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교회에서 "순금성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생각해 본 것입니다. 피의측(담임목사 추종 세력들)은 '그런 말 한 적 없다.' 하고 있으며, 문자적 명시적으로 기록된 근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합니다. 진위야 어찌되었든, 아직 '성전'의 개념을 모르는 성도들이 많은 것 같아, 독백 한 번 읊조려 봤습니다. ㅠㅠ


♣ 삼하7:5b(…네가 나를 위하여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옛날 시골장터의 흔한 광경입니다. 왕래가 빈번한 길목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경합니다. 구성진 가락과 걸쭉한 입담으로 흥 돋우는 떠돌이 약장수입니다.

마지막 레퍼토리는 언제나 정해져 있습니다. 뱀으로 만들었다는 정력제가 대미를 장식합니다. “이 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독사 중의 독사, 살모사로 만든 정력제외다. 한번 잡숴만 봐! 오늘밤 요강 박살나고 내일 아침 밥상 다리 부러집니다. 자! 효과가 없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집니다!” 영판 진짜배기인 것처럼 꼬드깁니다.

약장수의 손가락은 진즉 다 타서 몽당손이어야 마땅하지만, 그래도 순박한 몇몇 촌사람은 고추 판 돈 달걀 판 돈 꺼내어 곧잘 사곤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오늘날, 이와 유사한 일들이 교회에서 수없이 반복 발생하고 있습니다. 아주 열광하면서 말입니다. 이해되지 않는 기현상입니다.

‘성전’ 타령입니다. 소위 신령하다는 목사들이 거룩한 예언(?)을 목청껏 외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전을 지어 바치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신실하다는 성도들은 고개 주억거리며 화답(?)합니다. 작정헌금 열심히들 합니다.


‘인간이 성전을 지을 수 있는가?’라는 명제는 깊이 생각하고 말고 할 게 없습니다. ‘건축할 수 없다.’가 유일한 정답입니다.

‘뭔 소리냐! 역사상 존재했던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과 헤롯 성전은 뭐란 말이냐?’는 항변이 곧바로 제기될 것입니다.

예표입니다. 미리 보여 주신 하나의 암시입니다. ‘건물로서의 성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전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되물으신 말씀입니다. 문자적으로 정확히 해석한다고 힘들게 히브리어 찾아볼 필요 전혀 없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자금 수억 원 때문에 고민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 녀석이 힘차게 말합니다. “아빠! 돈 필요해서 그러지? 내가 도와 줄께!”라며 돼지저금통을 흔들어댑니다. 아들의 갸륵한 마음씨와 상관없이 고민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든 안 되든, 아버지는 아이의 소원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 참 고맙구나!”

오늘 본문이 포함된 문단도 이와 비슷합니다. 어불성설인 다윗의 소원(성전 건축)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네 아들보고 하라고 해 봐!’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허락’의 의미로 해석한다면 너무 순진합니다. 뒤이어 선포되는 11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집을 짓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성전’의 바른 개념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전은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 지어드리는 가옥’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이루어 주시는 집’입니다. 신약은 이(성전)를 ‘성도’(백성, 무리)라 칭하고 있습니다.

다윗이든 솔로몬이든 인간이 건축하는 ‘성전’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으시는 ‘집’(다윗의 뒤를 잇는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 즉 성도들)에는 하나님이 함께(임마누엘) 거하십니다!


옛날의 다윗과 현대의 우리가 함께 범하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성전’의 개념을 엉뚱하게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건물’로 형상화시키는 것입니다.

주님 오신 후부터 ‘건물’ 성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파리가 낙상할 만큼 번쩍여도, 건물을 성전이라 불러서는 안 됩니다. 오직 공동체로서의 성도들의 모임만이 유일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도심 사거리에서 독사정력제 파는 사람이 있다면 모두들 ‘정신 나간 사람’이라며 웃어넘길 것입니다. 그 약이 진짜 정력제려니 믿고 사는 사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판단력을 지닌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처신입니다.

오늘날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들 웃어 주어야 합니다. ‘성전이 뭔지도 모르는 정신 나간 사람’이라며 말입니다. 그 말이 진짜 성경적이라고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합니다. 영 분별력을 지닌 성도로서 마땅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웃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성전’(?) 타령이 먹혀들고 있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속임수요, 허망한 종교 짓거리일 뿐인데, 막강하고 신령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늘날에도 가짜 독사정력제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만큼이나 불가사의한 현상입니다.


언제쯤이어야, 바른 신앙지식으로 바른 믿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올바른 영 분별력이 회복되려는지요?! ♣

김철

2008.11.24 23:53:02
*.121.121.151

귀한 깨달음, 감사합니다.^*^

정순태

2008.11.25 06:37:29
*.57.204.82

김철 형제님! 처음 뵙나요? 너무 반갑습니다!

그러나 제 글과 같은 말들은 안 하고 안 듣는 게 더 나을 것입니다.
답답해서 입밖에 내 보지만 심령은 더 암울하기만 합니다.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기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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