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 선지자 사무엘은 레위인이다?

조회 수 3192 추천 수 29 2012.05.26 02:00:21
♣ 삼상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종족을 12지파로 칭합니다. 이때 “○○(지파이름) 사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베냐민 지파(Benjamite), 레위 지파(Levite) 등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에브라임 사람”(an Ephraimite)은 ‘에브라임 지파’라는 뜻이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학자들의 설명은 다릅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에브라임 지파가 아니라 레위 지파라는 것입니다. 학자들의 견해는 상당한 타당성을 지니는 듯합니다. 곧이어 살펴보겠지만 역대상에서 근거가 찾아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얼핏 그럴듯한 학자들의 주장의 미비점(?)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전에 이 문제를 검토하다 그만 둔 적이 있었음을 밝히고 싶습니다. 에브라임 지파(?)인 사무엘이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한 것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지자’는 출신 지파의 제한이 없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이 필수요건이기에 사무엘이 선지자 직분을 이행한 것은 별다른 애로 없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다릅니다. 사무엘은 성막에서 수종들며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심지어 성전 안에서 잠까지 자는 것처럼 기술되기도 했습니다(삼상3:3). 레위 지파만이 수행할 수 있는 전형적인 제사장 업무였습니다.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지내다가, 역대상 6장에서 사무엘이 레위 지파임을 알게 되어 의구심은 일단 해소되었습니다. 사무엘의 계보가 비교적 명확히 밝혀지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역대상 초반부는 처음 성경을 통독하려 할 때 그냥 뛰어 넘기 일쑤인 재미없는 곳입니다. 1장은 창세기에서 접했던 이름들이기에 그럭저럭 읽습니다. 하지만 2장부터 8장까지 비슷비슷한 이름들이 끝없이 나열되는데 정말 지루합니다. 저도 3번째 통독할 때까지 스킵하였습니다.

그러나 역대기 족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지루한 족보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사무엘의 문제도 이곳을 통해 검토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먼저 성경의 내용을 요약하겠습니다. 사무엘의 부분 계보가 기록된 사무엘서와 상세 계보가 기록된 역대기서를 비교하면 미묘한 차이가 발견됩니다.

그 정리된 차이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로 어떤 곳은 내림차순(조상으로부터 후손으로), 어떤 곳은 오름차순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편의상 모두 내림차순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제1계보》(삼상1:1 및 8:2) = 【숩⇒도후⇒엘리후⇒여로함⇒엘가나⇒사무엘⇒요엘/아비야】

《제2-1계보》(대상6:22-24) = 【레위⇒그핫⇒암미나답⇒고라⇒앗실⇒엘가나⇒에비아삽⇒앗실⇒다핫⇒우리엘⇒웃시아⇒사울】

《제2-2계보》(대상6:25) = 【엘가나⇒아마새/아히못】
  
《제2-3계보》(대상6:26-28) = 【엘가나⇒소배⇒나핫⇒엘리압⇒여로함⇒엘가나⇒사무엘⇒요엘/아비야】

《제3계보》(대상6:33-38) = 【레위⇒그핫⇒이스할⇒고라⇒에비아삽⇒앗실⇒다핫⇒스바냐⇒아샤라⇒요엘⇒엘가나⇒아마새⇒마핫⇒엘가나⇒숩⇒도아⇒엘리엘⇒여로함⇒엘가나⇒사무엘⇒요엘⇒헤만】

위의 3가지 계보를 자세히 읽으면 읽을수록, 뒤죽박죽일 뿐이고, 결코 정리되지 않습니다. 정말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둘 다 정확하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톰슨성경의 대상6:16절에 대한 각주입니다. “…22-28절에 기록된 족보와 33-38절에 기록된 족보가 서로 다른 점이 있으나 한 사람이 두 가지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매우 편리한 답입니다만, 이는 정말로 우답(愚答)입니다. 위 이름 중에서 몇몇은 성경에 의해 이명동인(異名同人)임이 증명되는 것 같으나, 몇몇은 증명되지 않습니다. ‘일부 증명되지만 일부는 증명 불가’일 경우, 양심적인 학자라면 증명되지 않은 것까지를 싸잡아서 추정 논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 주장은 그 신빙성이 크게 결여되므로 기각하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두 번째는 ‘성경 난제’를 다루는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이들의 “둘 다 정확”하다는 주장의 핵심요지는 두 가지입니다.

① 삼상 1장은 단순히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다는 뜻이다.
② 역대상 6장은 레위 지파 족보로서 사무엘이 여기 속해 있기 때문에 레위 지파가 맞다.

학자 2명의 주장을 별지 1 및 2로 첨부하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 두 번째 주장에 대해 검토하고자 합니다.

“① 삼상 1장은 단순히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다는 뜻이다.”에 대한 이견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에브라임”이라는 단어가 2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에브라임 산지”이고 두 번째는 “에브라임 사람”입니다.

첫 번째 단어 “에브라임 산지”의 히브리어는 “메하르 에프라임”입니다. ‘메하르’는 ‘산, 산지, 언덕’을 의미하는 ‘하르’가 어원입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과 그의 후손들 및 그들의 영토’를 의미합니다.

두 번째 단어 “에브라임 사람”의 히브리어는 “에프라티”입니다. 이 단어는 ‘에브라임의 후손 및 에브랏의 거민들’의 뜻입니다. 에브랏은 베들레헴의 다른 이름입니다.

구약에서 사람과 관련된 (히) ‘에프라티’라는 단어가 4군데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삼상17:12),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의 두 아들(룻1:2), 오늘 본문인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의 조상(삼상1:1), 입다와 에브라임 지파 간의 살육(삿12:5),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의 조상(왕상11:26) 등입니다.

여기서 입다에 의해 죽임당한 에브라임 사람들과 여로보암은 정말로 에브라임 지파이므로 ‘에프라티’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새와 나오미의 두 아들은 명백히 유다 지파이므로 ‘에프라티’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무엘의 경우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파에 관계없이 특정 성읍이나 마을에 사는 사람을 그 지명에 따라 호칭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다소 애매할 경우, 우리는 성경의 다른 용례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특정 지역’ 출신임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많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 ‘아리마대 요셉’ ‘가룟 유다’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브랏(베들레헴)이나 나사렛이나 아리마대나 가룟 등은 모두 단일한 성읍이나 마을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성경에서 어느 지방 출신인가를 나타낼 때는 단일 성읍 내지 마을의 이름을 붙이지, 한 지파와 같은 광역 지명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약 한 지파가 사는 광역지명으로 호칭해도 된다면 너무나 혼란스러워집니다. 므낫세 지역에 사는 베냐민 지파도 ‘므낫세 사람’, 갓 지역에 사는 납달리 지파도 ‘갓 사람’이라 하게 됩니다. 원래의 지파 자체가 사라져 버리고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호칭이 수시로 변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어려운 문제를 대함에 있어서, 성경에서 지파 명칭이 붙을 때는 거의 ‘지파 또는 종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정하는 것이 보다 슬기로울 것입니다.

영어 성경도 이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영어 접미사 ‘~ite’는 ‘~의 주민, ~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어미입니다.

만약 본문의 “에브라임 사람”(Ephraimite)을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석한다면, “레위 사람”(Levite)은 무어라 호칭해야 할까요? 단 지역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단 사람’, 베냐민 지역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베냐민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상 살피 바와 같이 “① 삼상 1장은 단순히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다는 뜻”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에는 커다란 난점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충분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다음, “② 역대상 6장은 레위 지파 족보로서 사무엘이 여기 속해 있기 때문에 레위 지파가 맞다.”는 주장에 대한 이견입니다.

사무엘의 계보는 대략 3가지임을 앞에서 살폈습니다.

《제1계보》(삼상1:1 및 8:2) = 【숩⇒도후⇒엘리후⇒여로함⇒엘가나⇒사무엘⇒요엘/아비야】 는 조금 전 살폈듯이, ‘에브라임 지파’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입니다.

반면 《제2-1계보》(대상6:22-24)와 《제2-2계보》(대상6:25)와 《제2-3계보》(대상6:26-28)는 레위 지파의 것입니다. 같은 이름이 반복되기도 하고 유사한 이름이 나오기도 하고 복잡합니다.

사실 《제2-1~3계보》만으로는 아무 것도 분석되지 않습니다. 앞뒤 정리가 전혀 안 됩니다. 이 《제2계보》는 반드시 《제3계보》의 도움을 받아야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3계보》만이 누락이나 중첩없이 상세 기록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분적이고 중첩되는 《제2계보》를, 가장 상세하고 사람의 숫자가 많은 《제3계보》에 맞추어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도후/도아’ ‘엘리후/엘리엘’이 동일인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입니다.

이처럼 첨삭된 계보를 《제1계보》에 대입하여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숩⇒도후/도아⇒엘리후/엘리엘⇒여로함⇒엘가나⇒사무엘⇒요엘/아비야】

만약 이 첨삭된 계보가 옳다면, 선지자 사무엘은 레위 지파가 되므로, 사무엘서에 기술된 행적 즉 제사장 직무 수행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성막에서 섬길 수 있고 제사도 집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 본문의 “에브라임 사람”이라는 표현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에브라임 지역에 사는 레위인’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입니다.
  

♣ 이의 : 선지자 사무엘은 레우 지파인가요? 에브라임 지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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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1> 서춘웅 목사의 견해(성경난제해설, 서춘웅, 크리스챤서적)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인가? 그렇지 않으면 레위 지파 사람인가?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삼상1:1)

삼상1:1은 엘가나를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 소개하며 그의 가계를 사대까지 추적해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엘가나가 만일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었다면 그의 아들 사무엘이 제사장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역시 역대상 6:26-27, 34-35에 두 번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가계를 소개해 주고 있는데 거기서 엘가나의 아들 사무엘은 레우 지파 고핫을 후손으로 소개되고 있다. 고핫은 성막과 성전의 음악을 책임진 레위인들이었다(대상 6:16, 22:31-33)

그러면 위의 두 구절의 말씀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는가?

한마디로 두 구절은 다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 구절들이 서로 다른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상1:1에서 사무엘의 아버지가 에브라임 사람이었다는 것은 그의 지파의 기원을 언급한 것이 아니고 그가 살았던 지방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 레위인들은 그들의 재산으로 땅을 상속받지 못했으며 다른 지파의 땅에 흩어져 살았다(수 21:20-22). 더구나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이 레위인이 살았던 도시라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여기 라마다임소빔은 다른 곳에서는 라마라고 했다. 그 의미는 고지나 높은 곳 혹은 언덕이란 뜻이다. 그리고 알려진 바로는 예루살렘의 북쪽으로 15마일 상에 위치해 있는 고지였다.

유세비우스(Eugebius)에 따르면 신약시대의 아래마대 요셉의 고향 아리마대이다. 이 라마는 사무엘의 출생지요(19-20절) 거주지요(7:17) 장지였다(25:1).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위에서 지적했듯이 라마다임소빔이 레위 사람들이 살 지역으로서 지명된 곳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발드윈(Joyce G. Baldwin)은 어떻게 에브라임 사람이 레위 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베들레헴은 구약에서 역시 에브랏(창 35:16, 19; 룻 4:11; 미5:2)으로 불렸으며 에브라임 사람은(히, 에브라티) 에브라임의 지파나 베들레헴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베들레헴의 레위인들과 에브라임의 언덕 마을 사이에 연관이 있을 것이라 보았다(삿 17:7-12; 19:1-21). 그리고 만일 엘가나가 베들레헴의 어떤 가족과 연관이 있었다면 비록 그 가족이 에브라임에 있는 성소 실로에서 자주 모였을지라도 그의 아들 사무엘은 그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돌아갔을 것은 자연스러웠으리라고 보았다(3절). 그리고 에브라임의 높은 지역에는 레위 사람들이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론의 아들을 거기에 장사했기 때문이다(수 24:33).

그러나 여전히 문제가 남게 되는 것은 엘가나가 아론이 아닌 고핫의 자손이라면 그의 아들 사무엘이 레위인인 것은 분명하나 제사장이 될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난제로 해서 어떤 학자들은 여기서 주로 언급하려는 것은 사무엘의 출생이 아니라 사울의 출생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McCarter). 그 이유로 20절에 아기의 이름은 사무엘보다 사울에 부합한다. 또 사울이 그의 후에 경력에서 실로의 엘리 제사장들에 의해 지원을 받았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삼상 14:3, 18/Miller and Hayes). 그러나 이런 주장은 크게 지지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것은 역사적 정확성을 위한 화자의 관심에 지나친 의심을 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결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무엘을 에브라임 사람이라 말씀한 것은 지리적인 언급이었을 뿐 가계적으로 하면 사무엘은 레위 사람이었다. 그가 제사장 아론의 후손은 아니었으나 사무엘은 그의 에브라임 레위 사람 선임자 비느하스 같이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낼 수 있었다(참고, 민 31:6; 수 22:13-32; 삿 20:28). 따라서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이 레위인을 우해 유보된 토라(Torah)의 책임 맡기를 원하였다.

사무엘이 레위 지파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아론의 후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 사무엘처럼 제사장으로서 또는 백성을 지도할 사사로서 책임을 맡을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그가 제사장 엘리 밑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다 배웠을 뿐 아니라 제사장이 되는 규례를 초월해서 그가 출생하기 전부터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지도자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쓰실 때 꼭 어떤 규정에 매여서 일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pp.571-573)



  

<별지 2> 글리슨 아처의 견해(성경 난제 백과사전, 글리슨 아처, 황영철 역, 생명의 말씀사)


역대상 6:16 이하에서는 사무엘의 아버지가 레위인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무엘상 1:1은 에브라임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것이 정확한가?

역대상 6:16, 22-28은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이 엘가나는 5대 위의 앗실의 아들 엘가나가 아니다)는 모세나 아론과 똑같이 레위의 아들 고핫의 후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사무엘은 어렸을 때 견습생으로 대제사장 엘리 밑으로 들어갔다(삼상1:24, 28, 2:11). 사무엘이 성인이 되었을 때 그는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했으며, 이스라엘의 지도적인 중심지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만약 그가 제사장 지파가 아니었다면 수행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사무엘상 1:1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 구절은 단지 엘가나가 에브라임 산지의 라마다임소빔 “출신”(min)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민수기 35:6에 규정된 규칙에 의하면 모든 레위족들은 어떤 일정한 “레위족 부락” 즉 열 두 지파 전체에 퍼져 있는 레위족 부락에 살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마흔 여덟 개 부락의 목록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라마다임소빔도 그 부락들 중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엘가나는 혈통으로는 레위인이며, 사는 곳으로 보면 에브라임 사람이다. 따라서 이 두 구절 사이에는 전혀 모순이 없다. (p. 298)


※ 사족 한 마디.  

위의 별지2 글리슨 아처의 견해(별지2)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흔 여덟 개 부락의 목록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라마다임소빔도 그 부락들 중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은 틀립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12지파가 레위 지파에게 준 48개 부락의 목록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수21:11-41).  

에브라임 지파가 레위인에게 준 성읍은 4개로서 세겜과 게셀과 깁사임과 벧호론입니다. 라마다임소빔은 결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밤낮 성경 연구에 몰입하는 성경학자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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