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을 통한 구원론의 이해"라고 하셨는데, 본인께서 그렇게 이해하고 계신다는 것인지, 중생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 본 것인지, 우리들도 그렇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우선, "중생을 통한 구원론"이란 제목부터 혼동이 옵니다. 중생이 마치 구원의 여러 통로 중 한 통로처럼 들리니까요. 믿음으로냐 행위로냐 중생으로냐? 물론 그런 뜻은 전혀 아니란 것을 읽어 가면서 알았습니다.
"목회자료"라고 밝혀 놓으셨는데, 그것이 글을 올리신 김인찬 목사님 개인이 그렇게 이해하고 또 주장하고 계신 것인지 아니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하고 주장하는 것을 옮겨 놓으신 것인지 모호합니다. "-한다, -이다"식의 직설적 문체 중간 중간에 "-다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식의 인용식 문체가 끼어있기 때문이며, 전체 글이 통일성이 없고 흩어져 있기에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김목사님의 견해로 여기고 읽고 나갔는데, 읽어 갈수록 그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옮겨다 놓은 것인가는 의문이 심화되었습니다. 예로서, "그러면 거듭남이라는 구원의 시작이 완전한가? 보수주의에서는 중생이 되었다는 완전한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중생으로 우리는 의인이 되었고 옛사람이 새사람과 새 생명을 얻었으며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 이는 구원을 얻은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구원을 지키는 개인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라는 단락을 보면, "이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부터 "이는 구원을 얻은 것이 확실하다"까지는 본인의 확고한 견해처럼 읽혀집니다. 그러나 마지막의 "그러나 구원을 지키는 개인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는 말은 제 삼자의 견해를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삼자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은 겁니다. 앞서 인용한 보수주의자들은 아닌 것이 분명하고요. 이렇게 되니까, 본인의 확고한 견해처럼 읽혀진 부분들마저, 그 출처가 모호해집니다. 본인의 견해가 아니라 누군가의 견해를 옮겨 놓은 것같기도 한데 출처를 밝히지 않았으니...
그렇기에 제가 그 글을 읽고 생긴 의문을 글을 올리신 김목사님께 여쭈어야 하는 것인지 망설여집니다. 제 질문은 "구원을 지키는 개인의 책임"에 관한 겁니다. 김목사님께서도 그 견해를 갖고 계신 듯하기에 여쭙겠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 후반부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만, 1장 6절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는 말씀 또한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 주신 후에 이제부터 내 계명 지키고 살면 구원해 주되 그렇지 않으면 구원은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구원의 완성을 연약한 우리 손에 맡기기엔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어느 어머니가 갓난 아이에게, 내가 너를 낳아 주었으니 이제부터 너는 알아서 올바르게 자라라 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렇지 아니 할진대, 하물며 사랑이신 하나님이겠습니까?
먼저 저는 글을 미리 작성해서 오랜 시간을 거쳐 수정하고 보완해서 글을 올리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오늘 작성하면 글을 올리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수정하면서 되어진 글입니다.(2일정도)
아주 잘 간파하신 것입니다.(매끄럽지 않는 이유는 즉흥적으로 글을 작성하기 때문)
미리 작성된 글은 제가 과거에 올린 글이라고 뒷글을 붙입니다.
논문이 아니라서 부담없이 올리며 또 잘못된 것을 찾으면 시정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독자들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기독신문)
그리고 뒷부분 3분설에 대한 것은 저의 견해입니다. 그 이전의 입장도 저의 견해이지만 보수주의 중생론과 일치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뒷부분은 저의 개인적인 견해임이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원에 있어서 책임에 대한 문제인데요. 저는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며 개인은 책임이 있다는 동시적인 입장입니다. 여기에서 모두 다루지 못하지만 믿음과 하나님의 구원이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구원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사람이라는 인격적 관계로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으로 봅니다.
끝으로 질문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김인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