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LA시간 저녁 6시에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상하 양원 합동의회에서 한 연두교서 연설을 유심히 지켜 보았다. 매년 초 미국국회에서 하는 연례(年例) 행사지만 특별히 금년에는 전세계의 주목을 끈 것은 과연 부시가 이라크에 선전포고를 할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명시적인 선전 포고는 없었지만 예상 대로 이라크에 대해 아주 강경한 자세를 견지했다. 이제 이라크와 미국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연설은 항상 그러하듯이 텍사스 사람답게 간단명료하고 직설적이지만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었다. 한 예로 아프리카의 AIDS 환자를 도와 줄 예산과 법안을 빨리 통과 시켜 줄 것을 호소하면서 그 실태를 설명 했다. 현재 아프리카에는 3천만 이상의 환자가 있는데 그 중 15세 미만의 환자가 3백만이 넘고 매년 수백만 명씩 특별히 어린 환자가 급격히 늘어난다고 한다. 그 중 조금이라도 의료혜택을 받고 있는 환자는 겨우 만5천명에 불과하고 AIDS증세가 보여 병원에 가봐야 의사도 약이 없어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병원에서 환자가 기껏 들을 수 있는 말이라곤 “집에 가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시오”라는 것이다. 부시는 “세상의 어떤 인간도 그런 말을 들을 수는 없고 듣게 해서도 안 된다”라고 강조해 기립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대목은 연설의 전반부에서 구제와 교육과 범죄 퇴치 등 감동적인 내용 일색으로 청중들의 눈물마저 자아내게 했던 그가 후반부에는 갑자기 세계 평화의 수호신인양 전쟁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곧 벌일 전쟁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세심하게 디자인된 연설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든 것이 너무 앞선 생각이었을까? 연설 직후 CBS방송에서 실시한 긴급 여론 조사에서 무력사용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연설 직전보다 10% 높게 나온 것이 그의 의도가 성공한 반증(反證)이 아닐까?
테러리즘은 반드시 분쇄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일지라도 하나님을 대변할 수 없다. 또 어떤 명분으로라도 공격적 전쟁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신원(伸寃)과 복수는 오직 하나님의 몫이다. 불치병 환자를 전쟁 명분 만들기에 동원해선 더더욱 안 된다. 부시 본인이 말한 대로 인간은 절대 그런 취급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을 두 번 울리는 짓이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
2/2/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