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5:8절에도 이해가 쉽지 않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라는 기록입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는 이미 오래전에 가나안 땅으로 보내졌습니다. 창24:59절을 보면, 리브가의 아버지 브두엘과 오라비 라반이 그녀를 이삭의 아내로 보내면서, 그녀의 유모(her nurse)도 함께 보냅니다. 리브가의 유모는 같은 혈족이기보다는 혈통이 다른 아람 족속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겠습니다.

  ○ 여기서 ‘유모’는 히브리어 “야낙”(yanaq)으로서 ‘(젖을) 빨다. (젖을) 먹이다.’의 뜻입니다. 창24:59절에서는 ‘젖 먹이는 여인’을 가리키는 분사형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 그렇다면 유모는 리브가가 태어났을 때 젖을 충분히 생산하는 성년(즉, 이미 출산경험이 있는)에 이른 여인이어야만 합니다.

  ○ 따라서 이후, 유모와 리브가의 나이 차이는 편의상 20세로 간주하고 계속하겠습니다.

창35:8절 당시 리브가의 유모는 매우 늙은 나이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리브가의 유모가 되려면 적어도 리브가보다는 약 20여세 이상 연장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리브가가 몇 살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아버지 이삭의 나이를 고려할 때(에서와 야곱은 이삭이 60세 때에 출생함), 야곱 출생 당시 어머니 리브가는 적어도 30-40세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리브가의 유모는 야곱보다 최소 50여세 이상 연장이 될 것입니다.

  ○ 창35:8절이 기록된 시기는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귀환한 이후의 일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귀환할 때의 나이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일부 학자는 약 100세로 계산했습니다만, 저는 약 96세라고 생각합니다. 학자의 견해에 따라 100세로 간주해도 리브가의 유모는 약 150여세에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별로 무리한 추정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리브가의 유모가 언제 야곱과 함께 밧단아람으로 갔느냐에 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신하는 장면이 기록된 창28장을 아무리 세심하게 살펴보아도, 리브가의 유모가 야곱과 함께 밧단아람으로 갔을 것으로 추론할만한 근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 돌베개를 하고 잠 잔 기사(창28:11)는 동행이 있음을 암시하기는커녕 오히려 단신으로 여행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 또 29장에서 야곱이 외사촌 라헬과 그 가족을 상봉하는 장면에서도 리브가의 유모의 존재를 암시하는 단서가 하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 만약 리브가의 유모가 야곱이 최초 밧단아람으로 피신할 때 동행하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어느 시점엔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야곱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바로 이점에서 의문이 생깁니다. 언제 그녀는 밧단아람에 거주하고 있던 야곱에게로 갔을까요? 성경이 침묵하고 있기에 정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추정은 가능할 것입니다.

  ○ 사실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피신할 당시,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와 당사자인 야곱도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특히 리브가는 단지 “몇 날 동안”(창27:44) 정도만 피하면 될 것으로 알았습니다.

  ○ 하지만 성경은 한번 헤어진 리브가와 야곱이 살아서 상봉했다는 기사를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이 모자는 영영 이별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어미 리브가의 야곱을 향한 사랑을 고려할 때, 서로 왕래는 못할망정, 최대한의 연락을 취하며 살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 서로 간절히 만나기 원하는 모자지간의 연락책임자로서 리브가의 유모를 떠올리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밧단아람의 가족들을 잘 알고 있고, 리브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모자간의 애틋한 정을 나누기에 이보다 더 좋은 적임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 몇 번 왕래하다 리브가가 사망하자 더 이상 왕래할 필요성이 없어진 리브가의 유모는 야곱과 함께 거주하다가 야곱의 귀환시 함께 귀환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추론일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추론에 미비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반론은, 야곱의 밧단아람 피신 초기, 리브가의 유모의 나이가 이미 고령이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 어떤 학자는 야곱의 밧단아람 이주시의 나이를 60세로 추정합니다만, 저는 76세로 계산했던 바가 있습니다.

  ○ 누구의 계산이 맞던지, 일단 리브가의 유모는 이 당시 이미 약 100여세를 넘은 나이였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 이 정도의 고령이고 또 여성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여러번 가나안과 밧단아람을 왕복하며 리브가와 야곱의 소식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비록 낙타와 종들의 협력을 받았겠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성경은 전후 설명이 생략된 체, 리브가의 유모가 야곱과 함께 동행했다는 사실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봤으나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 또한 미해결의 영역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

김유상

2011.04.15 00:36:46
*.234.34.98

리브가의 유모가 언제 어떻게 야곱과 함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형제님의 추리,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정작 붙잡고 씨름해 볼만한 것은, 왜 성경은 그 시점에서 느닷없이 리브가의 유모에 대해 굳이 기록하고 있을까는 의문입니다.

형제님께서 면밀히 살펴 보신 바대로 리브가의 유모는 창세기 24장 59절에서 리브가와 관련하여 잠간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고 그 존재만 언급됩니다. 그리고 그 후론 더 이상의 언급이 없다가 성경 속 시간으론 약 오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35장 8절에 다시 언급되는데 이번에는 그 이름이 밝혀집니다. 성경에서 이름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35장 8절은 빼고 읽어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아니, 기록되지 않았다면 이런 궁금증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니, 제가 편집자라면 빼버렸을 겁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선 굳이 그 사실을--그것도 그냥 리브가의 유모라고만 하셔도 될 것을--앞서도 그랬으니까--그 유모의 이름이 드보라라고 밝히시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 바굿이라 불렀더라"

하나님께선 이 기록을 통해 우리들에게 무엇을 알리고자 하시는지요? 드보라가 야곱에게 중요한 인물이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내겐 무슨 중요성을 지니고있는지요? 그녀의 이름이 드보라이고,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와 벧엘에서 지낼 때에 함께 있었고, 그곳에서 죽자 야곱이 애곡하며 상수리 나무 아래에 장사지낸 것이 내게 어떻게 관련되는지요?

형제님의 추리력과 지혜를 빌려 주시기 바랍니다.

정순태

2011.04.21 12:14:54
*.75.152.183

이크~ 유상 형제님!
이해가 안 되서 의문으로 남겨둔 문제인데
정답을 내놓으라고 하시니 너무 엄하신 선생님이십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전 몰라요!!!"
형제님께서 대신 좀 가르쳐 주시면????????????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1 [묵상] 사랑(1) (마5:21-48) 정순태 2011-04-23 811
140 [단상] 택도 없는 소리 [1] 정순태 2011-04-15 590
» [이의] 리브가의 유모가 어떻게 야곱과 함께? [2] 정순태 2011-04-07 2562
138 [목자상] 07. 소명(사명/부르심) 신학의 오해(2) [3] 정순태 2011-04-02 1179
137 [목자상] 06. 소명(사명/부르심) 신학의 오해(1) [1] 정순태 2011-03-26 3093
136 [묵상]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은혜 [5] 정순태 2011-03-23 620
135 [묵상]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2] 정순태 2011-03-11 661
134 [re] [답글] 홀아비 사정은… [2] 정순태 2011-03-13 547
133 [독후감] 오강남 박사님과 박신 목사님의 책을 읽고 [3] 정순태 2011-03-05 899
132 [칼럼 재개의 변] 애정이 없으면 비판도 없다! [12] 정순태 2011-03-01 563
131 [절필] ‘맑은바람소리’ 칼럼을 끝마치며 [6] 정순태 2010-01-02 937
130 [단상] 교회는 내부고발자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정순태 2009-12-12 924
129 [단상] 선점(先占)이 장땡이다? 정순태 2009-12-05 817
128 [단상] ‘혹시나?’가 ‘역시나!’로 정순태 2009-11-28 803
127 [단상] 성직자(?)의 사례금에도 세금을? [1] 정순태 2009-11-21 881
126 [목자상] 05. 권위와 권세의 의미 정순태 2009-11-14 3474
125 [단상] 진정한 미인의 아름다운 유언 정순태 2009-11-06 881
124 [단상]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3] 정순태 2009-10-31 1403
123 [목자상] 04 ‘목사’ 직분의 개관(Ⅲ) 정순태 2009-10-24 1015
122 [목자상] 03. ‘목사’ 직분의 개관(Ⅱ) 정순태 2009-10-24 1453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