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장모에 그 사위

조회 수 1397 추천 수 94 2006.05.18 20:16:40
그 장모에 그 사위



오랜만에 장모님이 한국에서 한 일주일 다녀가셨습니다. 사실은 완전히 간 것이 아니라 남미의 온두라스에 있는 따님 댁을 한 달쯤 방문했다가 다시 오실 계획입니다. 어제 LA에서 새벽 2시 비행기를 타고 온두라스로 출발하셨는데 중간에 엘살바도르를 한번 거쳤다 가야 합니다. 영어 하나 모르는 팔순이 넘은 노인이 그것도 혼자서 말입니다.

슬하에 아홉 자녀를 양육해야 했고 일찍 중풍에 걸려 병석에 누운 남편 대신에 장손 집안의 대소사뿐만 아니라 바깥일까지 수십 년을  도맡아 하셨으니 완전히 여장부가 되었습니다. 교회 권사로 봉사하고 계신데 담임 목사님이 교회의 대외적인 일마저 남자 장로나 집사님들을 제쳐 놓고 의논하고 처리할 정도입니다. 아주 경우가 바르며 불의를 참지 못하며 남의 어려운 일을 나서서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제 장모님에게는 재미있고 신나고 때로는 엉뚱한 일화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책을 몇 권이나 써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그 중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인천 공항이 개장되어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미국 방문을 마치고 입국해선 바로 부산으로 비행기를 타고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세관 수속을 다 마친 후에 큰 가방 두 개를 본인이 직접 들고 나와 공항버스를 타고 김포로 가야만 했습니다. 수화물은 세관수속을 마치면 바로 항공사가 알아서 김포로 운반해 주어야지 승객더러 갖고 가라는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그 자리에서 공항 직원더러 호통을 쳤습니다.

인천이 마지막 도착지라면 그 다음부터는 당연히 본인 책임이지만 비행기로 또 여행할 경우는 항공사가 반드시 운반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개장한지 얼마 안 되어 시설과 서비스가 미비했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나이 팔순이 다된 노인이 공항버스 정류장까지 짐을 끌고 가서 버스에 들고 내리며 다시 탑승 수속하는 데까지 갖고 가다가 만약 몸에 무리가 생기면 어떻게 되느냐고 따진 것입니다.

환승(換乘) 절차가 없으면 마중 나온 가족들이 노인 대신에 짐을 운반할 테니 그런 위험이 없지만, 부산 사는 가족들이 짐 때문에 서울까지 배웅을 나올 수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어이 항공사(?) 남자직원 한 명을 대동하여 김포까지 버스 타고 가 국내선 수속 마칠 때까지 가방 두 개를 운반하도록 시켰습니다. 그 항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다음 해외여행 때는 수화물이 부산까지 바로 배달되었다고 합니다.

LA에서 남미(南美)로 가는 전문 항공사로 Taca Airline이라고 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데다 아마 공항 임대료를 적게 내려고 그러는지 주로 밤 12시 넘어서 출발합니다. 온두라스까지는 한 번 갈아타서 아침 9시 반에 도착하는 여행길입니다. 꼬박 비행기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셈입니다. 혹시 한국사람 동행이라도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한 명도 없어서 전부 히스패닉계 사람과 동행해야 함에도 전혀 염려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저 같으면 도저히 엄두도 안 날 텐데 그 담대함뿐만 아니라 건강도 진짜 대단하다 싶습니다.    

저희 집에 와서도 단 한시도 쉬지 않고 된장과 간장을 담아 주시고, 남미에 갖고 갈 선물을 사시고, 화단에 잡초를 다 뽑으시는 등 쉴 새 없이 움직입니다. 일주일을 곁에서 따라 다녀야 했던 제 집사람이 오히려 엄마가 가고 난 뒤에 하루를 꼬박 들어 누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을 하나 배웠습니다. 쉬지 않고 일하는 것입니다. 흔히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있다고 농담합니다. 베드로처럼 풍랑 대신에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발자국을 딛는 것이 아닙니다. 한 발 빠지기 전에 다른 발을 옮기고 또 다른 발이 빠지기 전에 이 쪽 발을 디디면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쉽고도 간편합니까? 마찬 가지로 이 일 끝나면 바로 다른 일을 하면 쉬지 않고 일하느라 도무지 늙고 병들 여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체력일까요? 아닙니다. 팔순 할머니가 오십 초반의 딸보다 더 팔팔(?)했다면 체력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직 자녀를 사랑하는 그 한 마음입니다. 교회 일을 사랑하니까, 불쌍한 이웃을 사랑하니까, 심지어 공항의 시스템이 바로 잡히고 공평하게 처리되어야 한다며 그 일을 사랑하니까, 보통사람은 귀찮아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나서서 도맡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담아준 맛있는 된장을 자녀들이 먹을 것을 상상하니까 오죽 기뻤겠습니까? 피로가 쌓일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혹시 쌓이더라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삼년간이라는 짧은 기간만 사역하셨지만 정말 본인의 표현대로 머리를 누일 장소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습니다. 쉴 새 없이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쫒고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분이 슈퍼맨처럼 체력이 강철 같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날 밤에 땀이 피 망울이 되도록 쇠약해졌습니다. 오직 죄와 사단과 사망에 눌려 있는 인간들이 불쌍하고 자신의 생명을 대신 줄 만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 따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일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선 나에게 맡겨주신 가족 뿐 아니라 주위에 하나님이 붙여준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특별히 내가 하는 일로 인해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기뻐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저도 아직은 팔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바로 이런 마음으로 계속해서 성령님의 인도대로 글을 열심히 써야겠습니다. 그 장모에 그 사위라는 소리는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5/18/2006

김유상

2006.05.23 02:33:45
*.170.40.27

목사님, 그 장모에 그 사위라는 소리 들으시려다 아주 오랫동안 글 못쓰게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쉬엄 쉬엄 쓰세요. 혹 성령님께 미련하다 꾸중들을 수도 있습니다. 매일 읽다가 몇 달 못읽기보다 한 주에 하나씩 읽는 편이 저희로선 훨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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