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사건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내 마음속에서는 정말 나를 위해 죽으신게 맞나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실 그 말씀이 로고스의 말씀으로 그냥 흘러갑니다.
이 질문의 의도는 많은 사역을 감당하는 중인데 자꾸만 지치고 낙담하게 됩니다. 사람이고 죄인인지라 우리의 한계성을 알기도 하지만 십자가 구원이 나를 위한 사건이라는 것이 정말 레마의 말씀으로 절실하게 느껴진다면 아무 죄도 없이 나를 위해 목숨까지 잃으신 분께 대한 감사가 넘쳐서 쓰려지고도 다시금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을 듯 합니다.
매번 말씀을 통해 새 힘을 받기도 하지만 (갈 6:9 너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 조금 더 본질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나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다'라는게 와닿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2000년전에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그 사건이 바로 나 때문이다.)
여기서 제 질문은 만약에 2000년전 사건이 나를 위한 사건이라고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왜 그럴까요? 또 어떻게 해야 그 사건을 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 사건을 사복음서를 더 묵상해야 맞는 걸까요?
그리고 사역에 지침이나 휴식에 있어서 힘들고 지친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신것(마 11:28)과 또 엘리야가 로뎀나무 밑에서 나를 죽여주시옵소서 하고 있을때 먹을 것을 공급하신 것을 비추어 봤을때(열상 19:4~8) 하나님을 놓아버리는 휴식이 아닌 육신의 회복과 영적인 회복을 위한 휴식이 필요한 듯 합니다.
여기서 쓰신 다른 글을 봤을때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이 이미 구원이라는 상을 주셨기에 우리는 값없이 그저 묵묵히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역을 감당하는게 맞다.라고 말씀하신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칭찬이나 감사함이나 또 다른 대가를 바라는 보상심리때문에 지칠때가 많다.라고 말씀하신 글.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닌 본질적으로는 나를 높이기 위함이다. 라는 교만함이 내제 되어 있다.는 글. 그 글에 100퍼센트 동의하지만 (어느글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네요.)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을 다 갔노라 말하며 하늘의 의의 면류관이 있다고 말한 구절들도 (디모데후서 4장 6~8) 면류관을 기복신앙과 같이 복을 받기위해 가는 것은 아니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간적인 나약함과 죄성이 있기에 우리는 적절한 보상과 다시금 한발짝 나아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하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보상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만(제일 본질적으로 이것이 해결된다면 다른 부분은 그저 순리처럼 따라올듯 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먹고 마시고 자고 우리가 주 안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육의 한계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실은 죄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할 뿐이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얄팍한 마음을 가지고 마치 내가 죄를 범해도 된다는 어리석음을 범한다는 태도는 아니지만 우리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육적인 한계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전해봅니다.
여튼 십자가사건이 관통할 듯 합니다. 그 사건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이다. 라는 명제가 제 마음을 관통한다면 더욱 성숙한 신앙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믿음이라님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의 질문을 주셨는데 비슷한 내용을 여러 번 다뤘습니다. 아래의 글들부터 먼저 한 번 읽어보시길 감히 권해드립니다.
사역에 지친 경우에 참조할 만한 글도 함께 첨부합니다.
보상 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금전적 보상과 자기만족적 보상으로 나뉜다고 본다면 아마 '후자'쪽에 가까운 보상일겁니다.
질문이 좀 섞여있어서 개인적인 간증 측면에서 의견을 낸다면
1. 저 역시 아침마다 큐티말씀을 읽고 기도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갈 시기에,영성에 민감할 때는 모든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할 때 드는 생각은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과 그로 인한 십자가 사건의 감사였습니다.
따로 사 복음서나 해당 내용을 묵상하거나 기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죄인이다'라는 고백과 기도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 저에게는 곧 '십자가 사건이 나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드 당신이 왜 나 같은 것을 위해 죽으셨다는 말입니까
라는 고백이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심신이 고되지만 기도가 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눈물과 기도가 나왔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깊이 그분과 묵상하면서 '내가 죄인 중에 죄수이다'라는 고백이 나올 때 비로소 십자가 사건이 나의 사건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죄를 멀리하기위해서 노력한다는 의식적 생각이 반대로 '믿음이라'님의 지금같은 곤고한 상황으로 이끈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합니다. 저 역시 그랬지만 어떤 보상을 위해 단순히 참고 인내하는 것만으로는 오래가기 힘듭니다. 물론 바울도 인내의 경주를 한다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 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 기뻐서 힘든 것이 오는 와중에서 그 즐거움으로 버틸 수 있었기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뿌듯함이 함께한 인내는 버틸 수 있는 인내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한 번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