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통독

조회 수 1390 추천 수 95 2005.08.24 23:22:40
아내가 성경 통독을 시작했다고 알린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아내는 간간이 어디쯤 읽고 있는지 보고를 해왔다. 지난 번 보고에 예레미야 이십 몇 장에 있다더니 어제 밤엔 에스겔 이십 몇 장에 와 있단다. 아니 그 두 책간의 거리가 무려 60장인데 (쪽 수로는 약 100쪽) 그걸 며칠 만에 독파하다니! 질려 혀를 내두르는 내게 아내는 더 질겁할 말을 전한다. 교회 어느 권사께선 두 주에 일 독을 끝내신다는 거다. 세상에!

두 달에 성경 통독을 한다는 사실조차 받아 들이고 싶지 않은데 두 주라니! 믿기지 않는 것이 아니고 믿고 싶지 않다. 아니 누구는 두 주만에 통독을 끝내는데 난 몇 년이 걸려 겨우 일독이면 어디 고개를 들고 다니겠는가.

어렸을 때부터 글읽기를 좋아 했음에도 난 속독이 되질 않는다. 보다 많은 책을 공짜로 읽기 위해 속독에 관한 책을 사다 읽은 적도 있고 또 속독 강의를 들은 적도 있으나 다 실패였다. 실패의 이유는 물론 내가 그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속독이 내게 맞지 않았다.

난 좋은 책을 만나면 단숨에 읽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읽는 버릇이 있다. 아까워서다. 마치 어릴 적에 어쩌다 커다란 알사탕이 생기면 그것을 아끼느라 입안에서 굴려 가며 천천히 녹여 먹었듯이, 난 한 마디 한 마디 그 뜻과 표현을 음미하고 거기에 내 생각과 상상까지 곁들여 가며 그렇게 즐기고 논다.  그러다 보니 많지 않은 분량의 책도 완독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대학시절, 친구에게서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빌려 다 읽기까지 삼 개월은 족히 걸렸던 듯하다. 번역자의 이름은 잊었으나 아주 명번역이었다. 빌려간 지 한 달이 되도록 꿩 구어먹은 반응인지라 친구가 점검을 했다.
"다 읽었냐?"
"아니. "
"아니 여태 다 안 읽었다고? 난 며칠 만에 끝냈는데. 아마도 네겐 별로인가 보구나. 그냥 돌려 다오."
"그런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빨리 읽기 서운해서 아껴 읽는 중이야. 내 천천히 다 읽고 돌려 주마."

그러니 소설도 아닌 성경을 두 주만에 전 권을 다 읽는다는 것은 내겐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읽는 것에 치중한다면야 왜 못읽을까만, 그리고 그렇게 읽은 적도 있지만, 그렇게 읽는 것은 마치 시장기 메우기 위해 허겁지겁 물에 밥말아 훌훌 삼킨 것과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 책읽는 습관과 식사 습관이 비슷하다. 난 밥을 빨리 먹지 않는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무슨 재료와 밑간이 들어갔는지 살피면서 먹는다. 이때문에 자라면서 밥상에서 성미급한 경상도 아버지께 늘 꾸지람을 들었다. 도대체 무어 급한 일이 있다고 밥 빨리 먹지 않는다고 꾸중을 하셔야 했는지. 아버지가 설겆이 하시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천천히 책을 읽기에, 병행되는 또 하나의 습관은 여러 권의 책을 함께 읽어 나가는 것이다. 안방 욕실에 한 권, 아래 층 욕실에 한 권, 거실에 한 권, 침실에 한 권, 서재에 한 권, 사무실에 한 권, 그런 식이다. 때론 너무 산만한 느낌이 들어 한 권을 끝내고 다른 책을 시작하자고 작정해 보지만 좋은 책들이 워낙 많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아내는 두 달을 목표로 잡았다고 한다. 지금 속도라면 충분히 달성이 가능하다. 교회에서 성경 통독하는 이들은 주로 권사들이던데, 이러다 아내도 권사 반열에 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내가 늙은 느낌이 든다.

8. 24. 2005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173 믿음과 순종의 상관관계 [2] 김유상 2016-10-27 6938
172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3] 김유상 2006-08-25 4094
171 죽고 싶도록 삶이 힘들 때 [8] 김유상 2010-07-07 3215
170 맥도널드에서 당한 일 [5] 김유상 2007-02-02 2312
169 어제 음악회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3] 김유상 2006-07-22 2164
168 착각 [2] 김유상 2006-08-14 2156
167 로빈 [5] 김유상 2006-08-09 2153
166 휴가 보고 김유상 2006-07-21 2116
165 참 난처합니다 [5] 김유상 2006-07-18 2110
164 치료 결과 김유상 2006-05-23 2093
163 다빈치 코드 유감 김유상 2006-05-23 2078
162 빚진 마음과 감사한 마음 [2] 김유상 2006-05-05 2071
161 성령 충만을 주시옵소서 2 [1] 김유상 2008-04-22 2034
160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김유상 2008-03-24 1999
159 여러분을 뵙습니다 [7] 김유상 2007-01-28 1993
158 교회를 옮겨야 하나? [3] 김유상 2008-11-12 1956
157 성령충만을 주시옵소서 1 [1] 김유상 2008-04-19 1907
156 하나님의 편애 김유상 2006-03-22 1846
155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김유상 2005-05-18 1832
154 유학생 유창우의 선행 김유상 2005-12-09 1816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