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에 따르면 사람에게 주신 참된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것이며, 사람의 노력이나 의지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뜻은 사람이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하나님에 관해서 얘기를 아무리 들어도,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믿고싶어서 믿는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이 참된 구원을 갈망하는 마음을 가질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럼 이 칼빈주의를 역설적으로 해석을 하자면.. 사람의 노력이나 의지로는 하나님을 믿을수 없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할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으면, 사람이 한 평생 교회를 다닐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지 못해서 참된 믿음으로 성경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을수 없는 상태에서 죽으면 이들은 구원을 받지못하고 버림을 받았다는 뜻인가요?
그럼 구원을 받지 못한 이들은 알곡과 쭉정이에서 쭉정이에 해당되는 이들인가요?
이 뜻은, 사람이 자기의 의지나 노력으로 알곡이 된것도 아니고 쭉정이가 된것도 아닌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알곡과 구원을 받지못한 쭉정이들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 되는건가요?
칼빈주의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근거로 세워진 교리이므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는 구원의 여정이라는 진술은 옳습니다. 실제로 첫 네 개는 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와 과정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견인 교리도 하나님이 구원 받은 신자의 성장까지 주관하셔서 당신께서 주신 구원의 효력을 천국에 이르기까지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전적으로 타락한 한 죄인의 구원과 성화와 영화의 과정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제한속죄도 이미 설명 드렸지만 하나님의 근본적인 심정은 부모가 자식을 향한 마음 같이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합니다. 이런 측면에선 아르미니안 주의의 주장을 일부 수용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식 중에도 부모의 뜻과 다르게 불효하며 천륜을 어기는 자가 나오듯이 구원의 효력은 택한 자에게만 해당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완전한 비유는 아닙니다. 인간의 부모는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불완전한 존재인지라 자식을 사랑하고 양육하는 데에 이런 저런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와 권능은 완벽하고 광대하십니다. 성경 인물들의 구원의 예에서 살펴봤듯이 인간이 자유의지를 맘껏 행하도록 그대로 두고도 당신의 선택과 유기에 단 한 치의 오류가 생기지 않게 행할 수 있습니다.
알기 쉬운 예정론을 몇개 정독해 봤는데요... 위 글은 이 칼럼을 인용한것입니다.( https://whyjesusonly.com/easy_to_know_predestination/41362 )
제가 읽고 내린 결론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 그 사이 어딘가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잘못이해하고 있는건지요??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 사이의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성경에 두 가지 입장을 설명하는 말씀들이 곳곳에 함께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살피면 둘 다를 지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만....) 어쨌든 둘은 분명히 서로 공존할 수 없고 대척되는 지점들이 많습니다. 정반대의 의견을 둘 다 옳다고 말할 수는 없고, 만약 그런 입장이라면 비유컨대 하나님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한 셈이 됩니다. 그렇다고 구원론이라는 첫째 가는 하나님의 진리를 다루면서 둘을 적절히 섞어서 타협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철저하게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칼빈주의를 지지한다고 믿습니다. (물론 계속 반론을 제기하는 입장이 존속될 것이지만...) 상기 제 칼럼에서 그런 뜻을 설명한 문단 하나를(아주 부드럽게 표현했음) 아래에 인용했습니다.
"반면에 항론은 일단 TULIP이 틀렸다고 부인한 바탕에서만 자기 교리의 타당성을 변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구원에 대해 말하는 바의 전부를 설명해내지 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일부 진리를 무시하고 교리를 전개해나가니까 필연적으로 예지예정에서처럼 여러 모순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칼빈주의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을 일부 수용하는 교리를 갖고있지만, 구원에 대해서 100% 묘사할수도 설명할수도 없다는걸 이해했습니다. 아르미니안주의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을 일부 수용하는 교리를 갖고있지만, 구원에 대해서 100% 묘사할수도 설명할수도 없다는걸 이해했습니다. 그렇다고, 둘다 서로 대척되는 지점들이 많아 공존할수도 없고, 둘 다 100% 성경의 구원을 대변하는 교리가 아니라서 둘다 옮다고 말할수도 없다는걸 이해했습니다.
목사님 또한 성경에 두 가지 입장을 설명하는 말씀들이 곳곳에 함께 나오지만, 성경은 둘 다를 지지하지 않음을 알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정반대의 의견을 둘 다 옮다고 말할수도 없으며, 성경이 구원에 대해서 말하는 바의 전부를 설명해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은 어떤 확신이 있기에 철저하게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칼빈주의를 지지한다고 믿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서로 공존할수는 없지만, 성경의 구원을 이해하는데 있어 아르미니안주의의 일부를 수용할수밖에 없는 칼빈주의의 모순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지금 그 둘을 비교해서 구체적으로 논의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제가 확신하는 근거에 대해선 상기 답글에서 아주 간략히 밝혔습니다.
- (자세히 살피면 둘 다를 지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만....) 라고 말씀드렸듯이, 아르미니안 주의를 지지하는 듯하는 말씀도 문맥상 자세히 보면 칼빈주의를 말하는 구절들이거나, 칼빈주의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 그래서 아르미니안 주의는 "성경이 구원에 대해 말하는 바의 전부를 설명해내지 못합니다."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칼빈주의로는 성경의 모든 구절을 일관된 맥락에 따라 해석 적용이 가능합니다.
- "성경의 구원을 이해하는데 있어 아르미니안주의의 일부를 수용할수밖에 없는 칼빈주의의 모순점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급합니다"라고 질문하셨는데, 칼빈주의는 어떤 모순점도 없이 설명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 아르미니안 주의는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태초 전부터 예정과, 전적 타락, 성령의 간섭으로만 구원 받음 등등 성경이 분명히 계시하고 있는 진리들에 관해서 온전히 설명해내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일부를 부인하는 모습이 됩니다.
제가 설명 드립니다
구원은 오직 에수님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이것을 더 정확하게 적으면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받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능력과 의지로는 예수님께 온전히 순종할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써잇듯이 우리의 마음은 원죄로 인하여서 만물보다 부패하고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 순종의 행위를 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것이 못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
바로 예수님을 의지하는것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구세주로만 받아들이고 주님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것 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것만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착각한다는 말 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것만을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는자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것만 믿어야할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믿는자를 대신해서 모든 율법과 계명에 대해서 완벽하고도 온전하게 다 이루셨음을 믿고 의지해야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이것은 즉, 예수님을 나의 선지자로 의지해야하고, 예수님을 나의 제사장으로 의지해야하고, 또한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의지해야한다는 것 입니다. ( 저도 공부도 좀 덜 되서 이 부분은 운영자님께 물어보세요 )
위의 말들이 어렵다면 요약해서 말씀 드립니다
구원을 얻거나 구원에 이르는데 있어서 우리의 능력과 의지와 공로는 다 버리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만을 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의지하는것이 바로 믿음이고 믿음의 대상 입니다. 참고로 믿음은 지식, 동의, 신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은혜의 원리를 또 알려드립니다... 예를 들어보죠.. 질문자가 제게 엄청나게 잘생겼다고 말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면 그 말이 내 마음에 와닿아서 저는 기분이 좋게 됩니다. 은혜의 원리는 이것과 비슷합니다. 흔히 이것을 수동적이면서도 동시에 능동적이라고 말합니다. 성경 말씀을 듣거나 읽을때 특히 믿으라고 말씀에 적혀져 있다면 그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와닿아서 믿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서 마치 자발적으로 믿게 되면 이것이 바로 은혜를 받았다고 표현하는것 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이해하야하며 또한 믿음의 대상은 또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이해해야 되겠지요. 어쨋든간에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으로는 예수를 믿을수 없습니다. 그 믿으라는 성경 말씀이 내 마음에 와닿지도 않고 무관심하다면 이것이 바로 은혜를 받지 못 한 상태인것 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요한복음 말씀인데 어딘지 기억이 안 나지만.. )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100번 1000번 생각하면서 이 말씀이 대체 어떤 말씀인지 깊게 생각해보십시오. 사실 예정론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을 강조하시기 위해서 성경 말씀에 남기신것이지 우리가 딱히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생이나 예정론은 우리가 딱히 신경쓸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 예정을 설명 드립니다.
택함 받은 자는 100%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질문자도 알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불택자에 대해서 설명 드립니다
하나님은 불택자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불택자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시지 않는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불택자들은 ( 택자들도 구원의 은혜를 받기 전에는 불택자와 다를바 없습니다. ) 그들 스스로의 의지와 마음으로 예수님을 증오하기 떄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기회를 죽을떄까지 거부하게 됩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지옥에 잇는 자들은 예수님께 나아갈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께 순종하는것보다 지옥에 머무는것을 더 원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아무리 그들에게 내게로 오라고 외쳐도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더욱 더 멀리 도망치고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간다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잘못을 행한적이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옥에 간것은 자신이 택한 결과이기 떄문입니다.
너무 단편적 문자적 편향적으로 칼빈주의를 접근하기에 생긴 오해입니다. 그런 오해를 없애라고 제가 "알기 쉬운 예정론"이라는 글을 시리즈로 연재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믿음은 절대 상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먼저 성령으로 간섭해서 예수님과 그 십자가 교리에 대한 열린 마음과 때로는 단번에 믿음을 심어주지만, 인간도 그에 반응하여 성경을 열심히 배워서 그 구원의 진리를 정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은 그래서 주로 점진적과정으로 이뤄집니다. 우선 아래의 글들을 참조하시고 시간이 나는 대로 알기 쉬운 예정론 시리즈를 읽어보십시오. 댓글로 답변 드리기에는 그 내용이 광범위합니다. 아니면 성경문답의 차례에서 구원 항목을 찾아서 관련된 글들을 찾아 읽으셔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이라고 하면서 왜 자꾸 믿으라고 하는가?
예정의 공평성에 관한 몇몇 의문
알기 쉬운 예정론 (whyjesuson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