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유럽에 퍼져나가기 시작하고 가톨릭이 형성되기 전까지 유럽의 철학사에 중대한 부분 중 하나가 스콜라철학과 교부철학이잖아요?
아우구스티누스 라든지 현대 신앙인에게도 귀감이 되는 명언을 남긴 교부도 있고 적지 않은 그 시대의 교부들이 진실로 말씀에 대해서 이리저리 깨달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성경해석적으로 보면 당시 교부들의 말씀해석 노력이 맞는 부분도 있지만 틀린 경우도 적지 않은걸로 알고있습니다. 가령 예수께서 손이 죄를 지으려고 하거든 손을 찍어버리고 눈이 죄를 범하려거든 눈을 뽑고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요. 교부들 중에서 순수하게 자신의 죄성에 괴로워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애꾸교부와 장애인 교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말씀대로 살려는 몸부림일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말씀을 그렇게 적용하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만큼 강조를 하시기위한 과장법이라는 것을요.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알레고리적 해석'이 유행해서 제가 위에 적은 아우구스티누스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 회자되는 유명교부조차 예수님의 여러 비유 중에 몇몇개는 과하게 해석했다고 하더라고요. 강도만난 유대인 비유에서 그가 타고 난 나귀는 무엇을 상징하고 여관주인은 무엇을 상징하고... 현재 신학계에서 통용되는 '비유'를 넘어서 지나치게 등장인물 사물 하나하나에 특정성을 부여하는 알레고리적 해석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물론 그 분들의 해석이나 삶에서의 말씀적용이 현대 신학적 관점에서는 전혀 옳지못한 것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성경말씀 해석과 적용에 있어 마치 사도행전의 '이 말씀 뜻이 이러한가'라고 매번 공부한 베뢰아 사람들의 순수한 말씀탐독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위선적인 교부가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추측이지만) 성령을 받았을 거라고 예상되는 교부들의 신학적 해석과 적용이 왜 틀리게 그렇게 해석하고 적용했는지 궁금합니다.
성령을 받은 교부들이면 성령님께서 올바르지 않은 성경해석을 막아주시고 손을 자르고 눈을 뽑는 잘못된 적용에 대해 내적으로 혹은 외부 사건으로 막아주셔야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예수를 믿는 자라고 해서 부적이나 호신술처럼 성령님이 재앙 재해를 막아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적어도 '성경말씀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부분에서만큼은 성령님이 내주하신다면 내적으로 만류하는 심정을 주시거나 과도한 알레고리적 해석을 막으려는 쪽으로역사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것은 전부 다 신학체계가 정립된 현대 기독교인 시각에서 보는 것이지만요
잃어버린 복음의 진리를 회복시켰던 칼빈과 루터마저도 몇몇 지엽적 신학적 부분에서는 가톨릭의 여러 병폐들을 미처 다 씻어내지 못하고 후대의 과제로 남겨두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이고 특정 한 사람이 신학에 있어서 모든 완성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부 라는 표현도 사실 저는 부적절한 칭호라고 봅니다. 하나님 이외에 (종교적 의미의)아버지라 칭함받는자가 교회 내에는 없어야한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나마 교부 소리를 들을 수있을만한 사람들을 굳이 고르자면 예수님께서 직접 택한 사도들로만 한정될것입니다. 신약성경에도 교회의 터를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닦았다고 했지 교부들이 닦았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그들이 성령을 받았어도 실수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심지어 마지막때에 가봐야만 풀리는 신비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질문은 아주 고차원적으로 주셨지만 답변은 간단합니다. 우선 일부러 고자가 된 교부인 오리겐(185-253년)이 사역할 때만 해도 신약 성경 27권이 정경화도 되지 않았습니다. 교부들이 신구약 성경 전체를 다 소지하고 상호 비교 검토 토론해가며 신학을 연구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들이 확정된 것도 한참 후의 일입니다. 간단하게 교의(敎義)와 관련된 교회사를 축약하면:
예수님의 신성 확정: 325년 니케아 회의
성령의 신성 확정으로 삼위일체 교리 확립: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
신약의 정경화: 397년 칼타고 회의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 확정: 451년 칼케돈 회의
오직 믿음, 은혜, 성경, 예수, 하나님의 영광(5대 솔라)의 종교개혁: 1517년 마르틴 루터 95개조 반박문이 시작
간단히 말해 정확한 성경 해석이 그만큼 오래 걸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천재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저자부터 여러 명이었음, 또 그래서 섬기는 교회 공동체가 반드시 있어야 함), 신학자들 간에 더 세밀한 연구를 하게 하고 또 상호 검증하여서 온전한 진리를 세우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런 연구와 토론과 판단과 결정 등의 모든 과정에도 성령이 역사했으나, 절대로 단번에 한 명에 의해서 이뤄질 수 없는 작업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해석하여서 교리를 확정하고 신학책을 저작하지 않은 이상에는... 그러나 성경저작부터 예수님이 하지 않는 것이 삼위 하나님의 계획이었음) 거기다 온갖 이단 교파들을 출현케 해서 그 이론들에 맞추어 방어 변증하려다 보니 더 정교한 해석이 이뤄진 것이며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여러 저자가 여러 소주제의 여러 책들을 저작했으나 성령이 모든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어서 일관된 한 가지 주제인 예수 십자가 복음을 곳곳에 직간접적으로 계시해놓았기에 그 진리를 온전히 밝히자면 시간이 걸리고 상기에 열거한 식으로 필연적인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오랜 과정 중에 일부 해석상 오류를 범한 속사도와 교부들도, 구원의 진리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단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이 그 순전한 믿음을 보시고 은혜로 구원해주셨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만이 주관하시고 아시는 사항이지만 말입니다.
바로 이런 차원에서 성경은, 즉 그 저작, 정경화, 번역, 해석, 교리 확정, 독자의 이해와 적용, 모든 과정에 성령이 역사해주셨기에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의 말씀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 경전이 인간 선각자 한 사람이 각성한 내용을 본인 혹은 인간 제자들이 받아서 기록하여 그대로 교육한 것과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 경전들은 인간 독자와 성정이 똑같은 인간이 지은 것이라 그 해석과 적용에 시간이 전혀 오래 걸리지 않고 또 이단이 생길 필요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