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및 한글 번역 신약성경에 단 한번 기록된, 그나마 오역일 가능성이 훨씬 큰, ‘목사’라는 단어 하나를 근거로, 오늘날의 담임목사제도가 제정된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 신학은 ‘성경에 단 한번 기록된 단어’를 하팍스 레고메나(Hapax legomena)라고 합니다만, 영어나 한글의 ‘목사’는 하팍스 레고메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원어인 헬라어 ‘포이멘’은 신약성경에 무려 18회 이상 사용되고 있고 항상 ‘목자’라는 정확한 말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엡4:11절에서만 ‘목사’(pastor)라는 괴상한 용어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담임목사의 강력한 단독리더십은 신약성경 그 어디에도 근거가 없습니다. 단지 복수리더십으로서의 ‘장로와 집사와 감독의 자질들’만 제시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우리는 선택해야만 합니다. 목사 직분을 단독리더십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복수리더십으로 볼 것인지를 말입니다. 이는 결국 무소불위의 담임목사제도에 대한 수용 여부의 결정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 복잡한 문제를 몇 마디의 말로 판정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그간 성경에서 전권(全權)이 부여된 그 어떤 직분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목사의 단독리더십을 반대함과 동시에 담임목사제도는 비성경적이라는 개인 확신만 밝히면서, 계속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면, 담임목사의 단독리더십을 전제하고 신약성경을 읽으면, 그 어디에서도 목사의 자질들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오직 복수리더십을 받아들일 때라야 신약성경에 기록된 목사의 자질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를 ‘장로와 집사와 감독의 자질’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복수리더십인 장로와 집사와 감독의 자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장로의 자질입니다.
장로에 대해서는 딛1:5-6절에만 언급되고 있는데 그 조건은 이렇습니다.
① 책망할 것이 없는 자일 것(must be blameless)
② 한 아내의 남편인 자일 것(the husband of but one wife)
③ 방탕하다는 비방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자녀를 두지 않은 자일 것(a man whose children believe and are not open to the charge of being wild and disobedient)
장로는 감독에 비해 매우 제한된 자질만 요구받고 있습니다. 즉 감독의 자질 23개 중에서 3가지만 요구받음으로써, 감독에 비해 경미한 직분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도 감독이란 장로들 중에서 더욱 모범적인 성도를 선출하여 감독의 직임을 부여하였을 것이라 생각되기에, 장로보다는 감독의 자질이 더욱 엄격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음, 집사의 자질입니다.
오늘날 장로보다 낮은(?) 직분으로 인식되고 있는 ‘집사’의 자질은 오히려 장로보다 더 엄격하여 마치 감독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딤전3:8-13절에 남자집사와 여자집사의 자질이 나옵니다. 남자집사의 자질은 대략 7가지 정도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만, 이는 전부 감독의 자질과 중복되는 것들입니다.
이를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 집사에게만 해당되고 장로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며 다시 감독에게는 해당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비록 성경이 장로의 자질에 포함시키고 있지는 않으나, 집사든 장로든 감독이든 모든 직분자들에게 필요한 공통 자질이라고 받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10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라는 말씀입니다. 집사 직분은 신앙 검증에 통과된 합당한 자에게 부여하는 직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집사보다 더 성숙되어야 할 장로나 감독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교회에서 충분히 검증해 보고 참 신앙과 인격을 구비한 것이 입증될 때, 비로소 장로나 감독의 직분을 수행토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제, 오늘날 목사와 가장 유사한 직분이라 할 ‘감독’의 자질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독의 자질은, 잘 아시다시피, 2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딤전3:2-7절의 15개, 딛1:7-9절의 13개가 그것입니다. 산술적으로 15+13=28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감독의 자질은 총 23개입니다!
영어 및 한글 성경은, 같은 헬라어일지라도 번역자에 따라 상이한 단어로 번역한 경우가 많아, ‘감독의 자질’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헬라어를 기준할 때, 디도서의 13개 자질은 이렇게 구분됩니다. : 4개는 디모데서와 동일하고(술 즐김, 구타, 나그네 대접, 근신), 1개(책망)는 헬라어는 다르나 학자들이 동의어로 봅니다. 8개는 디도서 고유의 자질입니다.
먼저 딤전3:2-7절에 나오는 15개 자질입니다.
ⓐ 자질 1 = “책망할 것이 없으며” : (헬)아네피레프토스(anepileptos)는 ‘책망, 잘못’의 뜻입니다.
ⓑ 자질 2 =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 (헬)아네르(aner)는 그냥 ‘남편’의 뜻입니다.
ⓒ 자질 3 = “절제하며” : (헬)네팔레오스(nephaleos)는 ‘절제, 근신’의 뜻입니다.
ⓓ 자질 4 = “근신하며” : (헬)소프론(sophron)은 ‘근신, 사려’의 뜻입니다.
ⓔ 자질 5 = “아담하며” : (헬)코스미오스(kosmios)는 ‘아담, 수수’의 뜻입니다.
ⓕ 자질 6 = “접대하며” : (헬)필로크세노스(philoxenos)는 ‘접대, 손대접’의 뜻입니다.
ⓖ 자질 7 = “가르치기를 잘하며” : (헬)디다크티코스(didaktikos)는 ‘가르침’의 뜻입니다.
ⓗ 자질 8 = “술을 즐기지 아니 하며” : (헬)파로이노스(paroinos)는 ‘주정뱅이’의 뜻입니다.
ⓘ 자질 9 = “구타하지 아니 하며” : (헬)플레크테스(plektes)는 ‘싸움꾼’의 뜻입니다.
ⓙ 자질10 = “오직 관용하며” : (헬)에피에이케스(epieikes)는 ‘친절, 신사적’의 뜻입니다.
ⓚ 자질11 = “다투지 아니하며” : (헬)아마코스(amachos)는 ‘다툼’의 뜻입니다.
ⓛ 자질12 = “돈을 사랑치 아니 하며” : (헬)아피라르귀로스(aphikarguros)는 ‘탐심’의 뜻입니다.
ⓜ 자질13 = “자기 집을 잘 다스려” : (헬)프로이스테미(proistemi)는 ‘돌봄’의 뜻입니다.
ⓝ 자질14 = “새로 입교한 자로 말지니” : (헬)네오퓌토스(neophutos)는 ‘초심’의 뜻입니다.
ⓞ 자질15 =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 (헬)마르튀리아(marturia)는 ‘증거, 평판’의 뜻입니다.
이어서 딛1:7-9절에 나오는 13개 자질들입니다.
⒜ “책망할 것이 없고” : (헬)아네그클레토스(anegkketos)는 ‘책망, 잘못’의 뜻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이 단어를 딤전의 아네피레프토스(anepileptos)와 동의어로 봅니다.
⒝ 자질16 =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 (헬)아우다데스(authades)는 ‘완고, 거만’의 뜻입니다.
⒞ 자질17 =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 (헬)오르길로스(orgilos)는 ‘성급함’의 뜻입니다.
⒟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 (헬)파로이노스(paroinos)는 딤전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 “구타하지 아니하며” : (헬)플레크테스(plektes)는 딤전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 자질18 =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 (헬)아이스코로케르데스(aischrokerdes)는 ‘돈을 탐함’의 뜻입니다.
⒢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 (헬)필로크세노스(philoxenos)는 딤전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 자질19 = “선을 좋아하며” : (헬)필라가도스(phikagathos)는 ‘선을 사랑함’의 뜻입니다.
⒤ “근신하며” : (헬)소프론(sophron)은 딤전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 자질20 = “의로우며” : (헬)디카이오스(dikaios)는 ‘정직’의 뜻입니다.
⒦ 자질21 = “거룩하며” : (헬)오시오스(hosios)는 ‘경건, 거룩’의 뜻입니다.
⒧ 자질22 = “절제하며” : (헬)엥크라테스(egkrates)는 ‘자제’의 뜻입니다. 이 단어는 디모데전서의 “절제”와는 다르며 동의어로 보기 어렵습니다.
⒨ 자질23 =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 : (헬)안테코마이(antechomai)는 ‘굳게 잡다.’의 뜻입니다.
이상 살핀 것처럼, 디모데서와 디도서에 기록된 감독의 자질은 15+8=23개로 정리됩니다. 반드시 필요한 자질들입니다.
위의 23가지 자질들을 살핌으로써 얻게 되는 가장 큰 신앙유익은 ‘현대 목사안수제도의 비성경성’입니다.
이런 자질들은 신학교에서 획득도 검증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오직 여러 성도들이 함께 생활하는 지역교회 내에서만 확인 및 검증 가능한 것들입니다.
확인 및 검증을 결한 총회(교단/신학교)의 안수를 근거로 목사 직분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지역교회의 확인과 검증을 통과한 자를 목사로 안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대의 목사안수제도는, 오늘 살펴본 감독의 자질은 염두에도 두지 않은, 전혀 비성경적인 인간제도에 불과합니다. 신학 전공 및 교단의 안수가 유일한 조건입니다만, 이는 성경과 무관한 일일뿐입니다.
각자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주제일 것입니다.
면도날 같은 날카로움과 해박한 성경지식을 바탕으로 이룬 무게있는 글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23가지나 되는 모든 자질을 갖춘 목사님들이 과연 몇 분이나 될까? 의문부호를 붙입니다.
제가 아는 몇 분 중에 제1감으로 그 이름을 올릴 분이 누구임은 아시겠지요?
별칭- 그예다 회장, 운영자, 태산북두 또 뭐가 있더라?? ^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