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조회 수 1284 추천 수 111 2003.07.08 22: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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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보를 나간 어느 날 아침 옆에서 함께 걷던 아내가 갑자기 실비에 옷이 젖었다고 신기해 했다. 최근 계속되었던 LA의 이상저온의 흐린 날씨가 이어진 그 날 아침에도 실오라기 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무시하고 산책길에 나선 터였다. 옷소매를 만져보니 도저히 눈에 보이지도 않던 그 실비에도 축축할 정도로 젖어있었다.        

3년 전 LA로 이주한 직후 일년 내내 거의 비가 오지 않는 데 어떻게 화초나 나무가 이렇게 무성하게 잘 자라나는지 참 의아해 했던 적이 있다. 한 일년쯤 살아보니 겨울 우기 며칠을 제외하고 년 중 비는 오지 않지만 아침 안개나 이슬이 내리는 날이 많고 가끔 눈에 보일 듯 말 듯 오는 실비 때문에 일년 내내 꽃이 피고 식물이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대로 열흘 이상 활짝 피는 꽃이 잘 없는데도 이곳에서만은 그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실비는 줄기가 원체 가늘어 젖는지 안 젖는지 잘 알지 못한 채 옷솔기 사이사이로 젖어 들어가 어느 샌가 전부를 젖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화초의 잎사귀, 줄기, 꽃 어느 부분이고 젖지 않는 부분이 없게 만들어 더 싱싱하게 자라게 하는 것 같다. 또 매일 아침 내리는 안개와 이슬도 시원한 느낌은 없지만 그 효과는 실비와 동일해 사철 구분 없이 꽃을 피게 만드는 모양이다.

성도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이와 같지 않을까? 매일 실비처럼 부어주시지만 우리는 시원하지 않다는 느낌만으로 그 은혜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시원한 소나기는 잠시 잠깐 뿐이며 끝난 후는 오히려 홍수가 지거나 꽃을 떨어트리고 지저분해질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께 오늘도 내일도 목마르게 그저 소나기 같은 은혜만 기다린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은 속히 꺼지지만 은근히 타는 숯불은 오래 타고 화력도 훨씬 세다. 하나님은 신자 모두를 화무십일홍 같은 인생으로 부르지 않으셨다. 일찍 순교해야 할 소명을 띄지 않는 한 소나기 은혜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실비 같은 은혜로 오늘도 필요한 모든 부분에 빈 틈 없이 속속들이 채워 주고 계신다. 그래서 일년 내내 뙤약볕만 쪼여도 그 푸르름을 잃지 않고 얼마든지 견뎌내게 해 주실 뿐 아니라 싱싱한 열매를 더 풍성하게 맺게 해 주신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시84:5,6)

6/15/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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