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람이 이성을 만나 짝을 지어 가정을 이루고 번성하길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세상 사회는 인물이 못생기고 이성적 매력 인기가 없으면 남녀 이성교제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런것에 대한 주님의 관점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이 있죠. 외모를 보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이성 교제 시 그런 외적인 기준(외모, 돈, 권력 등)에만 치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 이성 교제에 소외되어 결혼을 하지 못하더라도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팀 켈러 목사님이 결혼을 주제로 한 책에서 예수님도 독신이었고, 바울도 독신을 권면했다며 기독교는 결혼을 못하면 열등한 것으로 보는 세속 문화와 달리, 결혼을 못하고 소외된 독신 또한 존중하는 종교라고 했습니다. (요즘의 비혼 문화는 또 다른 얘기일 것입니다.)
다만 추가적으로 이 본문에 연관해서....
예전에 '성 도우미'관련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시사프로그램에서 다루었는데요. 장애인이나 추한 몰골 등으로 사창가에서 조차 거절당해서 울분을 터트리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에게도 성적인 즐거움을 누릴 권리를 보장해야한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운동으로 압니다. 지금도 있을거에요.
그 운동을 발족한 사람 자체가 장애인인데, 자신이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사창가에 창녀들이 상대를 안해준답니다. 총각딱지 못뗀 것에서 너무나 서럽다고 방송에서 엉엉 울던데(애드립도 아니고 정말 그 자리에서 세상 억울함을 다 표현할 정도로 처절하게 울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이나 사회적으로 추하다는 사람들을 위해서 성-봉사(....)를 하는 단체를 만들고 인터넷 카페를 운영한답니다.
여기 일했던 한 청년이 모자이크로 나와 자기 케이스를 말하더라고요.
자기의 정말 절친한 친구가 큰 사고를 당해서 불구가 되었답니다. 아마 하체를 움직일 수 없고 양 손도 쓸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성욕은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그 청년도 남자이고 사고를 당한 절친도 남자였는데요. 절친이 울면서 자기의 성적욕구 좀 풀어달라고 하소연해서 친구로서 구강성교, 곧 입으로 성기를 애무해주는 것을 했답니다. 그 때 너무나 행복해하던 절친의 표정을 보고서 이런 불구자들도 우리와 동일하게 성적인 자유를 누릴 권리를 줘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군요.
이런 사례에서도 봤듯이, 어찌보면 안타까운 사례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방식으로 그들의 성욕을 해소해주는 것이 옳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 주장을 하면 그 장애인들은 "너는 사지가 멀쩡하고 사랑하는여자도 마음껏 만나고 심지어 사창가에서 돈도 주고 살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느냐. 우리는 억만금을 줘도 우리와 성관계 안하겠다고 하는 여자가 많다. 자기가 누릴 수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우리의 성행복권을 짓밟느냐" 라고 비난이 쇄도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비난을 들으면서도 반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맞으나 성경적 사고관이 생긴다면 그런 방식으로 성욕을 해소하지는 않을 것이지 때문입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19:6) 함부로 이혼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지만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준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약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니라 실제로 간절히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구하면 주님이 자신에게 가장 합당한 짝을 맺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일부 신자들마저 비혼주의자 혹은 DINK족이 되겠다고 하는 판이라 그런 기도를 한다면 더더욱 하나님이 기쁨으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기독 청년들은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만나기 힘들다고 절대 실망 좌절하지 말고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어쩌면 기도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자신이 바라는 배우자에 대한 기준도 조금 낮추시고, 무엇보다 자신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가장, 남편, 아버지로서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자격, 조건, 실력부터 가꿔 나가는 일입니다. 자기가 정한 조건과 입맛에 드는 배우자만 고르려 하지 말고 그 전에 자신부터 충분히 상대의 마음에 들 수 있는 배우자 후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어서 독신으로 살게 하는 수도 있으나, 신체적 불구가 아닌 이상, 선교사나 신학자 같은 특별한 소명을 맡길 때입니다.)
잘생기지 못하고 키는 오히려 대한민국 평균 남성보다 작은 170cm도 안되는 남성인 제가 그 케이스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것에 대해 하나님께 원망해본적은 없습니다. ㅎㅎ
차라리 돈이 많지 않거나 머리가 서울대급이 아닌 것에서는 좀 원망해본적은 있어요.
하나님의 관점은 외모, 키 , 재물 등 인간들이 정한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준으로 관점을 보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사회에서 호감의 요소로 작용하는 외모나 몸매 등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일념으로 산다면, 가꾸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물론 남녀 모두 부지런히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대한 꾸미고 자신의 몸을 관리하고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은 성전이라고 하신 것에 부합하는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술 담배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체지방률을 관리하고 가능하면 몸매를 보기 좋고 건강하게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구조나 다비드 상, 그리고 비너스 상 등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분명 하나님의 규칙인 '황금비율'이 있습니다. 또한 시대에 따라 어느 정도 바뀔지언정 그 시대를 관통하는 '미의 기준'은 분명 존재합니다. 피부에 여드름이 가득하고, 뱃살이 튀어나온 비만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러한 인간의 몸이나 얼굴에 대한 '아름다움과 미'에 대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인간은 노력을 통해 그러한 미 에 도달하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동일하게 외모도 잘 가꾸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을 가꾸는 일입니다.
단, 그것이 중심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되고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고 피부가 깨끗하지 못하거나 몸매가 뚱뚱한 것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훨씬 불신자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이고, 또한 그러한 가꾸는 '노력'을 한 것에서 리스펙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복음전도의 측면에서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도 하나님의 좋은 뜻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