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격려해주신 지체님들 감사합니다.
한참을 글을 쓰다가 생각이 바뀌어 모두 지우고 다시 글을 올립니다.(너무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고백을 하는 것 같아서 입니다)
제 삶 속의 모든 문제는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고침받고 변화될것을 믿기에 한 순간이라도 빨리 그 분을 만나고 싶은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제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 없이 '껍데기만 예수쟁이'인 제 자신이 질리도록 싫은것입니다.
종교적인 행위만 있는 제가 싫은 것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과 열방을 창조하신 하나님, 나 또한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나 또한 살아 있기에 살아 있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고 싶은것입니다.
살아 있음을 진정으로 감사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때도 진정으로 예배하며 진정한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싶은것입니다.
삶 속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순간, 그 분께서 나에게 은혜의 때를 허락하시는 그 순간부터 바뀌어질것을 믿고 있기에 한 순간이라도 빨리 그 분을 만나고 싶은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것 처럼요...
저의 모습, 나이만 먹고 믿음도 인격도 삶의 모습도 변하지 않는 이 삶이 싫은 것입니다.
한은경 지체님께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다고 말씀하신것 틀리지는 않을꺼에요.
그러나, 사람의 날수를 장담할 수 없쟎아요...
저도 나름대로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기다려 왔지요.
이젠 너무 오래 기다린것에 지쳐가기 때문이에요. 제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있지만...
지체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평안하세요... ^^;;
인생에는 여러가지 문이 있고, 하나님께도 여러가지 문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젊었을 때 깨달았던 것인데,
예를 들어, 님이 지금 어떤 집안에 있고, 바깥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할 때, 님은 이쪽 문에 서서 오로지 두드리는데,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문에서 님을 기다리고 계실 수 있습니다. 그리되면, 님이 움직이고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을 원하신다고 하셨는데, 님의 인격이 그만큼 - 하나님과 대등할 정도로 - 성숙하고 향상된 인격인지 또한 묻고도 싶습니다. 그것이 다른 면에서는 교만일 수 있어요.
다윗이 범죄한 때는 그가 젊었을 때가 아니라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하나님과 오랜 교분을 쌓은 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다윗이 그러할 진대, 우리들 역시 나이를 먹었다고 우리 모습이 달라질 거라고 그것도 하나님과 인격적 교류를 가질 정도로 수준높게 변할 거라고 바라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 아닌가 합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매시 하나님을 거스리지 않고 주님의 인도를 따를 수 있기를 바라고 은총을 바라는 삶입니다.
은혜의 때라는 것은 따로 없어요. 매일 매시가 은혜의 때이기도 한 것입니다.
님의 고정관념에 하나님을 꿰어맞추려 하지 마시길.... 하나님은 호락호락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차원은 어디인지, 하나님은 현재 어느 문에 서서 님을 기다리시는지 그 문을 찾아 직접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문에 서 계신데 오로지 한 문만 고집하여 그 문 앞에 서서 이리 오사이다 하고 버티는 것은
다른 말로 인간의 교만이며, 인간의 어리석은 한계일 뿐이지요.
하나님은 님이 정하신 방식대로 오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님에게 주시는 것들, 작은 일들, 작은 것들, - 님이 볼 적엔 작아보여도 하나님이 보실 적엔 클 수 있어요. 그 분은 겸손하신 분이거든요. - 에 대해, 님이 가진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 감사할 줄 아는 것,
잠언에 거머리의 딸들은 계속 다고 다고 한다는데ㅡ 제 기억이 정확한지 몰라도 -
님의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의 겉모습을 부러워서 그 모습만을 고집하고 요구하지 말고
님에게 현재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느 날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는 님을 스스로 깨닫는 날이 올 것입니다.
감사는 스스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님을 조정하여 감사하게 만들고 찬양하게 만들고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의지로 살도록 만드셨고 인간 스스로 자진하여 감사하고 당신을 사랑하며 찬양하여 주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자동인형의 사랑을 받는 것은 어리석고 웃기는 일인 줄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감사드린다고 고백하시고 스스로 찬양합니다. 고 고백하시고 스스로 사랑합니다 고 고백하시어야 주님과의 만남이 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매일 나를 왜 이 모양으로 만드셨어요. 나도 저런 모습으로 만들어 주세요. 하며 불평만 하는 것은 하나도 진전하지 못하게 하는 함정이기도 합니다. 싫어 소리 백날 해봐야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싫은 그것을 스스로 바꾸어야 하지요. 말만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