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 산호세 근교의 한 조그만 시(Soledad City)에서 금주 내내 시끄러운 일이 벌어졌다. 아동 성학대죄를 지은 전과자가 그곳으로 이주하기로 하자 모든 시민이 들고 일어나 반대 데모를 한 것이다. 4년간의 복역기간 동안에 의학적, 정신적, 윤리적 치료와 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본인도 지난 날의 모든 잘못을 회개한 모범수였다. 재활 프로그램을 계속 이수하는 조건으로 감호 당국과 가주 주 정부 협의 하에 한 조그만 시골 도시에 정착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은 성범죄를 지은 전력이 있는 자가 새로 이사 가면 반드시 그 동네 주민들에게 알리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미리 알고 자기 아이들을 주의시키고 보호하라는 취지다. 이번 경우는 이 전과자의 몸에 전자 발신 장치를 부착해 어디를 가더라도 24시간 위성추적으로 감시까지 하고 있다. 지금껏 조용히 지내던 주민으로선 이젠 항상 자녀를 따라 다니며 보호해야 할 판이니 기를 쓰고 반대할 만도 하다.
미국만큼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없다. 집회, 결사, 언론 등에도 거의 통제가 없을 정도인데 주거 이전과 여행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이 전과자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비록 잘못은 저질렀지만 법에서 규정된 대로 죄 값을 다 치렀고 평생 동안 어쩌면 정상 생활이 보장 안 될 만큼 불이익과 제한을 감수해야 함에도 어디 가서 마음 놓고 살 곳도 찾을 수 없다.
이 일은 법적, 윤리적 차원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동네 주민이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 전과자를 용납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그 동네 주민이 다 교인이 될 수 없다. 그래도 십자가 사랑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주민이 결사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리 모범적으로 형기를 마쳤어도 언제 다시 발동될지 모르는 죄의 본성이 여전히 그 전과자 속에 생생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법과 제도와 심지어 윤리마저 죄를 치유하는 온전한 방법이 될 수 없음을 사람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십자가 밖에서 우리 삶의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니 참으로 어리석지 않은가? 죄수 한 사람만 그리스도 복음으로 완전히 변화시키면 간단히 해결될 텐데도 말이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롬6;13,14)
8/17/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