되 회개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상태가 영속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