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대구시에서 일어난 지하철 사고는 너무나 끔찍했다. 특별히 죽기 직전 휴대폰으로 가족들에게 마지막 절규를 남긴 것이 하나씩 전해지면서 사고 당시의 처참한 상황과 그 절박한 심정이 눈에 보듯이 헤아려져 단지 뉴스로만 접하는 사람에게도 그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딸이 아버지에게 “문이 안 열려요 뜨거워 죽겠어요”라고 절규했고,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사랑해요. 아이들 보고 싶어”라고 작별했고, 아들은 부모에게 “불효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라고 사죄했다. 우리 인생에 이보다 더한 비극이 어찌 따로 있겠는가?
바로 눈 앞에 불길이 치솟고 곧 죽음이 닥칠 줄 자각하면서도 꼼짝 없이 당해야 하는 그 두려움과 억울함은 뜨거운 불에 타 들어가는 육신의 고통보다 틀림 없이 더 했으리라. 불에 탄 시신은 뼈까지 녹아내려 도저히 누구인지 식별조차 안 될 정도니 마지막 순간의 그 참혹했을 장면을 생각해보면 바로 그곳이 지옥의 불 못이 아니었겠는가? 그 분들이 지옥 갔다는 뜻이 아니다. 그 외적인 상황만으로 볼 때 지옥과 방불하다는 말이다.
사고 다음 날에도 전국의 지하철은 통근 인구 650만 명으로 여전히 붐볐다고 한다. 겁이 나도 다른 수가 없으니 할 수 없이 이용한 것이다. 대신에 전부 서로 혹시 이 가운데 정신 병자는 없는가 흘끔거리고 비상등과 수동개폐 장치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 출입구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 한 것이 전날과는 달랐다고 한다. 전국민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불안에 떨며 눈치만 보는 사팔뜨기 신세로 변했다.
“정상적인 사람을 보면 미웠다. 혼자 죽으면 억울할 것 같아 같이 죽자고 마음 먹었다”고 범인은 고백했다. 인류가 최후로 걱정해야 할 것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증오범죄다. 아주 일상적인 시간과 장소에서조차 목숨을 걸고 살아야만 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으로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우리 한 번 솔직히 자문(自問)해보자. 꼼짝 못하고 불 못 속에서 죽어간 그 객차 안이 지옥인가 아니면 그저 불안해 하며 아무도 믿지 못해 모두를 색안경 끼고 바라 보아야 하는 이 땅이 지옥인가?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사라진 이 땅은 지옥이 된지 이미 오래다. 지옥에서 구원 받아 제대로 살 수 있으려면 하나님을 믿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이땅을 변화시키는 길 뿐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게 믿느냐” (요11:25,26)
2/23/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