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적으로 그러합니다. 간단히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의 자전 공전이 어김 없이 돌아가며, 사계절이 반복되므로 수확이 가능하며, 불신자들에게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십니다. 단 일초 만에 목숨이 오갈 수 있고, 아주 간단한 일로 역사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시간과 일들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해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관장하시므로 그분이 부여하신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에 자연 운행, 일반 은총, 인간의 일상생활 등은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은 법칙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굳이 매번 그 의미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면에 인간이 세상사와 자기 인생에 관해서 꼭 알아야만 할 그분의 의미는 성경에 이미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계시해 놓았습니다. 특별히 당신께서 사랑해서 구원으로 이끈 신자에겐 성령을 내주케 하셔서 그 진리의 말씀을 정확히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고서 그 말씀에 비추어 보면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도 알아서 자기 삶을 그에 맞추어 영위해나갈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요컨대 신자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말씀과 기도에 천착하면서 성경의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 갈수록 그분이 세상사는 물론 자신의 삶과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를 더 많이 더 깊이 깨달아서 자신에게 반영할 수 있게 됩니다. 당연히 그 반대도 성립하는데 성경의 하나님을 모를수록 그 지식은 줄어들고 그 결과 자신의 삶과 인생이 공허하고 갈급해집니다.
원칙적으로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원칙적'이라고 말씀드린 까닭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에는 신자를 시련과 환난으로 인도하는 일도 있는데 그러더라도 결국은 신자에게 유익이 되게 하려는 목적이므로 단순히 "마냥 좋은 것"이라고 여겨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저께 주일(2/4) "(엡2:1-7) 성경적 역사관이 비난받는 진짜 이유 -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고통 (10)" 설교에서 이 말씀도 언급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꼭 그 설교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원칙적으로 그러합니다. 간단히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지구의 자전 공전이 어김 없이 돌아가며, 사계절이 반복되므로 수확이 가능하며, 불신자들에게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십니다. 단 일초 만에 목숨이 오갈 수 있고, 아주 간단한 일로 역사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시간과 일들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해도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관장하시므로 그분이 부여하신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에 자연 운행, 일반 은총, 인간의 일상생활 등은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은 법칙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굳이 매번 그 의미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면에 인간이 세상사와 자기 인생에 관해서 꼭 알아야만 할 그분의 의미는 성경에 이미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계시해 놓았습니다. 특별히 당신께서 사랑해서 구원으로 이끈 신자에겐 성령을 내주케 하셔서 그 진리의 말씀을 정확히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고서 그 말씀에 비추어 보면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도 알아서 자기 삶을 그에 맞추어 영위해나갈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요컨대 신자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말씀과 기도에 천착하면서 성경의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 갈수록 그분이 세상사는 물론 자신의 삶과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를 더 많이 더 깊이 깨달아서 자신에게 반영할 수 있게 됩니다. 당연히 그 반대도 성립하는데 성경의 하나님을 모를수록 그 지식은 줄어들고 그 결과 자신의 삶과 인생이 공허하고 갈급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