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어느 목사의 신앙칼럼과 소감

조회 수 1570 추천 수 91 2007.09.29 01:01:06
                  
※ 어느 교회 주보에 근간 최대 관심사인 샘물교회 아프간 단기 선교팀 피랍 사건에 관한 신앙칼럼이 실렸습니다. 교회 내외(內外)를 불문하고 여러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가 높은 이때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일면인 것 같아, 소개와 함께 개인적 소감을 나누고자 합니다.    


♥ 칼럼 : “교회가 건강하게 될 때”        

  어느 목사님이 이번 아프간 피랍사태를 놓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아무개 목사야! 네가 그 교회 담임목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장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탈레반에게 ‘나를 대신 인질로 잡고 청년들은 풀어주시오.’라고 하겠는가?” 그 질문에 대해 “당연하지요.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지요. 나는 그렇게 할 겁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교회 리더에게 요구합니다.

  오늘날 교회를 향한 비판은 상당 부분 교회 리더에 대한 비판입니다. 사람들은 말이 아닌 삶으로 감동을 주는 교회 리더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정치가나 경영자보다는 목자를 원하고 지배자가 아닌 지도자를 원합니다. 지도자는 자기를 부정하고 백성을 위해 자기를 기꺼이 희생하지만 지배자는 자기 영광을 위해 백성을 도구화합니다.

  사람들에겐 ‘진정한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때로는 자율적인 것보다 타율적인 것을 더 원하고 앞에서 모범을 보이며 이끄는 지도자보다는 뒤에서 채찍을 가지고 모는 지배자를 더 원합니다. 그래서 지배자를 ‘카리스마가 있다.’고 하며 더 매력 있게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타율은 타락으로 가는 미끄럼틀입니다.

  지도자는 앞에서 피리를 불고 이끄는 사람이고, 지배자는 뒤에서 휘슬을 불며 몰아대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뒤에서 몰아대는 지도자가 더 지도력이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런 경향 속에서 삶의 모범을 보이는 지도자는 점차 사라지고 각종 프로그램과 무대예술로 몰아대는 지배자는 점차 부각됩니다. 결국 교회 리더는 점점 정치가와 경영자를 닮아가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신자들보다 불신자들이 더 거부합니다.

  교회의 타락은 상당부분 교인들 책임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인들이 ‘진실한 목자’보다 ‘카리스마적 목자’를 더 찾고, 외형을 따라 교회를 찾으면 교회와 지도자의 타락은 피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스타가 없어야 건강해집니다. 교회 리더는 스타 기질을 버려야 합니다. 드러난 스타는 적고 숨은 스타가 많아질 때 교회는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 소감

오래 동안의 교회생활 통해 많은 목회자들과의 되새기고 싶지 않는 아픈 추억을 지닌 평신도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저 또한 목회자를 향한 작지 않은 불만을 지니고 있기에 크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성경과 동떨어진 성도들의 오해 가운데 하나는 ‘교회 지도자 상’일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주님의 지도권을 강조하시면서 성도들의 지위를 명백히 “형제”로 규정하고 계시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소통 특권을 지닌 준천사급 존재’를 기대합니다. 칼럼의 표현을 빌린다면 “스타”를 원합니다. 당연히 그 스타는 잘 알려진 목회자가 차지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결코 교회의 스타를 인정치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대단한 스타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크게 병든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교회 내의 스타 불용론’을 거론하면 불란 야기자로 몰아붙이려는 분위기입니다. 중증 현상입니다.  

스타의 요건도 참 웃깁니다. 설교 좀 하면 금방 ‘훌륭한 목사’로 인정받습니다. 조금 웃겨도 ‘대단한 목사’의 반열에 끼일 수 있습니다. 교인이 수천 명 내지 수만 명 되었다하면 응당 ‘왕 목사’로 대우받습니다. 신유/축사/방언 은사 좀 하고, 넘어뜨렸다 일으켜 세웠다 하고, 또 천국 갔다 왔다 자랑할 만한 체험이 있으면 ‘세계적 목사’로 각광받습니다. 물론 비슷한 체험을 한 평신도들도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열광 속에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보증도 찾을 수 없습니다. 권장할 만한 신앙모습이라 확신(?)하지만 인간들의 야무진 착각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불법을 해설해 주신 마7:15-27절 말씀이 재미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라.”는 주제인데, 열매로써 진위를 판정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21-22절을 보면 그 열매가 곧 선지자 노릇과 축사 사역과 권능 수행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열매를 보면 즉각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판정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결론은 전혀 다릅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선언해 버리십니다(23절). 위의 것들은 참 열매가 아니라 ‘유사 열매’라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행위’입니다(24-27절). 즉, 선지자/축사/권능 사역만으로는 ‘열매’의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행위’와 연계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삶으로 증거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본(本)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는 직분이 무엇이든(목회자든 평신도든) 어떤 스타도 불필요하다는 진실을 아는 영성이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만약 자신의 사역 열매 중에서 무언가 도드라진 것이 있어 ‘아! 나는 분명 하나님의 사람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위의 마태복음을 다시 한번 묵상해야 합니다. 만약 참 행위(삶/본)와 매칭되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따라서 지도자급에 속하지 않는 성도들이라면,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는 마23:3절 말씀을 기준 삼아, 유사 열매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정확한 판단력과 평정심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위 칼럼은 이러한 성경 본질적 가르침에 근접한 유의사항을 지적하고 있기에 한번쯤 읽어볼 만한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

김문수

2007.09.29 10:23:23
*.141.162.175

요한복음 5장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고린도전서 4장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야고보서 3장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고린도전서 2장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베드로후서 2장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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