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불치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한 영국 노인이 스위스의 자살 지원 단체인 ‘디그니타스’(Dignitas)의 도움으로 가족이 지켜 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영국은 자살은 합법이나 타인의 자살을 도와주는 것은 범죄다. 미국에서는 오리건 주만이 유일하게 의사의 협조를 받아 자살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계속해서 논란과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디그니타스’는 자살지원 단체 중에 외국인도 대상으로 삼는 유일한 비영리단체로 년 회비 18달러를 내면 가입이 된다. 그 동안 이 단체의 도움으로 자살한 자는 모두 146명인데 재작년 50명 작년 75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현재 세계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벨기에와 네델란드 뿐이다. 자살과 안락사의 차이는 전자는 본인이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반복적으로 나타내야 하는데 반해 후자는 의사의 독단적 판단으로도 생명을 끝내는 것이 가능하다. 자살은 환자에게 고통을 없애고 죽는 약을 준비해 줄 수는 있지만 복용을 직접 도와 줄 수는 없다. 안락사는 과학적, 신학적으로 죽음의 정의를 어떻게 정확히 내릴 것인가라는 복잡한 문제가 따르기 때문에 자칫하면 고의적 살인이 될 수 있다.
고무 호스에만 의지하는 식물 인간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정체성 논란이 있고 불치병의 그 극심한 고통을 안 겪어 본 사람이 가타부타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생명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뿐이므로 인위적으로 생명을 끊는 것은 범죄에 틀림없다. 여기서 복잡한 신학적 논쟁은 접어 두고 이 사건의 두 당사자의 이야기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 같다. 그 노인은 “자살이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기회”라고 했고 그 단체의 사무장은 “이 일이 자랑스럽다고 말하진 않지만 나의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안락사의 윤리적 문제를 떠나 불치병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무력(無力)함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의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불치병의 숫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늘어날 것이다. 인간의 무력함이 사람을 이끌고 갈 곳은 오직 한군데 뿐이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어떤 환경 가운데도 마지막 남은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신자가 이 땅에서 할 유일한 의무는 고통 중에 있는 이웃에게 이 마지막 기회를 하루 속히 제공하는 것이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1:24,25)
1/26/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